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공생의 필살기와 똥 누기의 공통점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전주에서 한 강연은 뭔가 거대한 얘기의 연속이라 오히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나와 멀리 떨어진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생의 필살기’라는 제목의 제주 강연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며, 어떤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 두 강연은 한 사람에게 나왔지만, 나에겐 다른 강연처럼 들렸다. '공생의 필살기' 강연은 내면을 뒤흔드는 이야기~
똥 누기와 교회 다니기의 차이점
이 두 강연을 들으며 사람은 어떤 거대한 것이나 외적인 것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쉽게 받아들이지만, 나와 어떤 식으로 관련된 것이나 내적인 것에 대한 얘기는 감정적인 반감이든 무의식적인 저항이든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래의 인용문은 이와 관련된 예화다. 좀 더러운 예일 수 있으니 김용옥 선생을 안 좋아하거나, 똥 얘기를 싫어하시는 분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나는 아침에 똥 눌 때 그것을 가장 잘 느낍니다. 매일 아침 똥이 기분 좋게 싹 빠지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런데 아침에 똥이 기분 좋게 싹 빠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전날 하루를 정말 완벽하게 살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전날까지 아무렇게나 산 사람은 똥을 쑤욱 하고 맛있게 쌀 수가 없는 거예요. 아침에 똥이 나오는 형태를 보면 깨질깨질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딱딱하게 변비가 되어 토끼똥처럼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딱딱하다가 픽 물러지기도 하고 아주 개판이거든요. 금색처럼 누리끼리한 똥이 흰 떡가래처럼 쫘악 빠지다가 끝에 가서 밑을 닦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삭 빠지는 것이 최고의 똥입니다. 그런데 이 똥을 완벽하게 누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이상입니다. 나는 10년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삶의 목표가 교회라는 내 삶의 밖에 명백하게 있으므로, 의지만 있으면 실현이 됩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완벽한 똥을 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김용옥, 『도올선생 중용강의』, 1995년, 통나무출판사
도올 선생은 ‘중용’이란 개념을 설명하면서 지극히 일상적인 예를 들고 있다. 이건 ‘중용’이 어떤 이상적인 논변이거나 지고지순한 학문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선 두 가지 상황으로 대비를 하는데, 똥을 잘 싸는 문제와 교회를 잘 다니는 문제를 들고 있다. 똥을 싸는 건 나의 내적활동에 따른 결과이기에 생활이 개판이거나, 아무 거나 먹었다면 좋은 똥이 나올 수가 없다. 하루를 얼마나 완벽하게 살았느냐가 바로 똥이란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는 문제는 생활과는 상관없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24시간의 생활이 고스란히 반영된 똥을 싸는 활동과 잠시의 의지만 있으면 교회에 갈 수 있는 활동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내 몸을 조절하며 일상을 완벽하게 살 의지가 있느냐, 외부의 것만을 좇아 살려는 생각이 있느냐의 차이 말이다.
아마 우치다쌤도 단순히 ‘공생의 필살기는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면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가볍게 인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느 실용서를 읽었을 때 무언가 알게 되었다는 감동은 있지만, 그게 삶을 바꾸진 못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런데 우치다쌤은 ‘나와는 상관없는 가르침’을 전해주기보다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고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며 감수성이 있냐고 물으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치다쌤의 이야기는 이제 2부 능선을 넘어섰을 뿐이다. 벌써부터 힘겹다고 주저앉으면 ‘공생의 필살기’의 고갱이는커녕 주변 정황동 얻어듣지 못하는 것이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니 더욱 힘내서 들어볼 수밖에 없다.
▲ 손석희였기에 가능한 인터뷰. 도올쌤은 여전히 쟁쟁하셨다. 반갑고도 반갑다.
우치다 타츠루, 무라카미 하루키, 임마누엘 칸트의 공통점
지금까지의 길고 긴 얘기를 통해 ‘공생을 위해서는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공생의 대상이 누구나 생각하듯, 다른 사람 내지는 다른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채롭다.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보통 공생이라는 말은 내가 여기 있고, 저 사람은 저기 있기에 어떤 관계를 맺어야 공생할 수 있을까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생의 가장 기본은 인간과 신체(자연)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하신다. 우치다쌤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조심』, 『또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조심』이라는 두 권의 책을 썼으며, 9월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문사에서 축하글을 미리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그게 벌써 10년 째 계속 되고 있다고 하니, 웃픈 얘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치다쌤은 그만큼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팬이 된 이유는 그의 책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집필가로서의 태도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라 밝혔다. 드디어 ‘공생의 필살기’ 첫 번째 후기에서 궁금증을 유발시켰던 ‘우치다 타츠루, 무라카미 하루키, 임마누엘 칸트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를 살펴볼 차례가 온 것이다.
▲ 우치다가 편애하는 마음으로 본 무라카미의 이야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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