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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 희우정기(喜雨亭記)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소식 - 희우정기(喜雨亭記)

건방진방랑자 2020. 8.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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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끝 기쁘게 내린 비를 기리기 위해 정자의 이름으로 짓다

희우정기(喜雨亭記)

희우정기(喜雨亭記): 동파(東坡)는 가우(嘉祐) 6(1061) 12월에 봉상부(鳳翔府) 첨서판관(簽書判官)으로 부임하였는데, 본편 가운데 내가 부풍(扶風)에 부임한 다음 해[余至扶風之明年]”라는 구()가 있어 이 글이 가우(嘉祐) 7(1062)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희우정(喜雨亭)은 봉상부(鳳翔府) () 동북쪽에 있다.

 

소식(蘇軾)

 

 

迂齋: “蟬蜕汙濁之中, 浮游塵埃之表, 所謂以文爲戱者.”

東坡登第初, 任鳳翔府判官, 其年, 二十有八耳, 筆力, 已如此. 此篇, 凌虛臺記, 皆官鳳翔時所作, 眞天才也.

 

 

기쁨을 잊지 않으려 이름을 지은 예들

亭以雨名, 志喜也.

古者有喜, 卽以名物, 示不忘也. 周公得禾, 以名其書, 漢武得鼎, 以名其年, 叔孫勝敵, 以名其子, 其喜之大小不齊, 其示不忘一也.

 

한껏 가문 세상에 단비가 내린 때 정자가 완성되다

予至扶風之明年, 始治官舍, 爲亭於堂之北而鑿池其南, 引流種樹, 以爲休息之所. 是歲之春, 雨麥於岐山之陽, 其占爲有年.

旣而, 彌月不雨, 民方以爲憂, 越三日乙卯乃雨, 甲子又雨. 民以爲未足, 丁卯大雨, 三日乃止. 官吏相與慶於庭, 商賈相與歌於市, 農夫相與抃於野, 憂者以樂, 病者以喜, 而吾亭適成.

 

가뭄 끝 내린 비에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게 되다

於是擧酒於亭上, 以屬客而告之曰: “五日不雨可乎?” : “五日不雨則無麥.”

十日不雨可乎?” : “十日不雨則無禾.”

無麥無禾, 歲且荐饑, 獄訟繁興, 而盜賊滋熾, 則吾與二三子, 雖欲優游以樂於此亭, 其可得耶? 今天不遺斯民, 始旱而賜之以雨, 使吾與二三子, 得相與優游以樂於此亭者, 皆雨之賜也, 其又可忘耶?”

 

비가 내린 축복을 기리며 정자 이름으로 짓다

旣以名亭, 又從而歌之曰: “使天而雨珠, 寒者不得以爲襦, 使天而雨玉, 飢者不得以爲粟, 一雨三日, 伊誰之力?

民曰: ‘太守.’ 太守不有, 歸之天子. 天子曰: ‘不然.’ 歸之造物, 造物不自以爲功, 歸之太空, 太空冥冥, 不可得而名. 吾以名吾亭.”

 

 

 

 

 

 

해석

迂齋: “蟬蜕汙濁之中,

우재가 말했다. “매미가 더러운 가운데서 허물을 벗고

 

浮游塵埃之表, 所謂以文爲戱者.”

먼지의 겉에서 떠다니는 듯하니 이른바 문장으로 장난친 것이다.”

 

東坡登第初, 任鳳翔府判官,

동파가 처음 급제하여 봉상부 판관에 임명되었으니

 

其年, 二十有八耳, 筆力, 已如此.

그 해에 28세였을 뿐으로 필력이 이미 이와 같았다.

 

此篇, 凌虛臺記,

이 글과 능허대기

 

皆官鳳翔時所作, 眞天才也.

모두 봉상에서 근무할 때 지은 것이 진심으로 천재이다.

 

 

 

기쁨을 잊지 않으려 이름을 지은 예들

 

亭以雨名, 志喜也.

정자를 ()’로 이름 지은 건 기쁨에 뜻을 뒀기 때문이다.

 

古者有喜, 卽以名物,

옛날에 기쁨이 있으면 곧 사물에 이름지었으니

 

示不忘也.

잊지 않으려는 걸 보이는 것이다.

 

周公得禾, 以名其書,

주공이 벼를 얻자주공득화(周公得禾): 사기(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하늘이 복을 내려 당숙(唐叔)이 벼 이삭을 얻었는데, 두 줄기에서 하나의 이삭이 팬 것이었다. 당숙(唐叔)이 이것을 성왕(成王)에게 바쳤는데, 성왕(成王)이 당숙(唐叔)에게 명하여 벼 이삭을 동쪽에 있던 주공(周公)에게 보내게 하고, 당숙(唐叔)에게 명하여 궤화(饋禾)라는 글을 짓게 하였다.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이 내린 벼 이삭을 받고 천자(天子)의 명을 아름답게 여겨 가화(嘉禾)라는 글을 지었다[天降祉福 唐叔得禾 異母同穎 獻之成王 成王命唐叔以餽周公於東土 作餽禾 周公旣受命禾 嘉天子命 作嘉禾].”라고 쓰여 있다. 당숙(唐叔)은 당() 나라에 봉한 숙우(叔虞)이며 궤화(饋禾)가화(嘉禾)는 모두 서경(書經)의 편들인데 현재는 일실(佚失)되었다. 그 책 이름으로 지었고

 

漢武得鼎, 以名其年,

한무제(漢武帝)가 솥을 얻자한무득정(漢武得鼎): 원수(元狩) 6, 분수(汾水) 가에 있는 후토사(后土祠)에서 보정(寶鼎)을 얻고 연호를 원정(元鼎)으로 고쳤다. 사기(史記)』 「효무본기(孝武本紀) 연호(年號)로 이름 지었으며

 

叔孫勝敵, 以名其子,

숙손득신(叔孫得臣)이 적을 이기고숙손승적(叔孫勝敵):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1년에 오랑캐인 수만(鄋瞞)이 침공해오자 숙손득신(叔孫得臣)으로 하여금 이들을 막게 하였는데, 숙손득신(叔孫得臣)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수만(鄋瞞)의 임금인 교여(僑如)를 사로잡고 그 기념으로 자신의 아들 선백(宣伯)의 이름을 교여(僑如)로 지었다.”라고 보인다. 수만(鄋瞞)은 적()의 국명(國名)이다. 그 아들의 이름으로 지었으니

 

其喜之大小不齊, 其示不忘一也.

그 기쁨의 크고 작음이 같지 않지만 잊지 않으려는 것을 드러낸 건 같다.

 

 

 

한껏 가문 세상에 단비가 내린 때 정자가 완성되다

 

予至扶風之明年, 始治官舍,

내가 부풍에 부임한 이듬해부풍지명년(扶風之明年): () 나라의 시숙(施宿)이 지은 동파선생연보(東坡先生年譜)에 의하면, 동파(東坡)는 가우(嘉祐) 6(1061)에 제과(制科)에 응시하여 3등으로 급제하고 대리평사(大理評事) 첨서봉상부절도판관(簽書鳳翔府節度判官)을 제수받고 겨울 11월에 부임하였다. 그러므로 余至扶風之明年은 바로 가우(嘉祐) 7(1062)이 되는 것이다. 부풍(扶風)은 본래 한() 나라 때 봉상부(鳳翔府)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송대(宋代) 문장가들은 한() 나라 때의 지명을 즐겨 썼다.에 처음으로 관사를 수리하고

 

爲亭於堂之北而鑿池其南,

당의 북쪽에 정자를 짓고 남쪽으로 연못을 파서

 

引流種樹, 以爲休息之所.

물줄기 끌어오고 나무를 심어 휴식의 장소로 만들었다.

 

是歲之春, 雨麥於岐山之陽,

그 해 봄에 기산의 남쪽에 보리를 위해 비가 내리니

 

其占爲有年.

점괘가 풍년이라는 것이었다.

 

旣而, 彌月不雨,

이윽고 한달이 되도록 비가 내리지 않자

 

民方以爲憂,

백성들이 곧 걱정을 했는데

 

越三日乙卯乃雨, 甲子又雨.

사흘이 지나 을묘에 곧 비가 내렸고 갑자일에 다시 비가 내렸다.

 

民以爲未足, 丁卯大雨,

그러나 백성들은 넉넉하지 않다고 여겼는데 정묘일에 폭우가 내려

 

三日乃止.

사흘이 지나서야 곧 그쳤다.

 

官吏相與慶於庭, 商賈相與歌於市,

아전들은 서로 뜰에서 경하하고 상인들은 서로 저자에서 노래 부르며

 

農夫相與抃於野,

농부들은 서로 들판에서 박수를 쳐대니

 

憂者以樂, 病者以喜,

걱장하던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병든 사람들은 기뻐하자

 

而吾亭適成.

나의 정자도 마침내 완성되었다.

 

 

 

가뭄 끝 내린 비에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게 되다

 

於是擧酒於亭上, 以屬客而告之曰:

이에 정자 위에서 술잔을 들고 손님에게 권하며 말했다.

 

五日不雨可乎?”

“5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괜찮은가?”

 

: “五日不雨則無麥.”

“5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보리가 나지 않습니다.”

 

十日不雨可乎?”

“10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괜찮은가?”

 

: “十日不雨則無禾.”

“10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벼가 나지 않습니다.”

 

無麥無禾, 歲且荐饑,

보리도 없고 벼도 없으면 해마다 또한 거듭 기근이 들어

 

獄訟繁興, 而盜賊滋熾,

송사가 번거롭게 일어나고 도적이 불어라 많아지면

 

則吾與二三子, 雖欲優游以樂於此亭,

나와 그대들이 비록 넉넉하고 여유롭게 이 정자에서 즐기려 하더라도

 

其可得耶?

할 수 있겠는가?

 

今天不遺斯民, 始旱而賜之以雨,

이제 하늘이 이 백성을 버리지 않아 처음에 가물다가 비를 내려주어

 

使吾與二三子,

나와 그대들에게

 

得相與優游以樂於此亭者,

서로 넉넉하고 여유롭게 이 정자에서 즐길 수 있게 했으니

 

皆雨之賜也, 其又可忘耶?”

다 비의 내려주심이니 또한 잊을 수 있겠는가?”

 

 

 

비가 내린 축복을 기리며 정자 이름으로 짓다

 

旣以名亭, 又從而歌之曰:

이미 정자에 이름 짓고 또 따라서 노래불렀다.

 

使天而雨珠, 寒者不得以爲襦,

가령 하늘에서 진주가 내리더라도 추운 사람은 저고리를 만들 수 없고

 

使天而雨玉, 飢者不得以爲粟,

하늘에서 옥이 내리더라도 굶주린 사람은 곡식으로 삼을 수 없으니

 

一雨三日, 伊誰之力?

한 번 비 내려 사흘동안 계속되니 이것은 누구의 공인가?

 

民曰: ‘太守.’

백성들은 태수라 하네.

 

太守不有, 歸之天子.

태수가 인정하지 않고 천자에게 돌리지.

 

天子曰: ‘不然.’ 歸之造物,

천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조물자에게 돌리니

 

造物不自以爲功, 歸之太空,

조물자는 스스로 공으로 여기지 않고 하늘에게 돌리니

 

太空冥冥, 不可得而名.

하늘은 어둡디 어두워 이름 지을 수 없었네.

 

吾以名吾亭.”

나는 나의 정자에 이것으로 이름 짓는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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