1. 도전할 용기를 준 단재학교
단재학교는 2009년 9월에 서초구 반포동의 한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시작하는 학교는 학교 구성원이 제대로 갖춰질리 만무하다. 두 명의 교사들이 힘을 모아 문은 열었지만,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개교를 하기 전에 학교 설명회도 하고 제주도로 몇 일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매우 미약했다.
▲ 2016년 가을엔 청계천 고아장에서 대안학교 축제가 있었다. 위 사진은 그 당시 우리의 홍보 부스.
막연하지만 그래도 시작하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단재학교가 제대로 발판을 다지게 된 강동구 둔촌동으로 이전한다. 반포동 학교는 여러 아이들이 함께 하기엔 비좁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거금을 들여 한 층의 반절을 임대하여 학교 분위기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였다.
태생적으로 빌딩 내에 입주해 있어 학원 같은 분위기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반포동의 학교에 비하면 천지 차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단재학교에 근무하게 된 때는 그 후로 2년이 지난 2011년이니 반포동 학교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처음 시작할 당시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며 유추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둔촌동 학교에서 2년을 보내며 단재학교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교사도 어느덧 5명으로 늘어 초기의 썰렁한 기운은 사라졌으며, 학생도 18명까지 불어나 여러 사람이 북적대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시기에 내가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됐다.
나와 같이 겁이 많은 사람은 ‘너무나 막연해. 그리고 막상 시작한다 해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시작하지 않을래’라고 합리화하며 안 할 명분을 찾는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늘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맞서야 하는 이유보다 멈춰야 하는 이유가 많다. 누가 보면 ‘신중하다’, ‘사려 깊다’고 평할지도 모르지만, 실상 그것보다 ‘막연히 두려워한다’, ‘책임지기 싫어한다’고 평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에 반해 단재학교의 문을 열고 2년 동안의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이끌어온 두 명의 교사들은 나와는 달리 ‘용기가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줄 안다’고 평가할 만하다.
▲ 3층을 두 군데가 나눠서 썼다. 이 당시 단재학교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시작해보라,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는 지켜보라
『중용』이란 책에 아래의 구절이 나온다.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며, 생각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며, 행동하지 않을지언정 행동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남들이 한 번에 그것을 잘한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하고, 남들이 열 번에 그것을 잘한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道를 실천할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집니다.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중용』, 20장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그건 내가 그만큼 우유부단하기 때문이고, ‘해보려 맘먹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다’는 그 정신을 본받고 싶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구절에 가장 적합한 예는 단재학교가 문을 열고 2년 동안 달려온 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쯤에서 할 수 있는 말은 ‘훗날에 어떻게 될지 두려워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머뭇거리지 말고, 당당히 해보라’라는 주문이다. 그게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두 말할 나위 없겠지만, 설혹 실패로 끝날지라도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실패는 단순히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린 성공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도전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그건 다른 어떤 경험으로든 대신할 수 없다.
▲ 영화팀과 연극팀도 자리를 잡아 각 팀에 맞게 발표회를 갖게 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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