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받들어 금나라에 입조하며
봉사입금(奉使入金)
진화(陳澕)
西華已蕭索 北寨尙昏蒙
坐待文明旦 天東日欲紅
崔文淸滋『補閑集』曰: “陳補闕澕, 以書狀官入金云, 西華(南宋在西故云), 已蕭索, 北寨尙昏蒙, 坐待文明旦, 天東日欲紅.
予於前歲, 以副樞使蒙古, 抵宿興中府, 見一寺壁上書一絶云: “四野盡爲狐兔窟, 萬邦猶仰犬羊天. 人間樂國是何處, 深歎吾生不後先.”
陳以幕佐入朝, 稱北寨昏蒙, 非禮. 興中一絶, 是客子所題, 言高何罪 按勝國時, 歷事遼ㆍ金, 恬不知恥. 獨公此詩, 嚴於華夷之辨, 深得『春秋』之義, 似有先見而發. 時女眞雖蹙, 而蒙古繼熾, 所謂北寨昏蒙, 蓋並指兩國也, 慨然有蹈海俟河之意. 纔經百年, 大明一統, 掃蕩腥羶, 文明之化, 東漸于海, 惜乎公之未及見也. 『梅湖遺稿』
해석
西華已蕭索 北寨尙昏蒙 | 서쪽 중국은 이미 삭막하고 북쪽 변방은 오히려 혼몽하지만, |
坐待文明旦 天東日欲紅 | 앉아 문명의 아침을 기다리니 하늘 동쪽 해가 붉어지려 하네.『梅湖遺稿』 |
崔文淸滋『補閑集』曰:
문청 최자가 『보한집』에서 말했다.
“陳補闕澕, 以書狀官入金云,
“보궐 진화가 서장관으로 금나라에 입조할 때 말했다.
西華(南宋在西故云),
서쪽 중국(남송이 서쪽에 있기 때문에)이
已蕭索, 北寨尙昏蒙,
이미 삭막하고 북쪽 국경이 오히려 혼몽하지만
坐待文明旦, 天東日欲紅.
앉아 문명의 아침을 기다리니 하늘 동쪽에서 해가 붉어지려 한다.”
予於前歲, 以副樞使蒙古,
나는 작년에 추밀부사로 몽골에 갔고
抵宿興中府, 見一寺壁上書一絶云: “四野盡爲狐兔窟, 萬邦猶仰犬羊天. 人間樂國是何處, 深歎吾生不後先.”
흥중부에서 유숙하다가 사찰의 벽 위에 한 절구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으니 다음과 같다.
四野盡爲狐兔窟 | 사방의 들이 다 여우와 토끼의 굴이 되었고 |
萬邦猶仰犬羊天 | 만방이 오히려 개와 양의 천지【견양천(犬羊天): 杜甫의 「覽鏡呈柏中丞」에 “간담은 시호의 굴에서 녹고, 눈물은 견양의 천지로 들어가네.膽銷豺虎窟 淚入犬羊天”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吐蕃이 犬羊의 자질로 걸핏하면 中原을 범하여 그곳에 도적의 窟穴을 만들었다. 그래서 시호의 땅이 된 것에 간담이 녹고, 견양의 천지가 된 본국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한 것이다.” 하였다. -『九家集注杜詩』 卷31 「覽鏡呈柏中丞」】를 우러르네. |
人間樂國是何處 | 인간의 즐거운 나라란 어느 곳에 있는가? |
深歎吾生不後先 | 내 인생엔 견줄 게 없으니 깊이 한탄스럽구나. |
陳以幕佐入朝,
진화가 서장관으로 조정에 들어가 입조했는데도
稱北寨昏蒙, 非禮.
북쪽 변방이 혼몽하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興中一絶, 是客子所題,
그러나 중흥부에서 읊은 한 절구는 나그네가 지은 것이니
言高何罪
고상하게 말한대도 무엇이 죄겠는가.
按勝國時, 歷事遼ㆍ金,
살펴보면 고려 때는 차례대로 요와 금을 섬기면서도
恬不知恥.
편안히 여겨 부끄러움을 몰랐다.
獨公此詩, 嚴於華夷之辨,
홀로 진공의 이 시는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을 엄하게 하고
深得『春秋』之義, 似有先見而發.
깊이 『춘추(春秋)』의 뜻을 터득했으니 선경지명이 있어 발설한 듯하다.
時女眞雖蹙, 而蒙古繼熾,
당시에 여진은 비록 위축되었지만 몽고는 이어 강성했기에
所謂北寨昏蒙, 蓋並指兩國也.
말했던 ‘북쪽의 혼몽하다’는 것은 대체로 두 나라를 아울러 지적한 것으로
慨然有蹈海俟河之意.
서글프게 바다를 건너고【도해(蹈海): 전국 시대 때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 노중연(魯仲連)이 “진(秦) 나라에서 황제를 자처하는 꼴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겠다.”라고 말한 고사에서 온 것이다. 『사기(史記)』 권(卷)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황하가 맑아지길【사하(俟河): 시기(時機)를 만나기 어려움을 말한 것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양(襄公) 8년 조에 “황하(黃河)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의 수명으로 어찌하겠나[俟河之淸 人壽其何]”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기다리겠단 뜻이 있다.
纔經百年, 大明一統, 掃蕩腥羶,
겨우 100년이 지나 명나라가 통일하여 비린내를 싹 쓸어버리고
文明之化, 東漸于海,
문명의 교화가 바다에서 동쪽으로 점점 왔지만,
惜乎公之未及見也.
슬프게도 공은 보질 못했다.
해설
진화(陳澕)는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라 하여, 이규보(李奎報)와 함께 달리듯 순식간에 쓴 글[走筆]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이 시는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지은 것인데, 『보한집(補閑集)』에 실려 있으며, 고려인으로서의 시대적 자각과 민족적 긍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중국인 남송(南宋)은 이미 노쇠의 지경에 있고 북방민족인 금(金)과 몽고(蒙古)는 아직 몽매한 상태에 있는데, 새로운 문명의 아침이 동쪽에서 밝아 온다는 것이다.
이 동쪽은 바로 고려 자신인 것이다. 송(宋)과 단절된 후에 고려는 문명의 나라로서 ‘영광 있는 고립’을 지키는 데 그칠 뿐 아니라, ‘인간의 낙원’을 실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고려는 나아가 다가오는 새 시대의 역사 위에 문명의 서광을 비추어 주리라는 것이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197~19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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