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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비의 처참한 삶을 증언을 통해 듣다
시노비(寺奴婢)
권헌(權攇)
我過嶺南道 喧譁括奴婢 | 내가 영남의 길을 지날 적에 시끄럽게 머슴 포박해 가는데 |
丁男遭驅脅 婦女被繫累 | 남자들은 몰아치며 협박 당하고 여자들은 포박 당했으니 |
白日慘長衢 痛哭天色視 | 백주대낮 참혹한 사거리에서 통곡하며 하늘 올려다 보았네. |
存者累隣族 死者枯骨髓 | 살아남은 이는 인족침징 1(隣族侵徵)에 연루시키고 죽은 이는 백골징포(白骨徵布)로 골수 마르게 하기 때문에 |
賤籍日已廣 民生日已苦 | 머슴의 명부는 날로 더욱 늘어가고 백성의 삶은 날로 더욱 괴로워지네. |
昔行百家邑 重來惟荊杞 | 접때 일백 집이 있던 고을 지났는데 다시 오니 오직 가시덤불만 있어서 |
借問里中老 壯丁更何去 | 마을의 늙은이에게 “장정들 모두 어디로 갔나요?”라고 물으니 |
各司日推刷 奔逸駭雉兔 | “각 관아에서 날마다 추쇄하니 2 달아나길 놀란 꿩과 토끼처럼 했네. |
乃父之他縣 乃兄死鞭箠 | 누군가의 아버지는 다른 고을로 갔고 누군가의 형은 채찍 맞아 죽어 |
誅求到雞狗 所存惟寡女 |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닭과 개에게까지 이르기에 남은 사람은 오직 과부 뿐. |
况乃饑饉作 蕩析無寸土 | 게다가 또한 기근까지 일어나 있던 땅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갈아먹을 한 치의 땅도 없어졌지. |
遠謫不敢言 納役良無已 | 먼 땅으로 떠나면서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신역(身役) 바치는 것 진실로 그만 둘 수 없어 |
方春行采葛 仳離山谷裏 | 봄이 되어 칡 캐러 간다며 산 골짜기 속으로 떠나버렸다네. |
連年積逋欠 督令納官布 | 해마다 관물(官物) 축내는 게 3 누적되자 관포 들이라 독촉하듯 명령하니 |
此身且須臾 椎剝便何所 | 이 몸은 장차 금방 죽을 목숨인데 가혹하게 수탈하니 4 어느 곳인들 편하겠는가? |
隣里或擧兒 往往草中棄 | 마을 사람들은 간혹 아이를 들어 이따금 풀 속에 버리니, |
兒啼白露寒 酸痛飼狐狸 | 아이가 흰 이슬이 추워 울기라도 하면 참통하게도 5 여우와 이리가 먹어대겠지.” |
豺狼抱狠性 猶自愛其類 | 여우와 이리는 사나운 본성 안고 있지만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종족 아끼는데 |
王政有逼迫 隱忍斷天理 | 임금의 정치엔 핍박함이 있어 천륜을 끊는 데도 몰래 참아내게 하는가? |
箕王憂竊盜 作禍從此始 | 기자왕이 도적질을 근심하자 6 재앙이 일어난 게 남은 물건 탐하는 도적질로부터 시작되었네. |
良役雖云苦 猶得死其里 | 양인에 부과된 신역(身役)이 비록 ‘괴롭다’ 말하지만 오히려 이 마을에서라도 죽을 수 있었는데 |
嗟哉公私賤 得非我赤子 | 아! 공노비 사노비들은 우리의 백성 7이 아닌 것인가?『震溟集』 卷之二 |
인용
- 인족침징(隣族侵徵): 지방의 백성이 공금(公金)과 관곡(官穀)을 갚지 못하거나 군정(軍丁)이 도망ㆍ사망하여 군포세(軍布稅)를 내지 못할 때 이를 억지로 그 이웃ㆍ일족(一族)에게 추징(追徵)하는 일을 말한다. [본문으로]
- 추쇄(推刷): ① 부역(賦役) 또는 병역(兵役)을 기피한 자나 상전(上典)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다른 지방으로 도망한 노비를 찾아내어, 본고장으로 돌려 보내는 일. 노비추쇄(奴婢推刷) ② 빚을 죄다 받아들이는 일 [본문으로]
- 포흠(逋欠): 포(逋)는 조세포탈을 말하고 흠(欠) 관물을 사사로이 축내어 부족을 초래한 것을 뜻한다. 즉 조세(租稅)를 포탈하거나 관물(官物)을 축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 추박(椎剝): 한유(韓愈)가 "살을 깎고 골수를 부순다.[剝膚椎髓]"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가혹한 수탈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韓昌黎文集』 卷15 「鄆州溪堂詩」 [본문으로]
- 산통(酸痛):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폄척되면서 그의 가속(家屬) 또한 견축(譴逐)되어, 가는 길에 소녀(小女)가 죽자 층봉역(層峯驛) 근처 산 밑에 초빈해 두었다가, 사면을 받고 환조(還朝)할 때에 그 묘에 들러서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두어 가닥 등넝쿨로 목피관을 꽁꽁 묶어서 황량한 산에 초빈하니 백골도 썰렁하리라 무고한 너를 죽게 한 것은 나의 죄 때문이라 백 년토록 참통하여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數條藤束木皮棺 草殯荒山白骨寒 致汝無辜由我罪 百年慚痛淚闌干]."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十 [본문으로]
- 기자우절도(箕王憂竊盜): 기자(箕子)의 교화를 받아 순후한 풍속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은(殷) 나라가 망한 뒤에 기자가 조선에 들어와 팔조(八條)의 가르침을 베풀었다. 이 중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그 주인의 노예가 된다는 것 등 세 가지만이 전하고 있다. [본문으로]
- 적자(赤子): 어린아이를 뜻하는 말이지만, 어린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뜻으로 온순한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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