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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9.01.02(수) - 2019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본문

건빵/일상의 삶

19.01.02(수) - 2019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건방진방랑자 2019. 12. 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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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02()

2019학년도 한문임용 1차 낙방기

 

 

결과 발표일 새벽의 심정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을 기록하다

 

 

지금 시간은 12일 새벽 129분이다. 이제 8시간 30분 후면 임용 1차 결과가 온 세상에 공개된다. 그건 곧 시험이 끝난 지 한 달 10일 가량이 흘렀다는 말이고, 새해가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치열했던 한 달

 

1124일에 시험이 끝났다. 이미 그때의 기록은 세 편으로 나누어 세세히 풀어놨으니 다시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안 갈 것 같던 시간이 흘러서 결국 결과가 나오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긴 그렇게 보자면 여느 때보다 1차 시험이 끝난 후 가장 치열하게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고 감히 평가할 만하다. 지금껏 하지 않았던 2차 준비를 했고 수업실연을 본격적으로 연습해봤으니 말이다. 매번 겁에 질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어차피 해야만 했던 것이기에, 아니 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1차 시험이 끝난 후 이렇게 치열하게 한 달을 살아낸 것에 대해선 충분히 만족해하고 박수를 보낸다.

 

 

 

 

 

과거의 연장선이 아닌 지금 이 순간만으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새해가 밝았고 바로 결과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시간이 되길 그토록 기다리긴 했는데 막상 이렇게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고 나니 말로 할 수 없도록 떨리는 게 사실이다. 거기엔 두 가지가 모두 걸리긴 하다. 막상 그토록 원하던 합격을 하는 상황이라 해도 설렘보단 긴장이 될 게 뻔하며, 역시나 떨어졌다 해도 당연히 다시 공부할 테지만 실망감이 감돌 게 뻔하다. 예전에 시험을 볼 땐 일기장에 일기를 쓰던 편이었으니 낙방의 괴로움과 현실 인식에 대한 기록들을 모두 남겼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일기장엔 결과 발표일의 만감을 모두 기술해놓았을 것이기에, 막상 지금 그 기록들을 볼 수 있다면 하나도 다르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또는 시원하게도 경수와의 트러블로 인해 일기장은 모두 버렸다. 나의 진의를 궁금하며 일기장을 보다가 감정이 상한 적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에 덧붙여 일기장에 갇힌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나의 마음도 있었을 터이다. 내가 좋아서 기록을 남겼지만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그 기록들을 볼 수는 없고 그때 기록의 연장선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의 연장선에서 하나하나 써나가려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정리기를 결과 발표 뒤로 미루다

 

원랜 결과가 나오기 전에 2018년 정리기를 모두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써보진 않았지만 총 3편 정도로 쓰여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고 몇 번의 도전이 있었지만 결국 쓰진 못했다.

 

근데 왜 그렇게 빨리 써야 한다고 생각했냐면, 결과가 나오면 반성이든 회고든 하게 될 것이기에,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에 따라 윤색된 내용일 것이기에 그 전에 결과에 따라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의미의 회고록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더 관심 갖게 된 것이 과정을 결과에 한정지어서 볼 것이 아니라, 과정을 과정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 과정을 결과에 한정시킬 경우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쓰여지게 되며 그 반대 경우라면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다 하더라도 비관적으로 쓰여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살아온 과정들은 결과의 여하에 따라 사라지거나 과장되거나 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쓰려 했는데, 지금 상태가 어쨌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고 또 새해가 밝아 맘이 싱숭생숭하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쉬이 써지지 않았다. 물론 시간은 있으니 쓰려고 했다면 어떻게든 쓰여질 테지만 그것보단 좀 더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무르익은 그 감성을 담아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젠 2018년 정리기를 써볼까 하다가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나의 블로그 사상 최초로 공개적으로 게임에 대한 공략집을 편집해서 올리게 됐던 것이다.

 

 

 12월 30일엔 현세가 찾아왔다. 그래서 2018년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고 31일에 돌아갔다.    

 

 

 

게임 공략 업로드와 한문공부 업로드의 닮은 점

 

여기서 잠시 삼천포로 빠져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갑자기 게임 공략을 올리게 됐으니 말이다. 그건 단순히 생각하면 글을 써야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맞다, 분명히 어떤 무거운 의무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그와 같이 게임 공략을 편집해서 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건 그런 이야기보다 블로그 자체에 게임을 올렸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엔 글에 대한 나의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어 있다. 단재학교에 근무하던 초반엔 글에 대한, 더욱이 포스팅 하는 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의 순수한 창작글이 아니면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하는 행사를 정리했거나 글이 아닌 사진으로 도배를 했거나 하는 글들은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 포스팅할 수 있는 글들은 몇 날 며칠을 보내며 힘들여 쓴 글들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범위를 좁히고 보면 쓸 수 있는 글들은 엄청나게 제약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2016년엔 258개의 글만을 올리게 된 것이고, 2017년엔 79개의 글만을 올리게 된 것인데, 그 이전엔 더 적은 글을 올렸을 거라는 걸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사진 파일들이 랜섬웨어로 사라지게 된 이후엔 생각이 급속도로 바뀌었고 단재학교에 다닐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뒤엔 생각이 정리가 됐다. 어떤 식으로든 남겨두지 않으면 말끔히 사라지며 나의 과거는 상고해볼 여지조차 사라지게 된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남겨둘 수 있을 때 사진으로라도, 간단한 기록으로라도 남겨두는 게 훨씬 좋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 단재학교에서 했던 모든 기록들을 나의 블로그로 끌어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예전에 써서 사라진 것들을 수집하여 하나의 목록으로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바로 이런 생각들의 변화가 올해 분수령을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문공부와 블로그는 전혀 접점이 없는 별개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반영되다 보니, 마침내 접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 중순부턴 블로그에 공부한 것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나의 자료집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정리가 되어가는 만큼 한문공부에 대한 애정도 더 크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겨우 100명도 안 되는 사람이 들어오던 블로그에 이젠 최대 600명까지도 들어오는 블로그로 바뀌었던 것이다. 내가 포스팅할 수 있는 글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만큼 블로그는 더 편안한 나의 공부장이자 동반자가 되었고 그런만큼 사람들도 더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어떠한 결과든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런 변화는 곧바로 임용공부에 대한 생각에도 충분히 반영되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젠 공부한 것들을 바로 바로 올리게 되면서 예전엔 그저 열심히 공부했지라는 피상적인 느낌만을 받았던 데에 반해, 이젠 직접적으로 확인 가능한 상태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그걸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며 나의 공부상태를 수시로 확인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증폭시켰고 올해 공부에 대한 여러 감상들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게 된 한 해였고 그 덕을 막상 시험을 보면서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예전엔 문제조차도 잘 풀지 못해 끙끙대고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이번엔 분명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이고 문제와 한껏 어우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겨우 8개월 공부한 주제에 ‘1차 합격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 감정은 시험을 본 후 들었던 진실한 감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외적으론 겨우 8개월 공부했는데 이런 상태에서 합격한다면 그건 지금껏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심어주는 것이겠죠.”라고 했지만, 심정적으론 그리고 나 자신 위주로 생각해보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젠 그 결과를 오늘 보게 되어 있다. 지금 시간은 241분으로 이제 7시간 30분 후엔 정말 그 결과를 목도해야 하고 어떻게든 올해의 방향설정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 솔직한 기분은 한 번 정도는 1차 합격의 영예를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올해 공부하는 데에도 탄력을 받을 거 같으니 말이다. 2008년에 보았던 임용고사는 시험제도가 바뀌며 본 첫 해의 시험이었다. 객관식으로 1차 합격자를 가려내던 시기에 경기도에서 시험을 봤다. 그땐 엄청난 결과가 나와서 경기도에선 떨어졌지만 전북에서 봤다면 붙을 만한 점수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건 분명히 나의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난 이미 1차를 합격한 전력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일 뿐, 실제로 합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축되고 낙담하게 됐던 것이고 그런 현실이 작용했는지 그 후로 보았던 두 번의 시험에선 제대로 기를 펴지도 못하고 죽만 쒔던 것이다.

 

과연 오늘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며, 나는 그걸 어떻게 나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예전에 그랬듯 그저 낙담하고 주저앉아 한껏 쭈그러지기만 할까, 아니면 이걸 기회로 삼아 정말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결과 발표 전 시간 별 감정변화

 

 

838포근히 안겨온 문제, 과연 어떤 점수가

이제 한 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과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역시나 늘 그랬듯이 실의에 잠겨 있게 될까?

지금 샤워를 하면서 잠시 시험 볼 때의 장면이 생각났다. A형 시험지에선 못 푸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고 문제들이 나보고 풀어달라고 안겨오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물론 두 가지는 틀렸다. ‘문화유산 답사하기유적지 답사로 적었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했다에서 밑줄 친 곳이 대명사임에도 명사로 적은 게 그것이다. 물론 전체를 다 풀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틀린 게 있겠지만, 짧게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그러니 이번에 결과가 나오면 확인해봐야 하는 게 과연 문제가 포근히 안겨왔다는 느낌이 정말 맞는 것이었는지, 그냥 거만한 마음일 뿐이었는지 하는 것과 보자마자 답안을 갈무리하지 않고 바로 답안을 작성했던 게 맞는 것인지, 갈무리를 한 후에 차근차근 적어나갔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1차 합격을 하거나 고득점으로 낙방한다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점수가 형편없다면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갈무리한 후에 답을 적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과연 어떨 것인가?

 

928내 실력을 확신하진 않지만 그래도 합격도 가능하다 생각한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확인할 때가 오니 떨려오긴 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 떨림이 더 배가 될 것 같아 창월의 십자가를 할까 하다가 그래도 어쨌든 떨릴 것은 똑같을 것 같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갑자기 창월의 십자가를 올리게 되었듯이 정리할 수 있는 건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다 보니 시간은 남고 맘은 정신없이 왔다 갔다하니 그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정리할 수 있는 카오스링 얻는 법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올렸다. 뭐 이건 내가 창작해서 쓰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누군가 정리해놓은 것들을 수집하여 나의 방식대로 편집하며 글을 조금 다듬고 사진까지 첨부하여 만드는 정도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도 애정이 필요한 일이고 정신을 집중하고 해야 하는 일이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보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는 것은 명확하다. 어쨌든 결과는 나올 테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맘은 사정없이 떨리고 흔들리며 과연 결과 발표 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번엔 경험 삼아 봤다고 말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결과엔 태연할 수가 없다. 흔들흔들, 그렇게 흔들리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고 결과를 지켜보려 하고 있다.

 

951지금 나 떨고 있냐

이제 목전에 이르렀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억지로 들어가지 않고 있지만 벌써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이젠 진실을 목도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정말 가슴이 콩닥거리고 과연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지금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건 확실히 욕심이지만, 반면에 그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합격을 한 사람들도 실력이 완전히 무르익었기 때문에 합격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나 어떤 이유로든 운이 작용한 측면이 있고 그렇게 한 번에 건너간 사람에겐 더욱이 이 순간의 실력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의 한문에 대한 마음이나 실력도 완전히 떨어진다고 하긴 그렇다. 운이 좋아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면 나 또한 그걸 기다려본다고 한들 꼭 욕심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욕심도 실컷 내고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 맘껏 자랑도 하고 힘내서 살아보자. 올 한해의 꿈이 있다면 이 기회를 맘껏 살려 맘껏 한문에 대한 마음도 키우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으면 좋겠다.

958분에 교육청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아직도 공문이나 합격자 발표가 뜨지 않았더라. 떨린다. 엄청.

 

107닥쳐왔다, 엄청 떨린다

엄청 폭주하는지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고 있다. 하긴 한순간에 몰려서 결과를 보고 한순간에 확 빠지게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나 빨리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니 전혀 걱정은 되지 않지만, 이제 정말 결과를 봐야만 하는 때라는 사실이 가슴을 엄청 뛰게 만든다. 이제 곧이다. 잘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014홈페이지에 들어가질 못하다

아직도 들어가 지지는 않고 있다. 엄청 폭주하나 보다. 다들 맘이 똑같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이 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비우고 있다. 떨린다.

20분이 되어서야 네이스에 들어와졌다. 다겸이에게 연락이 왔는데 합격했다더라. 정말 대박이긴 하다. 멋지다. 그리고 대단하다.

 

 

1027낙방이지만 가능성을 엿보다

결국 들어와서 결과를 봤다. 전공 점수는 54.33이고, 교육학은 무려 14점이나 맞았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지만 아쉽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합격자 명단에 없다고 한다. 아마도 떨어졌지만 됐다 할지라도 커트라인 정도에서 되는 정도였을 것이다.

전북의 커트라인은 71.66점이 나왔다. 나는 68.33이니 3.33이 부족한 상황이고 결과로만 역추를 해보자면 B형에서 긴장을 풀지 말고 두 문제 정도를 더 열심히 풀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문화유산 답사하기대명사는 당연히 맞았어야 했고 B형에서도 긴장을 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말은 이젠 조금 된다 싶으면 된다는 게 아니라 할 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서울과 충남은 66점이 커트라인이라는 거다. 물론 2차에서 획기적으로 변화가 없다면 그냥 1차를 합격한 정도로만 만족해야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2차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쨌든 기회는 있다는 것이고, 이건 마치 2008년 임용고시와 판박이이긴 하다. 그때도 1차 시험 점수가 경기도에선 떨어지지만 전북이었으면 붙을 점수였으니 말이다. 올핸 이상하게도, 아니 재밌게도 전북은 71.66이고 충북은 72점이기까지 하다. 어느 지역이 어떻게 높을지, 그리고 어떤 상황이 펼쳐질진 아무도 알지 못한다.

 

 

 

 

7년 만에 재도전한 임용 낙방기

낙방의 괴로움보다 즐거움이 흥건하던 순간

 

 

10시가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근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폭주한 탓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네이스 조차도 열리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2018년 마지막 날을 축복하며 

 

 

 

다겸이의 합격, 그리고 난?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다겸이에게 전화가 오더라. 다겸이가 결과를 보고 이렇게 전화를 줄 정도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일 거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더니 역시나 합격했다고 하더라. 이럴 때 보면 다겸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1차 합격도 누군가에겐 일평생 이루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이기도 하지만 다겸이는 어떤 식으로든 그걸 이렇게 보란 듯이 이루어내고 있긴 하니 말이다. 더욱이 올핸 과연 이루어낼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그걸 이렇게 보란 듯이 이루어냈다는 점이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66(교육학 15, 전공 51)이라고 말해주고 사진도 보내줬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난 후에 계속 접속을 시도해봤지만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콩닥콩닥 뛰더라. 눈으로 직접 확인해도 오만 생각이 겹칠 테지만, 이렇게 가만히 놓고 있어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결국 1027분에야 네이스에 접속이 되었고 조금의 버퍼링 후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교육학 14점에, 전공 54.33점이다. 그래서 총점 68.33점임에도 떨어진 것이다. 충남의 경우 66점이 커트라인이었고 전북도 그 근방이거나 더 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을 뽑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최초로 높은 점수가 나왔음에도 커트라인이 높기 때문에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71.66이 커트라인이더라. 3.33점이 모자라 1차 합격을 못한 것이란 사실을 현실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희망을 확인하다

 

솔직히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에 시험을 보며 풀 수 있을 정도였고, A형 같은 경우는 완전히 나에게 포근히 안겨온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 그게 점수와 연결이 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나오고 나서 보니 내가 쓴 것들은 거의 채점을 줬을 거라는 건 알겠고 아예 손도 못 댄 것들은 당연히 틀렸다는 걸 알겠더라. 그리고 그건 희망의 전조이기도 했다. 작년엔 정말 오랜만에 한문을 공부한 순간이었다. 7년 동안 한문을 놓고 있다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음에도 여느 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좋은 실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니 올해는 그걸 기반 삼아 더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합격까지도 바라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나서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날에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예전엔 무작정 부안으로 떠난 적도 있었지만, 다른 해엔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이 감상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 다겸이는 그래도 합격했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 있었고 저녁을 함께 먹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녁은 어머니와 먹고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하더라. 그래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버스는 막힘없이 가서 병무청쪽으로 가더라. 그래서 완산경찰서에서 내릴까 하다가 더 가서 병무청에서 내렸고 전주고쪽으로 올라갔다.

 

그때 김형술 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마음이었고 그만큼 나에게 관심 가져준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쉽게 떨어졌다는 것을 어필했고 다겸이가 붙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니 아쉬워해주며 다음 주부턴 소화시평 스터디가 다시 시작되니 그때부터 합류하라고 말해주시더라. 그래도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니 정말로 좋았다.

 

다겸이와 만나선 동태탕집에서 동태탕을 먹었다. 동태탕은 올해부터 6.000원에서 7.000원으로 가격이 상승되었다. 그래도 이 만한 집은 없기에 맛있게 먹었다. 원래 같으면 당연히 하루일기에 갔을 텐데 주인이 바뀌며 커피양도 줄었고 맛도 차이가 생겼으며 아메리카노 리필도 무료에서 1.000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에 다른 곳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어제 금희와 현선이를 만나며 눈여겨보았던 노트릭이란 커피숍이었다. 그곳에 여장을 풀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바로 여기서 나의 점수도 공개하게 되었다.

 

 

 

 

 

첫 도전에 높은 점수, 독이 되지 않도록

 

다겸이는 내가 떨어졌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터라 조심히 물었다. “몇 점인지 알려줄 수 있어.” 나야 이번에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물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말하는데 조금 거리낌이 있었다. 어차피 떨어졌긴 하지만 다겸이보단 2.3점이 높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도토리 키재기라 말하긴 뭐해도 당사자 입장에선 오랫동안 공부해온 자기와 이제 막 공부를 하기 시작한 나 사이에 간극은 명확했기 때문에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되게 좋아해주며 아예 훌륭한 건빵씨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일본어로 찾아보니, ‘릿빠’, ‘스바라시이와 같은 말들이 있었다.

 

그래도 좋게 봐주고 응원해주며 자신의 감정을 담아 화를 내거나 그러지 않으니 정말 좋았다.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가능성은 충분히 봤다. 그런데 어느 것이든 좋은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내가 이것에 만족한 나머지 머물게 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점수가 나오게 되고 오히려 절망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가능성을 봤다고 거만하지 말고 그 페이스를 잘 지켜서 내년 이맘때엔 정말 1차 고득점 합격의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지금은 부담이기보다 떨림이고 기쁨이다.

 

그러다 보니 다겸이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나 보다. 오늘은 저녁에도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녁에도 같이 오게 되었고 족발을 시켜서 먹었다.

 

시험 결과 발표가 나온 날 함께 그 기분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이 기분으로 올해는 정말 제대로 공부해보려 한다. 이번엔 경서를 공부한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공부하는 법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지금의 방향도 잡았으니 이걸 더 이용하여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인용

목차 / 지도 / 사진

1월 기록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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