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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최해 - 우하(雨荷)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최해 - 우하(雨荷)

건방진방랑자 2019. 7. 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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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는 연꽃

우하(雨荷)

 

최해(崔瀣)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저초팔백곡 천재소기우

何如綠玉斗 竟日量明珠

하여록옥두 경일량명주 東文選卷之十九

 

牧隱云此誚不廉饒富者.

 

 

 

 

해석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후추 저장한 게 800원재(元載): 당나라 재상으로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축재했고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팔백 곡에 종유(鐘乳)가 오백 량이나 나와 나라에서 이를 몰수했다고 함., 1000년 동안 어리석음으로 비웃음 당했네.
何如綠玉斗 竟日量明珠 어째서 녹옥으로 됫박을 삼아 하루 종일 명주 세는가? 東文選卷之十九

 

牧隱云此誚不廉饒富者.

목은이 이 시는 청렴하지 않은불렴(不廉): 청렴하지 않다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을 비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설

조처팔백곡(貯椒八百斛)은 당()나라 원재(元載)의 고사이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뇌물을 탐하여 평판이 나빴으므로 죽은 뒤에 집 안을 검색하니, 호초가 팔백섬, 종유(鐘乳)가 오백량이라, 모조리 적몰(籍沒)했다는 이야기로, 길이 후세의 치소(嗤笑) 거리가 되어 오는 터이다.

 

이 시는 비록 남의 나라의 고사이기는 하나, 탐욕이 한계가 없으며, 그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들어, 자신의 청렴을 다지며 빈한을 자위한 내용이다.

 

작자는 본국의 과거에는 물론, 원나라 과제에도 급제하여 문명(文名)을 국내외에 떨친 재사로서, 출사(出仕)도 했지마는, 워낙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성품이라, 세속에 용납될 수 없었다. 스스로 물러나 저술에 힘썼으나, 호구지책(粗口之策) 때문에 그 일에도 몰두할 수가 없었다. 사자갑사(獅子岬寺)의 절밭을 소작하여 근근히 연명했다하니, 그 가난의 골몰을 짐작할 만하다.

 

지친 붓을 멈추고, 멍하니 비 내리고 있는 창 밖을 내다본다. 연못에는 벽옥 같은 연잎들이 한 못 가득 푸른데, 그 넓고 우묵한 싱그러운 잎사귀마다에 떨어지는 무수한 빗방울들은, 알알이 투명한 구슬이 되어 우묵한 중심부로 도글도글 굴러 모여든다. 어느만큼 고이고 나면 스스로 제 무게를 감당 못해 기우뚱해지는 순간, 수은을 엎지른 듯 일시에 말 구슬이 주루룩 쏟아진다. 큰 잎은 말이 되고 작은 잎은 되가 되어, 종일 두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명주), 종일 두고 똑같이 한 말 또 한 말, 한 되 또 한 되, 저렇게 되어 내고 또 되어 내고 있으니, 후추 아닌 명주가 팔백섬 아닌 팔천섬 팔만섬도 더 되어질 것 같다.

 

작자는 탄식한다. ‘어쩌자고 원재의 전감(前鑑)을랑 무참히 저버리고, 저처럼 탐재(貪財)하는 천하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고?’라고……

 

이는 물론 자신의 결벽(潔癖)의 과시(誇示)이기는 하나, 그러나 작자의 눈에 그것이 명주로 비치게 된 그 심리의 뒤안에는 적지 않은 사연이 서려 있음을 본다.

 

뜻하는 일에 전념할 수 없을 만큼 모질게 부대끼는 호구의 일이, 평소 얼마나 그를 마음 아프게 하였으면인간의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생리 본능인, 그 알량한 호구마저도 못하는 애달픔이 오죽했으면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저것들이 모조리 명주라면……순간 그는 크게 당황하며, ‘그런 용렬한 상상을 하다니……하고 다급하게 지우려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탐욕의 고사에 결부하여 천고의 어리석음으로 단죄(斷罪)한다. 그러나 이 시에는, 명주를 계량(計量)하게 하는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단죄된 수형자가 누구인지 불명하다. 연잎이야 다만 계량의 기구요 수단일 뿐이니, 그로 하여금 되질 마질하게 한 그 어리석은 주체는 따로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설마 그 어리석은 주체로 천공(天公)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테고 보면, 그 빈 자리에 서야 할 이는, 본인이야 잡아떼든 말든 작자 자신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명주를 순수한 미적 관념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탐재(貪財)에 대한 그의 엄한 계칙(戒飭)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눈 뜨게 된 인간 본능의 가치 관념 내지 소유 관념에서, 이를 재보(財寶)로 환각(幻覺)하는 순간 이미 사단(事端)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재보에 대한 소유 관념을 자신은 아닌 제삼자의 것인 양 부정하고 나섰으나, 부정하면 할수록 그 반대 급부로 이미 노출된 평소의 심곡(心曲)이며 인정(人情)의 기미(機微)는 이 시의 진가(眞價), 그야말로 명주처럼 빛나게 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이 시가 만인의 심금에 와 닿는 것도, 기발한 착상, 예리한 관찰, 핍진(逼眞)한 은유, 고사에 곁들인 교훈성의 가벼운 해학미(諧謔美) 같은 것 말고도, 이러한 미묘한 플러스 알파의 매혹적인 번득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같은 시각(視覺) 비슷한 내용의, 정철(鄭澈)의 시조 한 수를 첨기한다.

 

명주(明珠) 사만곡(四萬斛)을 연잎에 다 받아서,

담는 듯 되는 듯 어디로 보내는다.

헌사한 물방울란 어위 계워 하는다.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 126~128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동인시화

지봉유설

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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