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반복이 만든 창의력
그런데 세 사람처럼 이런 식으로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것과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둘 사이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기 때문에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미세한 감각이 살아날 때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관찰력이 생기고, 오감이 민감해진 후엔 무엇을 하려 하는 하는 걸까?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반복적인 생활을 할 때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이란 건 가장 미세한 꿈틀거림으로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갑자가 뭔가가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이 바로 새로운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오감이 민감해져 있어야만 비로소 미세한 꿈틀거림을 낚아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반복적일 때 비로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역설 가득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의 전제는 ‘내 몸은 자연물이다’라는 생각이다. 몸은 나에게 있어서 타자이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 있고, 그 미지의 영역에서 작은 단서를 끄집어 당기면 엄청난 것들이 끌려 나올 거라는 얘기다. 뭔가 되게 신비로운 얘기 같지만 우치다쌤은 “장기간 몰두하여 연구할 경우 정신이 아카데믹 하이 상태(무언가 하나에 몰두해 있는 상태)가 됩니다. 판에 박힌 생활을 하고 논문을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이미 상상 속에선 논문을 모두 다 쓴 후의 자기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죠. 밑그림조차 그리지 않았는데 전체 조감도가 보이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로 남겨 놓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그 메모가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나는 반드시 이 논문을 끝맺는다’는 확신마저 듭니다.”라고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준다. 바로 그런 식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몸의 미세한 변화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생긴다는 말이다.
▲ '작은 단서를 끄집어 당기면 엄청난 것들이 끌려 나올 것' 같은 상태를 [대학]이란 책 서문엔 활연관통이라 표현했다.
‘집에서 별로 나가지 않는다’의 긍정적인 의미
여기까지 강연을 들으면 ‘집에서 별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의 긍정적인 의미도 알게 된다. 흔히 집에서 별로 나가지 않는다고 하면 걱정하기 일쑤다. 혹시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은둔형 외톨이)’가 되지나 않을지, ‘골방철학자(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에만 갇혀 사는 사람)’가 되지나 않을지 당연히 걱정이 따른다.
1990년대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지며 경제침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황으로 일자리를 잡기가 힘들어졌고 점차 집을 도피처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단순히 일시적으로 집에 있는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집에 틀어박혀 아예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도 최근 들어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이기에 우치다쌤의 별명을 들었을 때 은근히 걱정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집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건 아니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집에 있다는 게 아니라, 패배주의에 빠져 사람 관계를 모두 끊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에 남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일순간 집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 집에 있으려 하며 어떠한 대외적인 활동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기 안에 자기를 유폐시켜버린다.
그에 반해 우치다쌤이 집에 있는 이유는 온 감각을 민감하게 하여 미세하게 떠오르는 단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개풍관이란 합기도장을 통해 대외적인 관계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집에 있다는 것은 공간의 제약만 있을 뿐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인식은 무한 확장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세상과 맞설 수 없어 피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반면, 한 사람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 지키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즉, 이 말은 집에만 있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들뢰즈가 말한 ‘앉아서 유목하기’가 바로 우치다쌤의 ‘집에서 별로 나가지 않는 지의 전도사’란 별명의 의미를 한 구절로 요약해 놓은 표현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 [공생의 필살기] 강연이 무르익고 있다. 무겁지만 신나는 얘기들의 향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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