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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국론, 제도론 - 4. 교육의 지향점은 자유가 아닌 협력이다 본문

책/교육(敎育)

교육입국론, 제도론 - 4. 교육의 지향점은 자유가 아닌 협력이다

건방진방랑자 2022. 2. 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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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육의 지향점은 자유가 아닌 협력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 역사이념의 체현

 

교육이란 그 교육이 처한 역사가 체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 상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교육은 인간형성(Human Building)이다. 빌딩에는 설계도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그 역사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희랍인들의 교육은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폴리스는 전쟁국가였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전사(Warrior)들을 길러내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한 커뮤니티 형태였다. 따라서 희랍의 모든 교육이념은 어떻게 이상적인 전사를 길러내느냐 하는 명제로 집약된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면 너무도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유에 치를 떨게 된다. 가혹한 몸 규율의 강요, 철저한 재산공유, 우생학적 목적을 위한 가족관계의 철저한 파기, 엄마ㆍ아버지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결혼은 완벽하게 국가가 조종한다, 애조풍(哀調風)의 리디아 음악이나 흥겨운 이오니아 음악이 금지되고 용기를 북돋는 도리아 음악, 극기와 절제를 자아내는 프리지아 음악만 허용된다, 시인이나 비극적 드라마는 추방된다. 이러한 괴이한 교육론도 그가 처한 아테네의 현실 속에서는 매우 리얼한 현실적인 이상이었다.

 

서양 중세사회가 지향한 인간상의 이념은 전사가 아닌 종교적 성직자였으므로, 그 교육철학도 중세보편성을 지향하는 종교교육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의 교육은 뿌리 깊은 중세기의 종교적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문주의적 전략(humanistic strategy)이었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귀족국가였다. 조선조의 교육철학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귀족관료를 수급하기 위한 군자(君子)를 길러내는 방편으로서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때의 교육엔 그 시대의 인간상이 들어 있다. 미국의 전쟁영웅이 되어야 했던 캡틴 아메리카, 그처럼 우린 독자생존하는 인간형을 바란다. 

 

 

 

시민이란 무엇인가

 

자아!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무엇일까? 전사일까? 성직자일까? 군자일까? 인문학자일까?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을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민주시민인 것이다. ‘시민(市民)’이란 무엇인가? ()의 민()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사람이다. 한마디로 장돌뱅이인 것이다. 장돌뱅이를 서구 역사학에서 부르죠아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상행위의 자유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개체들이었다. 이 부르죠아가 프롤레타리아로 확대되고, 프롤레타리아가 20세기 민족국가에서 다시 국민으로 확대되어 오늘의 보편적 시민의 개념을 형성한 것이다.

 

 

2016년에 있었던 교컴 수련회. 여기서도 시민성이란 말이 등장한다.  

 

 

 

20세기 대중교육의 등장

 

이 시민의 개념과 더불어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개념이 대중교육(mass education)’이다. 한 국가에 소속한 구성원 전체를 국가의 돈으로 집단적으로 교육시킨다고 하는 발상은 산업혁명의 고도의 발전과 그에 수반된 20세기 민족국가의 성립, 그 이후에나 성립한 인류의 새로운 체험이다. 1세기의 실험으로는 아직도 인류가 이 체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국방비의 2배 가까운 돈을 대중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대중교육의 소이연은 대중사회 즉 민주사회의 균질된 인력의 형성, 그리고 평균적 가치의 보편화라는 테제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

 

 

대중교육이 잘못 흐르면 전체교육이 된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시민의 제1덕성: 자유 아닌 협력

 

그런데 이러한 평균적 가치의 시민상의 핵심을 자유(libertas)’로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오류이다. 민주는 오직 성숙한 인간의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도덕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민주사회 제1의 명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민의 제1의 덕성은 자유가 아니라, 협력이다.(The primary virtue of a citizen is not freedom, but cooperation.)” 자유는 소극적 가치이며 협력은 적극적 가치이다.

 

바로 시민사회를 형성해가는 주축수단인 대중교육의 소이연은 바로 협력하는 인간(homo cooperativus)’에 있는 것이다. 시민은 개인의 모든 덕성을 포섭하지만, 반드시 협력을 전제로 해야만 시민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 협력이란 유기적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는, 칸트 미학의 과제상황이 시사하듯이, 부분들의 협력을 위하여 가설적으로, 유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대중교육의 구현체인 공교육의 장은 고등한 지능(high intelligence)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협력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제1원리를 우리는 끊임없이 환기해야 한다. 협력은 자기절제와 대의의 존중을 전제로 한다.

 

어느 회장님이 아주 특별한 엘리트 고등학교를 만들기 이전에 상의를 하러 나의 서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의 구상의 부당함을 계속 지적했다. 그러한 소수 엘리티즘의 구상, 사교육의 최고급의 가능성을 정규교육에 포섭하고자 하는 그의 구상은 결코 미래를 크게 내다본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기관에서 배출된 인재가 국가에 유용한 인물로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혁신적 발상을 나는 제시했다. 당시 그 회장님은 나의 언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재웹툰이야말로 협력을 제대로 보여준 경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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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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