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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연암가 청렴결백 - 4. 증조부 박미와 증조모 정안옹주의 검약 본문

문집/과정록

연암가 청렴결백 - 4. 증조부 박미와 증조모 정안옹주의 검약

건방진방랑자 2020. 4. 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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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증조부 박미와 증조모 정안옹주의 검약

 

國朝儉德, 固出前代, 而亦吾祖妣, 性有所安. 仁穆后喪畢, 分賜服御器物諸王子女家, 率得金銀珍玩, 貞安主獨取宣廟御畵蘭竹一屛以歸, 所尚在此, 則所不屑可以知也.

文貞公雖早貴, 而車馬僕從不能備也. 嘗有詩云: ‘八十導前卒, 蹣跚鞚馬奴. 小童且隨後, 嚴沍尙無襦. 市井嘲儀簡, 妻孥愧跡孤. 試看呼唱處, 猶使路人趨.’ ‘八十導前卒, 引路卒, 歷事三世, 年將八十云. 盖分窶如此, 而處之泊如也.

公之風流文采, 輝映當時, 座客常傾一代之選.

性又喜酒, 然往往不得一醉, 鎭日淸坐而罷, 猶且急人之難, 脫驂分宅, 曾無吝色.

忠翼公久謫南荒, 全家隨往, 公旣抱隱痛, 疋馬短衣, 長在道路. 又遭母夫人之喪, 長姑叔弟, 皆卒於南千里之外, 三返旅櫬.

是時貞安主獨處京舍, 摒當拮据, 辦應有無, 甁罄槖倒, 鞠瘁幾盡. 以此習於辛苦, 晚歲猶自執女紅.

凡此昔之人, 勤勞艱難, 百世子孫不能忘者也.

貞安主享年七十一歲, 吾曾王父兄弟七人姉妹四人, 皆承含飴之弄, 而及於曾孫.

惟此爲勤儉惜福之餘慶, 而天之報施豊嗇, 不可誣者耶.

 

  

 

해석

國朝儉德, 固出前代,

조선의 검약스런 덕이 진실로 고려 때보다 특출 났지만

 

而亦吾祖妣, 性有所安.

또한 우리 할머니께서는 성품을 편안히 여기셨다.

 

仁穆后喪畢[각주:1], 分賜服御器物諸王子女家,

인목왕후의 초상을 마친 후 의복과 기물을 임금의 딸들에게 나누어 하사했는데

 

率得金銀珍玩,

대체로 금과 은의 진귀한 놀이개를 얻어갔지만

 

貞安主獨取宣廟御畵蘭竹一屛以歸,

정안옹주만은 홀로 선조 임금이 그린 난초와 대나무 병풍 하나만을 가지고 돌아와

 

所尚在此, 則所不屑可以知也.

숭상하는 것이 여기에 있었으니 좋아하지 않은 것이 무언지 알 수가 있다.

 

文貞公雖早貴, 而車馬僕從不能備也.

문정공 박미께서는 비록 일찍 귀하게 되셨지만 수레와 말 머슴을 갖출 수 없으셨다.

 

嘗有詩云: ‘八十導前卒, 蹣跚鞚馬奴. 小童且隨後, 嚴沍尙無襦. 市井嘲儀簡, 妻孥愧跡孤. 試看呼唱處, 猶使路人趨.’

일찍이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八十導前卒 蹣跚鞚馬奴

앞에서 인도하는 80살 머슴과 비틀거리며 말에 재갈 물린 머슴과

小童且隨後 嚴沍尙無襦

어린 아이 또한 뒤에서 따르는데 추운 날인데도 오히려 저고리도 없다네.

市井嘲儀簡 妻孥愧跡孤

시정배들은 간단한 행차를 조롱하고 처자는 고독한 자취 부끄러워 하나

試看呼唱處 猶使路人趨

시험삼아 보라. 벽제하는 곳에 오히려 행인들 성큼성큼 피하네.

 

八十導前卒, 引路卒,

八十導前卒라는 것은 길을 인도하는 머슴이

 

歷事三世, 年將八十云.

차례대로 3대를 섬겨 나이가 장차 80살이라는 것이다.

 

盖分窶如此, 而處之泊如也.

대체로 나누어줘 가난함이 이와 같았지만 거처함엔 담박한 듯했다.

 

公之風流文采, 輝映當時,

문정공은 풍류와 문채가 당시에 빛나고 비추어

 

座客常傾一代之選.

좌객들은 항상 한 세대를 기울게 할 정도의 선발인들이었다.

 

性又喜酒, 然往往不得一醉,

성품은 또한 술을 좋아했지만 이따금 만취할 수 없었고

 

鎭日淸坐而罷, 猶且急人之難,

하루 종일 맑은 자세로 앉아 파하셨지만 오히려 남의 어려움엔 급히 하셔서

 

脫驂分宅, 曾無吝色.

멍에를 벗기고 집을 나눠 일찍이 인색한 기색이 없었다.

 

忠翼公久謫南荒, 全家隨往,

충익공께서는 오래도록 남쪽에 귀향 가셔서 온 집안이 따라 갔지만

 

公旣抱隱痛, 疋馬短衣,

공은 부마로 가지 못해 애통함을 안고 한 필의 말과 단벌 옷으로

 

長在道路.

길게 도로에 왕래하느라 도로에 있었다.

 

又遭母夫人之喪[각주:2], 長姑叔弟,

또한 모부인의 상을 당했고 큰 고모와 셋째 아우가

 

皆卒於南千里之外, 旅櫬[각주:3].

모두 남쪽 천리 밖에서 돌아가서 세 번이나 객지에 죽은 이를 반장(返葬)하였다.

 

是時貞安主獨處京舍, 摒當拮据[각주:4],

이때에 정안옹주는 홀로 서울집에 거처하며 곤란한 가정살림을 처리하셨고

 

辦應有無, 甁罄槖倒,

있고 없음을 판별하며 응했지만 쌀독이 비고 주머니가 엎어져

 

鞠瘁幾盡.

몸이 야위어 거의 말라갔다.

 

以此習於辛苦, 晚歲猶自執女紅[각주:5].

이 때문에 간난신고에 익숙해져 만년에도 오히려 스스로 길쌈을 집행하셨다.

 

凡此昔之人, 勤勞艱難,

무릇 이것은 옛 선조께서 부지런하게 일한 것과 가난했던 것은

 

百世子孫不能忘者也.

백세의 자손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이다.

 

貞安主享年七十一歲, 吾曾王父兄弟七人姉妹四人,

정안옹주는 향년 71세를 사셨고 우리 증조부 74녀는

 

皆承含飴之弄, 而及於曾孫.

모두 자손에 대한 사랑을 이으셨고 증손자인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惟此爲勤儉惜福之餘慶,

오직 이것은 근검하여 복을 아껴 남은 경사로

 

而天之報施豊嗇, 不可誣者耶.

하늘의 보시가 풍부하고 인색함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인용

전문

 

 

 

 

  1. 인목왕후(1584~1632): 선조의 계비(繼妃). 김제남의 딸이자 영창대군의 어머니. [본문으로]
  2. 모부인母夫人: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본문으로]
  3. 여츤(旅櫬): 객지에서 죽은 자의 영구(靈柩)를 말한다. [본문으로]
  4. 길거(拮据): ① 옹색하다 ② 바빠서 쩔쩔 매는 모양 ③ 군색하다 ④ 경제 형편이 곤란하다 [본문으로]
  5. 여홍(女紅): 예전에, 부녀자들이 하던 길쌈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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