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1.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완주군읍지에 실린 내용
시인은 주인공 송대장군을 분명히 역사상의 실제로 믿어 의심치 않고 그 인물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기려는 뜻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지금 그 형상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무척 흥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여러가지 불분명하고 궁금하여 고증을 요하는 사항들이 있다. 이 작품은 시적 표현이라는 한계도 물론 없지 않으나 내용 성향이 원래 좀더 구체적이고도 선명하게 처리하기 곤란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송대장군의 실체를 해명하기 위해 문헌을 더듬고 현지답사를 나가보기도 하였다. 그 결과 알아낸 약간의 사실을 정리해서 여기에 붙여둔다. 시인 임억령은 이 「송대장군가」를 장시로 쓰기에 앞서 「송장군」이란 제목의 율시를 지었다[徵也神奇無與敵, 投兵八海負危巖. 山厖自吠多方便, 野馬生騎去轡銜. 長箭射穿侯峴石, 旋風吹送濟州帆. 井蛙逋主其能久, 弦血無端濕戰衫. 『석천집·송장군』 권2].
그 첫 구에서 “징은 신출기략이 더불어 맞설 자 없더라[徵也神奇無與敵]”라고 한 것을 보면, 송대장군의 이름은 징이다. 송징(宋徵), 이 사람은 언제 어디서 활동했던가?
일반 역사서에는 송징이란 성명 두 자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강진현(康津縣) 고적조(古跡條)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사현(射峴), 완도(莞島)에 있다. 전하는 말에 옛날 섬사람에 송징이라는 자가 무용이 절륜하여 활을 쏘면 60리 밖까지 나갔다. 활시위가 끊어진즉 피가 흘렀다. 지금까지 반석에 화살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곳을 사현이라 한다.”
사현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전설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송징은 완도사람이다. 구한말에 편찬된 『완도군읍지』(규장각 소장)를 보면 완도의 역사적 고적으로 장보고(張保皐)와 정년(鄭年)을 거명하고 이어 송징을 내세운다
사현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전설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송징은 완도사람이다. 구한말에 편찬된 『완도군읍지』(규장각 소장)를 보면 완도의 역사적 고적으로 장보고(張保皐)와 정년(鄭年)을 거명하고 이어 송징을 내세운다[古蹟叚, 新羅時張保皐爲大使也. 島人鄭年起兵於此, 討滅金明之亂, 回復舊都, 繼爲大使, 而勇力絶人, 能沒水底, 一噎之間, 行五六十里. 高麗末, 有宋徵者, 居丁莞島壯才島. 射及六十里, 弓絃絶則出血. 能使神兵云云是齊. -『전라남도 완도군읍지』 광무光武3년(1899) 성책成冊, 규장각 소장]. 내용은 『동국여지승람』을 거의 그대로 전재한 것인데, 한두가지 첨가된 사항이 있다. 즉, “고려말에 송징이란 자가 있었는데 장재도(壯才島)에 살았다”라고 하여, 그의 생존시기 및 활동지점을 명시한 것이다.
송대장군 송징은 고려 말에 완도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가 쏜 화살이 60리 밖의 바위에 박혔다는 『동국여지승람』 소재 전설은 시에서 서술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옛 명장 중에 화살이 바위에 꽂혔다는 일화가 전하지만 우리의 송징은 화살이 무려 60리를 날아가서 박혔다는 것이다. 그의 절세의 무용은 활로 상징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국여지승람』이나 『완도군읍지』의 “활시위가 끊어진즉 피가 흘렀다”라는 말은 대체 무슨 영문인가? 「송장군」이라는 율시의 마지막 구에서는 “시위에서 피 끝없이 군복을 적시도다[弦血無端濕戰衫]”라고 읊어, 끊어진 활시위에서 흘리던 피는 송징의 신상과 심상치 않은 관련이 있었던가 싶다. 그런데 활시위는 왜 끊어졌을까? 바로 이 상황을 「송대장군가」에서는 “관군도 기가 질려 숨죽이는 판이니 누가 감히 덤비리오. / 누가 알았으랴! 하늘이 계집아이 손을 빌려 / 하룻밤새 활시위에서 피가 줄줄줄[王師䝱息安能討 那知天借女兒手 一夜絃血垂如縷 ]”하고 시의 흐름이 “장사의 남긴 육신……” 으로 직결된다. 끊어진 활시위의 피는 곧바로 활의 임자 송징의 최후였다. 그리고 문제는 활시위는 ‘계집아이 손’에 의해 끊어진 것이다.
송대장군은 그 자신의 만고 절세의 무용을 상징한 활이 어떤 여자의 손에 의해 시위가 절단되자 그로 인해 그 자신도 드디어 무력하게 되어 죽음을 맞았던 모양이다. 이것이 한 영웅의 비극적 최후다. 하지만 그 여자는 누구이고, 어떤 음모가 거기에 개재되었으며, 활시위의 끊어짐과 그의 죽음 사이의 연계 등등 아직도 많은 부분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마치 삼손의 최후처럼 무언가 신비롭고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졌을 법하지만 실증적으로는 더이상 잡아내기 어려운 것 같다.
사진출처 - 목포시민신문
인용
고증 1.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완주군읍지에 실린 내용
고증 2. 반체제 우두머리가 민중의 영웅으로
고증 3. 송대장군과 삼별초
고증 4. 민중영웅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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