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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연암가 청렴결백 - 3. 충익공의 근검절약과 부마 문정공의 청렴함 본문

문집/과정록

연암가 청렴결백 - 3. 충익공의 근검절약과 부마 문정공의 청렴함

건방진방랑자 2020. 4. 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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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익공의 근검절약과 부마 문정공의 청렴함

 

忠翼, 早被上知, 歷敭顯要. 而皆在國步艱難之日, 身且不得自顧, 况家事乎哉?

搶攘八年之間, 吾家多在延安遂安安州之地, 流轉飄泊, 飢困萬狀.

中興以來, 公亦復出鎭雄蕃, 入掌邦計. 然長於謀國, 而短於謀家, 田畝之入, 不足以支數朔, 養生之具, 十闕七八, 終身銀盃, 乃策勳日賞賜也, 餘無一酒鎗茶鼎.

酷好書畵, 嘗遇良畵師, 篋無一絹之貯, 謀之又不得, 乃漂洗朝衣以繪之.

晚處謫籍, 蔬糟屢空, 見於詩牘者亦多.

蓋冢子文貞, 駙馬也, 而其窘乏猶如此焉. 文貞公初被儀賓之選, 賜宅於貞洞, 以其侈大而辭之, 更占太平洞第, 亦爲近於親舍, 以便覲省也. 忠翼公舊宅, 今尙在倉洞, 其外堂爲房二間板廳一間而已. 文貞公最受宣廟眷愛, 然於王子女應給田結外, 別無私賜與. 貞安主被服, 雖垢汙渝黦, 命宮人往視, 苟不弊弊, 未嘗輒賜新衣, 主恒以衣不易弊爲憂, 至今相傳爲笑談.

 

 

 

 

해석

忠翼公, 早被上知,

도헌공의 아드님인 충익공께서는 일찍이 임금께 알아짐을 당해

 

歷敭顯要.

요직을 두루 거치셨다.

 

而皆在國步艱難之日, 身且不得自顧,

그러나 모두 국운이 가난하던 때에 있어 몸조차 스스로 돌볼 수 없는데

 

况家事乎哉?

하물며 가정의 일은 오죽할까?

 

搶攘八年之間, 吾家多在延安遂安安州之地,

임진왜란 8년 동안에 우리 집은 많이 연안ㆍ수안ㆍ안주의 땅을 떠돌며

 

流轉飄泊, 飢困萬狀.

흘러 다니고 표류하며 빈곤하기가 여러 모양이었다.

 

中興以來, 公亦復出鎭雄蕃,

나라가 다시 일어선 이래로 공께서는 또한 다시 외직으론 큰 지역을 다스리셨고

 

入掌邦計.

내직으론 나라의 회계를 관장하셨다.

 

然長於謀國, 而短於謀家,

그러나 나라 일을 도모하는 데는 장점이 있었지만 가정 일을 도모하는 데는 단점이 있으셨다.

 

田畝之入, 不足以支數朔,

밭의 수입은 몇 달을 지탱하기 부족했고

 

養生之具, 十闕七八,

살림살이는 108~9는 빠져 있었으며

 

終身銀盃, 乃策勳日賞賜也,

종신토록 지닌 은 쟁반은 곧 책봉 받던 날 하사 받은 것이었고

 

餘無一酒鎗茶鼎.

나머지는 하나의 술그릇이나 차 달이는 기구는 없으셨다.

 

酷好書畵, 嘗遇良畵師,

매우 서화를 좋아하셨는데 일찍이 솜씨 좋은 화가를 만났음에도

 

篋無一絹之貯, 謀之又不得,

상자엔 하나의 간직하던 비단도 없어 도모하여 또한 구할 수 없었기에

 

乃漂洗朝衣以繪之.

이에 조정의 관리복을 빨아 거기에 그리도록 하셨다.

 

晚處謫籍, 蔬糟屢空,

만년에 귀양지에 있을 적엔 나물과 거친 밥도 자주 비었으니

 

見於詩牘者亦多.

이런 이야기는 시와 편지에 보이는 게 또한 많다.

 

蓋冢子文貞[각주:1], 駙馬也, 而其窘乏猶如此焉.

대개 맏아들 문정공 박미(朴瀰)께서는 부마였지만 궁핍하기가 오히려 이와 같으셨다.

 

文貞公初被儀賓之選[각주:2], 賜宅於貞洞,

문정공께서는 처음에 왕실의 간택을 받을 적에 정동의 집을 하사받으셨는데

 

以其侈大而辭之, 更占太平洞.

사치스럽고 크다고 여겨 사양하고서 다시 태평동 집을 얻으셨다.

 

亦爲近於親舍, 以便覲省也.

또한 본가에서 가까워 부모님을 찾아뵙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忠翼公舊宅, 今尙在倉洞,

충익공 박동량(朴東亮)의 옛 집은 지금 아직도 창동에 있으니

 

其外堂爲房二間板廳一間而已.

외당은 방 두 칸에 대청이 한 칸으로 지었을 뿐이었다.

 

文貞公最受宣廟眷愛, 然於王子女應給田結外,

문정공 박미께서는 선조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지만 왕의 자녀들에게 응당 주어지는 전답 외엔

 

別無私賜與.

별도의 개인적으로 하사받은 건 없으셨다.

 

貞安主被服[각주:3], 雖垢汙渝黦,

정안옹주가 입은 옷이 비록 때로 더럽혀져 검은 물이 흐르더라도

 

命宮人往視, 苟不弊弊,

궁녀에게 가서 보도록 명하자 진실로 더럽혀지지 않고선

 

未嘗輒賜新衣,

일찍이 갑자기 새 옷을 하사하진 않으셨다.

 

主恒以衣不易弊爲憂,

옹주는 항상 쉽게 해지지 않는 것을 걱정했고

 

至今相傳爲笑談.

지금에 이르러 서로 전해지는 농담거리가 되었다.

 

 

인용

전문

 

 

 

 

  1. 총자(冢子): 예전에, 황태자나 왕세자 또는 적장자를 이르던 말 [본문으로]
  2. 의빈(儀賓): 예전에, 왕족의 신분이 아니면서 왕족과 통혼한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 [본문으로]
  3. 정안주貞安主(1590~1660): 문정공의 부인으로 선조의 다섯째 딸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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