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갖게 된 건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 헬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고 가장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한 V3라는 카메라였다. 확실하게 기억에 나진 않지만 2003년에 사서 2005년까지 거의 2년 정도를 사용한 것 같다. 그 카메라의 마지막은 사범대 독서실에 놔뒀었는데 감쪽 같이 사라지며 나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 다음엔 V3와 비슷하지만 회전 액정을 달고 나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바뀐 알파7이었다. 이 카메라로 많은 일상을 담을 수 있었고 2007년에 떠났던 실학기행이나, 2009년에 떠났던 국토종단, 그리고 2011년에 떠났던 사람여행까지 임용을 치열하게 준비하던 순간과 임용시험을 그만두고 방황할 때, 그리고 단재학교에 교사가 된 초기의 순간들을 빠뜨림 없이 담아냈다. 어찌 보면 V3라는 카메라는 20대 초중반의 내 모습을 담아낸 카메라라 할 수 있고 알파7은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의 모습을 담아낸 카메라라고 할 수 있겠다.
EX2F를 만나다
2011년에 단재학교에 교사로 합류했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돈을 벌게 되면 기존의 쓰고 있던 물건에 대해서도 기변 욕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건 일반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것을 했고, 그 다음엔 바로 카메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DSLR과 같은 고가형 카메라들과 미러리스와 같은 가벼우면서도 렌즈를 교체하며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였는데 나에게 사진기는 일상을 편하게 담을 수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7과 같은 가볍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삼성에선 EX 시리즈의 카메라가 나오고 있었고 그 당시에 EX2F가 막 발매한 뒤였다. 당연히 돈도 벌고 있던 때였고 한 번 카메라를 사면 긴 시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신중을 기하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이 카메라로 맘을 정했다. 그래서 당연히 새 제품을 사려 했지만 중고나라를 검색하다보니 새 제품인데도 몇 만원 싸게 내놓은 제품이 있어서 그걸 직거래로 사게 됐다. 때는 2012년 9월 23일이다.
세 번째 카메라 기변을 감행했고 이 카메라는 나를 거쳐 갔던 두 개의 카메라와는 달리 가장 많은 시간동안 나와 함께 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담아냈다. 단재학교의 모든 여행 및 일상들을 빠짐없이 담아냈고 단재학교를 그만 두고 나온 이후엔 심심할 것 같은,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임고생의 일상을 담아내며 하루하루가 특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사진에 대한 생각이 변하다
이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사진에 대해서 생각 자체가 바뀌었다. 예전엔 특별한 날에만 사진을 찍어야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카메라를 들이대 댄다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상황이 생길 때만 사진을 찍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함과 일상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자칫 ‘일상을 거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 어찌 보면 지금 나에게 일상이라 생각되는 이 순간조차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특별한 날이라 생각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매 순간을 그저 그런 날들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식할 것이 아니라 특별하면서도 의미 있는 순간들로 만들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은 날이 될 테고, 그 순간의 순간에 머물러 충실히 보낸 시간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턴 늘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순간을 담으려 노력했고 그렇게 담아낸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상이란 지겨움이 아닌, 일상이란 특별함으로 의식하며 그 안에 머물려 노력한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카메라는 특별함을 담아내는 존재가 아닌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送카메라文
그랬던 카메라를 어제 잃어버렸다. 거의 7년 동안 나와 함께 다니며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기록해냈던 카메라다. 카자흐스탄에 가선 두 번이나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제 기능을 하여 카자흐스탄 여행을 생동감 있게 담아낼 수 있었다. 작년에 소화시평 스터디 모임으로 내소사의 뒷산인 관음봉을 타게 됐을 때도 나뭇가지에 카메라 끈이 걸려 바닥에 떨어졌었다. 카메라 액정에 기스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잘 작동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임용고시를 봤음에도 그때의 광경들을 현장감 있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며 나의 눈이 되어줬고 나의 기억의 일부가 되어줬던 카메라는 이제 나의 곁에 없다. 7년 간 긴 시간을 함께 했던 만큼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수많은 공산품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긴 시간동안 함께 하며 나의 손때가 묻고 나만이 사용하던 방식에 따라 최적화된 나만의 카메라였으니 말이다.
잘 가라! 7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나의 일상을 매우 특별하게 기록을 남겨줘서 정말 고맙다. 너로 인해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됐고 너를 쓰는 동안 사진에 대해, 기록에 대해 생각 자체가 바뀌었으니 너야말로 나에게 일상의 특별함을 알려준 스승이기도 했다. 고맙다. 그리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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