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에게 세 번에 걸쳐 편지를 쓰게 된 이유
상재상제삼서(上宰相第三書)
한유(韓愈)
解說. 세 번 재상에게 등용시켜 달란 편지를 썼지만
迂齋云: ‘以周公與當時之事, 反覆對說, 而求士之緩急, 居然可見. 雖是退之切於求進, 然理亦如此.’
○ 此書, 上於貞元十一年乙亥, 公時年二十八歲, 時相, 乃賈耽, 盧邁也. 前一書云: ‘前鄕貢進士韓愈, 謹伏光範門下, 再拜獻書相公閤下’ 公二十五歲, 已登進士第, 時猶未出官, 故只云‘前鄕貢進士’ 自正月二十七, 至三月十六, 凡三上書, 詞益慷慨. 世所謂光範三書者此也.
三上書, 不報, 乃東歸, 朱子論公所謂: ‘不免雜乎貪位慕祿之私者,’ 正謂此類. 然初年干進, 亦誰能免? 略之而取其議論文氣可也. 書辭激切如此, 而竟不報, 此二相者, 果何如人哉?
해석
迂齋云: ‘以周公與當時之事,
우재가 말했다. ‘주공과 당시의 일로
反覆對說, 而求士之緩急,
반복적이며 상대적으로 말하여
居然可見.
선비를 구하는 완급을 훤히 볼 수 있다.
雖是退之切於求進,
비록 이것은 한유가 벼슬을 구하는 간절함이지만,
然理亦如此.’
이치 또한 이와 같다.’
○ 此書, 上於貞元十一年乙亥,
이 편지는 정원 11년 을해에 올려 졌으니,
公時年二十八歲, 時相, 乃賈耽, 盧邁也.
이때 한유의 나이는 28살이었고, 그때의 재상은 가탐과 노매였다.
前一書云: ‘前鄕貢進士韓愈,
전에 보낸 한 편지에 썼다. ‘전향공진사 한유가
謹伏光範門下, 再拜獻書相公閤下’
삼가 궁궐문하【『임하필기(林下筆記)』에 따르면 당(唐)은 북쪽 안에 선정전(宣政殿), 서쪽에 연영문(延英門)과 대명궁(大明宮), 정남쪽에 단봉문(丹鳳門)과 태극전(太極殿), 왼쪽에 숙장문(肅章門), 서쪽에 금호문(金虎門)과 중서성(中書省), 남쪽에 광범문(光範門)이 있었다.】에 엎드려 두 번 절하오며 상공 각하께 편지를 드립니다.’
公二十五歲, 已登進士第,
한유는 25살에 이미 진사에 뽑혔으나
時猶未出官, 故只云‘前鄕貢進士’
이때엔 아직 관직에 나가진 못했기 때문에, ‘전향공진사’라 말한 것이다.
自正月二十七, 至三月十六,
1월 27일부터 3월 16일에 이르기까지
凡三上書, 詞益慷慨.
3번 편지를 올렸으니, 말이 더욱 비분강개하다.
世所謂光範三書者此也.
세상에서 ‘광범삼서’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三上書, 不報, 乃東歸,
3번 편지를 올렸지만 답장을 받진 못했고, 곧 동쪽으로 돌아갔으니,
朱子論公所謂: ‘不免雜乎貪位慕祿之私者,’
주자가 한유에 대해 ‘지위를 탐하고 봉록을 좋아하여 잡됨을 피하지 못한 사사로운 사람’이라 말한 것이,
正謂此類.
바로 이것이다.
然初年干進, 亦誰能免?
그러나 초년에 벼슬을 구하려는 것을 또한 누가 면할 수 있겠는가?
略之而取其議論文氣可也.
그러나 그것을 생략하고 곧바로 의론과 문장의 기운을 취했으니, 옳다고 하겠다.
書辭激切如此, 而竟不報,
편지의 말이 격정적이고 간절함이 이와 같았음에도 마침내 답장을 받지 못했으니,
此二相者, 果何如人哉?
이때 2명의 재상이란 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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