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4. 민중영웅이 사라지다
그런데 송대장군의 문학적 구비적 형상에는 삼별초 투쟁과 관련된 사실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선명하게 부각된 것은 민중 구제의 측면이다. 「송대장군가」에서도 그렇거니와, 지역적 구전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완도는 예로부터 해운의 요충이었던바 물길과 지명까지 낱낱이 들어가며 세미선(稅米船)을 모두 나포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실감이 난다. 곧 송징에게 ‘미적추(米賊酋)’라는 별호가 붙게 된 연유인 것이다. 그리하여 반역향(叛逆鄕)이라는 역사적 특수성과 도서라는 지역적 조건 때문에 억압과 착취를 편중되게 받고 있던 섬사람들을 구제하였으니,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를 송대장군으로 길이 추모하는 까닭이다.
구한말에 편찬된 『완도군읍지』에서 장재도(長財島)를 송징이 있던 곳으로 지적하였다. 장재도란 장좌리(長左里, 지금 완도읍에서 10리 거리에 있는 큰 마을)에 있는 장도(將島)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장도는 장좌리에서 물이 빠지면 걸어가고 물이 차면 배를 타고야 건너는 조그만 섬이다. 섬에는 인가는 없고 중앙에 동백ㆍ대숲으로 싸인 당집이 한채 보일 뿐이다. 바로 송대장군을 모신 장좌리의 당집이다.
이 장도는 그 지방 전설에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었던 자리라 한다. 그렇다면 옛 청해진 위치에 송징이 다시 요새를 구축했던 셈이다. 장도의 송대장군을 모신 당집은 실로 유서가 깊다.
박창제 옹은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서 장도 당집은 “제단 중앙에는 송대장군, 왼쪽에는 정년, 오른쪽에는 혜일대사를 모셨는데”라고 분명히 증언한 다음, “장보고 장군을 빼놓은 까닭은 확실한 이유를 말해 주는 이가 없다”라고 의문을 덧붙였다. 박옹도 고개를 갸웃거렸듯 정년은 옆에 모시면서 더 유명한 장보고는 왜 소외시켰던지 미상불 이상하긴 하다. 그러나 어쨌건 그 지방 민중의 의식 속에는 송대장군이 가장 중심위치에 놓여 있었고 장보고에 대한 향념은 희미했던 것이 뚜렷한 사실이다. 아주 옛날부터 형성ㆍ계승된 의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장좌리에 들렀을 때 그 당집에 모신 존재는 송대장군이 아니고 유일하게 장보고였다. 근래 더러 매스컴에 비쳐지고 외부적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일반 역사지식에서 장보고의 위상과 그 지역에 삶을 영위하던 민중의 의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 괴리현상을 일반성에 맞추는 쪽으로 해소한 셈이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견지해오던 한 민중영웅의 형상은 또 한번 훼철(毁撤) 당하고 말았다.
시인 임억령은 강진 고을에 우거해 있던 시기에 이 시를 썼다. 당시 완도는 해남과 강진 두 고을에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섬은 아전들의 밥이라는 말이 생겼듯 완도 지역은 특수하게 열악한 상태로 지배를 받았던 셈이다. 그러나 시인은 말하자면 지배하는 지역 출신의 관인 신분이었으면서도 오히려 피지배 지역의 빼어난 역사전통을 높이 인정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이 바로 완도 지역의 민중영웅 송대장군을 발견한 것이리라.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27~32쪽
인용
고증 1.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완주군읍지에 실린 내용
고증 2. 반체제 우두머리가 민중의 영웅으로
고증 3. 송대장군과 삼별초
고증 4. 민중영웅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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