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위협 앞에도 꺾지 않던 뻣뻣한 목을 지닌 동선
동선강항(董宣彊項)
『後漢』. 董宣字少平, 陳留圉人.
光武時爲洛陽令, 時湖陽公主蒼頭, 白日殺人, 匿主家, 吏不能得. 及主出, 以奴驂乘, 宣候之, 駐車叩馬, 大言數主之失. 叱奴下車, 因格殺之. 主訴帝, 帝怒召宣, 欲箠殺之. 宣叩頭曰: “願一言而死. 曰陛下聖德中興, 而縱奴殺良人, 何以理天下? 臣不須箠, 請自殺.” 卽以頭擊楹, 流血被面, 帝使宣謝主, 宣不從. 强使頓之, 兩手據地, 終不肯俯. 主曰: “文叔爲白衣時, 藏亡匿死, 吏不敢至門. 今爲天子, 威不能行一令乎?” 帝笑曰: “天下不與白衣同.” 因勅, 强項令出, 賜錢三十萬, 宣悉以班諸吏.
由是搏擊豪强, 京師號爲臥虎. 歌之曰: “枹鼓不鳴董少平.” 文叔光武字也.
해석
『後漢』.
『후한서』에 실린 이야기다.
董宣字少平, 陳留圉人.
동선의 자는 소평(少平)으로 진류군(陳留郡) 어현(圉縣) 사람이다.
光武時爲洛陽令, 時湖陽公主蒼頭, 白日殺人, 匿主家, 吏不能得.
광무제 때 낙양령이 되었는데 그때 호양공주의 머슴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공주의 집에 숨었지만 관리는 잡을 수가 없었다.
及主出, 以奴驂乘, 宣候之, 駐車叩馬, 大言數主之失.
공주가 외출할 때 머슴을 함께 태우니 동선이 기다리다가 수레를 멈추게 하고 말을 두드리며 공주의 잘못을 여러 번 크게 말했다.
叱奴下車, 因格殺之.
머슴을 꾸짖고서 수레에서 내리게 하고 그를 떄려 죽였다.
主訴帝, 帝怒召宣, 欲箠殺之.
공주가 광무제에게 하소연하자 광무제는 화내며 동선을 불러 회초리로 때려 죽이려 했다.
宣叩頭曰: “願一言而死. 曰陛下聖德中興,
동선이 머리를 조아리며 “한마디 말을 하고 죽길 원하오니 폐하께선 성덕으로 중흥케 하셨사오나,
而縱奴殺良人, 何以理天下?
양인을 죽인 머슴을 놓아둔다면 어찌 천하를 다스리겠사옵니까?
臣不須箠, 請自殺.”
저는 회초리 때릴 필요도 없이 스스로 죽길 청하나이다.”
卽以頭擊楹, 流血被面, 帝使宣謝主, 宣不從.
곧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니 피가 흘러 얼굴을 덮었고 광무제가 동선에게 공주께 사죄하라 했지만 동선은 따르지 않았다.
强使頓之, 兩手據地, 終不肯俯.
억지로 그를 조아리게 하려 했지만 두 손으로 땅을 지탱하여 끝내 기꺼이 굽히지 않았다.
主曰: “文叔爲白衣時, 藏亡匿死, 吏不敢至門.
공주가 말했다. “문숙【문숙(文叔): 광무제 유수(劉秀)의 자】께서 천자가 되기 전엔 범죄로 자취를 감춘 이를 숨겨주고 사람을 죽인 이를 숨겨줬지만 관리는 감히 문에 들어오질 못했습니다.
今爲天子, 威不能行一令乎?”
지금은 천자가 되었는데 위세가 하나의 명령조차 행해질 수 없는 것입니까?”
帝笑曰: “天下不與白衣同.”
광무제가 웃으며 “천자일 때와 천자가 아닐 때는 같아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因勅, 强項令出, 賜錢三十萬, 宣悉以班諸吏.
‘뻣뻣한 목[强項]의 현령은 나가시게.’라는 칙서를 내렸고 돈 삼십만을 하사하니 동선은 모두 여러 관리들에게 나눠줬다.
由是搏擊豪强, 京師號爲臥虎.
이로부터 유지나 권력이 강한 이들을 처벌하니 서울에선 ‘누운 호랑이[臥虎]’라 불렀다.
歌之曰: “枹鼓不鳴董少平.” 文叔光武字也.
그를 기리며 “도둑을 알리는 북을 두드리지 않게 해준 동소평”이라 했다. 문숙은 광무제의 자이다.
해설
옛날에 천자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신과 같은 존재가 하는 말은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하 지당하옵니다’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많은 예스맨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바로 조정이다.
흔히 치세라고 하면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력이 강한 시대를 꼽는다. 그래서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치세를 가늠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유가의 정치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관점은 다만 부수적인 조건일 뿐이다. 오히려 절개를 알고 곧은 말을 할 줄 아는 삐딱한 신하들이 많고, 그 신하들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천자가 있는 시대가 바로 치세이다. 바로 그러한 신하를 이전에 ‘선비’라고 불렀다. 이들은 군주의 잘잘못을 가리는 귀찮은 심판관들이었다.
이러한 선비들의 철학이 바로 유학이다. 유학을 말할 때 보통 공맹(孔孟)의 학문이라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비꽈서 맹꽁 맹꽁이의 학문이라고도 했다. 이는 비꼬는 말일 수도 있고 뻣뻣함이 지나쳐 답답할 정도로 보인 유학자의 단면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유학자 가운데 뻣뻣한 목의 첫 손가락에 드는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맹자를 들 수 있다.
공자의 학문을 한 글자로 표현하라면 당연히 인(仁)이다. 부모 자식 사이의 피로 얽혀 있는 원초적 도덕 정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논어』를 읽어보면 시골 서당의 나이 지긋한 스승의 말이 연상된다. 이에 비해 맹자는 공자보다 거친 시대를 살아서 인지 대단히 논쟁적이고 전투적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꼬장꼬장하고 굽힐 줄 모르는 정신인 ‘의(義)’를 ‘인’과 짝하게 배치한 사람이 바로 맹자다.
한 제후가 군주와 백성과 사직 중에 무엇이 제일 귀중하냐고 묻자 맹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단정적으로 군주는 하찮다고 했다. 난세를 치세로 바꾸고 치세가 난세로 추락하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선 선비 정신의 원조인 셈이다.
첫 번째 「동선강항(董宣彊項)」 이야기의 인물인 동선의 표제는 말 그대로 ‘뻣뻣한 목 동선’이다. 제갈공명을 ‘누워 있는 용’이라 불렀다면 이 사람은 ‘누워 있는 호랑이’에 비유된다. 천자가 사랑하는 공주와 맞선다는 것은 아무리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손 쳐도 내 목 가져가쇼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 「적황직언(翟璜直言)」 이야기에서 적황과 임좌의 답변은 가히 쌍벽을 이룰 만한 충신의 말이다.
-『몽구』, 이한 지음, 유동환 옮김, 홍익출판사, 2008년, 55~5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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