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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관비(表忠觀碑) - 1. 오대의 반란을 제압하는 손길들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표충관비(表忠觀碑) - 1. 오대의 반란을 제압하는 손길들

건방진방랑자 2020. 8. 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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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의 봉분을 관리하기 위한 표충관을 세운 까닭

표충관비(表忠觀碑)

 

소식(蘇軾)

 

 

1. 오대의 반란을 제압하는 손길들

 

오대의 반란을 제압하여 복속하다

熙寧十年十月戊子, 資政殿大學士右諫議大夫知杭州軍事臣.

故吳越國王氏墳墓, 及其父祖妃夫人子孫之墳, 錢塘者二十有六, 臨安者十有一, 皆蕪廢不治, 父老過之, 有流涕者.

謹按故武肅王, 始以鄕兵, 破走黃巢, 名聞江淮, 復以八郡兵, 劉漢宏, 越州, 以奉董昌而自居於, , 則誅而幷, 盡有浙東西之地. 傳其子文穆王元瓘, 至其孫忠獻王仁佐, 遂破李景, 福州, 仁佐之弟忠懿王, 又大出兵攻, 以迎周世宗之師, 其後卒以國入覲, 三世四王, 與五代相終始.

 

어지럽던 세상이 정리되어 태평성대를 누리다

天下大亂, 豪傑蜂起, 方是時, 以數州之地, 盜名字者, 不可勝數. 旣覆其族, 延及于無辜之民, 罔有孑遺, 以吳越地方千里, 帶甲十萬, 鑄山煮海, 象犀珠玉之富, 甲于天下.

然終不失臣節, 貢獻相望於道, 是以其民, 至於老死, 不識兵革, 四時嬉遊, 歌鼓之聲相聞, 至于今不廢, 其有德於斯民甚厚.

 

일어나는 반란을 제압하던 사람들

受命, 四方僭亂, 以次削平, 西蜀江南, 負其險遠, 兵至城下, 力屈勢窮然後束手, 而河東, 百戰守死, 以抗王師, 積骸爲城, 釃血爲池, 竭天下之力, 僅乃克之.

獨吳越不待告命, 封府庫籍郡縣, 請吏于朝, 視去其國, 如去傳舍, 其有功於朝廷甚大.

 

 

 

 

해석

 

오대의 반란을 제압하여 복속하다

 

熙寧十年十月戊子, 資政殿大學士右諫議大夫知杭州軍事臣.

희녕희녕(熙寧): () 신종(神宗)의 연호로 1068년부터 1077년까지이다. 1010월 무자일에 자정전태학사(資政殿大學士)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지항주군사(知杭州軍事)인 신하 조변이 아뢰옵니다.

 

故吳越國王氏墳墓, 及其父祖妃夫人子孫之墳,

고 오월국왕 전씨전씨(錢氏): 오대시대(五代時代) 10() 가운데 하나인 오월국(吳越國)의 전류(錢鏐)와 그 자손들을 이르는데, 항주(杭州)에 도읍하였다. 오월국(吳越國)은 황제를 참칭하지 않고 왕()이라 칭하며 중원의 통치자에게 조공을 바치고 신하의 예()를 잃지 않아 전쟁의 화를 겪지 않았으며, 전당강(錢塘江)과 서호(西湖)의 치수에 힘을 쏟아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였다. 건국(建國)의 시조는 전류(錢鏐:852~932)로 자()가 구미(具美)이고 항주(杭州) 임안(臨安)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무뢰한(無賴漢)이었는데, () 나라 말기 향병(鄕兵)에 투신하여 황소(黃巢)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항주자사(杭州刺史)에 임명되었다. ()나라가 멸망하고 후양(後梁)이 서자,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에 의해 오월왕(吳越王)에 봉해졌다. 후양(後梁)이 망하고 이존욱(李存勗)의 후당(後唐)이 서자 입공하여 신하(臣下)의 예를 갖추어 지위를 인정받았다.의 분묘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비와 부인과 자손의 분묘로

 

錢塘者二十有六, 臨安者十有一,

전당에 있는 것이 26개이고 임안에 있는 것이 11개이니

 

皆蕪廢不治, 父老過之,

모두 황폐하고 거칠어졌지만 가꾸질 않아 아버지와 노인들이 그곳을 지날 적에

 

有流涕者.

눈물을 흘렸습니다.

 

謹按故武肅王, 始以鄕兵,

삼가 생각건대 고 무숙왕 전류(錢鏐)가 지방의 병사로

 

破走黃巢, 名聞江淮,

황소를 깨부셔 패주시키니 명성이 양자강과 회수에 알려졌고

 

復以八郡兵, 劉漢宏,

다시 팔군병으로 유한굉유한굉(劉漢宏):?~886. () 나라 말기 무장(武將)으로 산동(山東) 연주(兖州) 사람이다. 희종(僖宗) 건부(乾符) 6년에 도통(都統) 왕탁(王鐸)에게 투항하여 숙주자사(宿州刺史)가 되고 황소(黃巢)의 난에 월주관찰사(越州觀察使)가 되었다. 그러다 항주자사(杭州刺史) 동창(董昌)을 공격하였다가 전류(錢鏐)에게 대패하여 포로로 잡히고 참수되었다. 오대사(五代史)』 「오월세가(吳越世家)을 토벌하고

 

越州, 以奉董昌而自居於,

월주를 겸병하며 동창동창(董昌):?~896. ()나라 말기 무장(武將)으로 항주(杭州) 임안(臨安) 사람이다. 희종(僖宗) 건부(乾符) 2년에 절서(浙西)의 비장(裨將) 왕영(王郢)이 반란을 일으키자, 백성들을 모아 의병(鄕兵)을 일으켜 삭감진(石鑑鎭)의 진장(鎭將)이 되어 왕영(王郢)을 토벌하였다. 이후 전류(錢鏐)와 함께 황소(黃巢)의 반란군에 대항하여 항주(杭州)를 점령하고 항주자사(杭州刺史)가 되었으며, 越州觀察使 劉漢宏을 토벌하여 越州를 병탄하고 杭州刺史의 직위를 錢鏐에게 넘겨주었다. 董昌은 이후 나라 朝廷에 조공하여 隴西郡王에 봉해졌으나, 昭宗 乾寧 2(895) 자신을 越王으로 봉해줄 것을 조정에 청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大越羅平國이라 칭하고 稱帝하였다. 그러나 錢鏐에게 토벌되고 자살하였다. 五代史 吳越世家을 받들고 스스로 항주에 살았는데

 

, 則誅而幷,

동창이 월주를 점거하고 배반함에 미쳐 동창을 베고 월주를 겸병함으로

 

盡有浙東西之地.

절동과 절서의 땅을 모두 소유했습니다.

 

傳其子文穆王元瓘, 至其孫忠獻王仁佐,

그 아들 문목왕 원관에게 전하고 손자인 충헌왕 인좌에 이르러

 

遂破李景, 福州,

마침내 이경이경(李景): 916~961, 오대시대(五代時代) 남당(南唐)의 두 번째 군주이다. 남당(南唐)10국 가운데 하나인 오()나라를 이변(李昪)이 찬탈하여 세운 국가로 수도는 금릉(金陵=南京)이었다. 이경(李景)945년 혼란에 빠진 민()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나 오월(吳越)의 충현왕(忠顯王) 인좌(仁佐)에게 패하여 복주(福州)를 내주었다. 복주(福州)는 옛 민월왕국(閩越王國)의 땅에 설치된 주()의 이름으로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복주시(福州市)이다.의 군대를 깨부수고 복주를 취했고

 

仁佐之弟忠懿王, 又大出兵攻,

인좌의 아우인 충의왕 숙이 또한 크게 군대를 내어 이경을 공격하며

 

以迎周世宗之師, 其後卒以國入覲,

주나라 세종의 군사를 맞이했으니 그후 마침내 나라를 바치고 송나라 조정에 조회하니

 

三世四王, 與五代相終始.

3대의 네 명의 왕이 오대와 서로 비롯됨을 끝냈습니다.

 

 

 

어지럽던 세상이 정리되어 태평성대를 누리다

 

天下大亂, 豪傑蜂起,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호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니

 

方是時, 以數州之地,

이때에 당하여 몇 고을의 땅을 점거하고서

 

盜名字者, 不可勝數.

명칭을 도둑질한 사람이 이루 셀 수가 없습니다.

 

旣覆其族, 延及于無辜之民,

이미 친적을 전복시키고 무고한 백성에게까지 이어져 미치자

 

罔有孑遺,

혈혈단신의 백성들이 없어졌지만

 

以吳越地方千里, 帶甲十萬,

오월 지방 천 리에 띠를 띠고 갑옷을 입은 10만 명이 있고

 

鑄山煮海, 象犀珠玉之富,

산에서 구리를 주조하고 바다에서 소금을 구우며 코끼리와 물소와 구슬과 옥의 풍부함이

 

甲于天下.

천하에서 으뜸이었습니다.

 

然終不失臣節, 貢獻相望於道,

그러나 끝내 신하의 절도를 잃지 않아 공물 바침이 서로 길에서 이어졌기 때문에

 

是以其民, 至於老死,

백성이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不識兵革,

변란을 알지 못했고

 

四時嬉遊, 歌鼓之聲相聞,

사계절에 즐거워 놀며 노랫 소리가 서로 들려오니

 

至于今不廢, 其有德於斯民甚厚.

지금에 이르도록 사라지지 않아 이 백성에게 덕이 있음이 매우 후합니다.

 

 

 

일어나는 반란을 제압하던 사람들

 

受命, 四方僭亂,

황제인 송나라가 천명을 받았는데 사방에서 참람되어 난을 일으키자

 

以次削平,

차례대로 평정했지만

 

西蜀江南, 負其險遠,

서쪽의 촉과 강남은 험함과 멀다는 걸 자부하였지만

 

兵至城下, 力屈勢窮然後束手,

군대가 성 아래에 이르면 힘이 굽혀지고 기세가 곤궁한 뒤에야 손을 묶어 항복했고

 

而河東, 百戰守死, 以抗王師,

하동 유계원(劉繼元)은 백번 싸우며 사수하다가 왕의 군대에 항거하니

 

積骸爲城, 釃血爲池,

시체가 쌓여 성이 되었고 피가 흘러 연못이 되어서

 

竭天下之力, 僅乃克之.

천하의 힘을 다하고서야 겨우 이길 수 있었습니다.

 

獨吳越不待告命, 封府庫籍郡縣,

홀로 오월만이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재화를 보관하는 창고를 봉하고 군현을 문서화하여

 

請吏于朝, 視去其國, 如去傳舍,

조정에 관리를 청하였고 그 나라 떠남 보기를 여관 떠나 듯했으니,

 

其有功於朝廷甚大.

조정에 공이 있음이 매우 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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