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공부의 공통점
느긋한 마음으로 8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응급치료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찌릿한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그러니 온 신경이 곤두서고 되도록 물집이 잡히지 않은 부분으로 땅을 디디려 하다 보니, 걸음걸이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금만 걷는다면
어제 무리한 만큼 훗날에 부담이 된다
크게 문제 될 게 없겠지만, 계속 그렇게 걸으려 하다 보니 온몸에 무리가 왔다. 발바닥이 아프게 되니 걸음걸이가 틀어지고, 걸음걸이가 틀어지니 골반과 허리까지 아파온다. 몸은 역시나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도 없고, 중요하지 않은 곳도 없는 완벽한 균형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걷는 게 아주 쉬운 일 같아도 거기엔 꽤나 과학적인 운동원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삼박자 보행을 하지 않아도, 뭔가 부자연스럽게 걸어도 온몸의 균형이 망가져 버린다.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척추를 곧추세우고, 삼박자 보행을 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걸 안다 해도 지금 상황에선 물집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쉽지가 않았다. 물집이 발바닥 앞쪽 부근에 있기에 거기가 땅바닥에 닿지 않도록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느릿느릿 걸어야만 했다. 역시 어제 무리한 만큼 오늘 타격을 받는 건 어찌 보면 삶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순오지』란 속담책엔 ‘삼일 가야 할 길을 하루에 가고 열흘 눕는다[三日之程, 一日往; 十日臥.].’라는 속담이 나온다. 어찌 보면 과욕이 부른 참상을 제대로 보여준 속담이라 할 수 있고, 바로 어제의 나를 향해 말해주는 속담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목표에 어떻게든 빨리 닿기를, 쉽게 닿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세상엔 ‘속성(速成)’이 판을 치며, 오히려 진득하게 해나가는 사람을 바보라고 여긴다. 하지만 속성으로 이룬 쾌거는 모래로 쌓은 성 같은 것일 뿐이다. 그건 실질적으로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고, 오늘의 나처럼 오히려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일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국토종단을 떠나기 전에 한문학원에서 강사로 몇 개월 간 일을 했었다. 한자능력시험이 아이들에겐 따놓으면 요긴한 것이 되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학원에 많이 찾아왔다. 한자능력시험은 분기별로 있는데, 이럴 때마다 아이들의 목표는 당연히 상위 등급의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러면 강사는 아이들이 외워야 할 양을 정해주고 그걸 때에 따라 체크해주는 것이다. 즉,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외우고 확인받고, 그걸 토대로 시험 문제를 풀어보고 다시 확인 받아 점수를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말 3개월 만에 6급의 자격증을 딴 아이가 5급의 자격증을 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급하게 먹은 밥은 소화가 되지 않아 체하게 하고, 한 번에 부린 과욕은 나를 짓누르듯이, 3개월 만에 딴 자격증은 그저 종이떼기일뿐이다. 자격증을 따는 순간부터 5급 한자는 서서히 까먹어 가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격증은 땄지만, 5급 한자는 모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제 무리한 국토종단 일정으로 오늘 힘들어하는 상황이나, 학원에서의 그와 같은 경험이나 알려주는 바는 명확하다. 공부든 여행이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서서히 해나가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들어가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며, 너무도 지지부진하여 조바심이 든다 해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여행이든 공부든 진정한 내 것이 되고 ‘힘겹고 짜증나는 것’이 아닌 ‘즐겁고 유쾌한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경험으로 익힌 여행과 공부의 공통점이다.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 국토종단 - 39. 물집과 작지만 큰 행복[논산⇒공주 경천리](09.04.28.화) (0) | 2021.02.05 |
---|---|
2009년 국토종단 - 38. 힘듦 속에 알게 된 도보여행의 참맛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36. 교회에서 자는 날에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이유[함열⇒논산](09.04.27.월)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35.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만난 사람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34. 여행의 컨셉이 ‘민폐 끼치기’라고? (0) | 2021.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