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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43. 낯선 이에게 들려준 우리네 삶의 이야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43. 낯선 이에게 들려준 우리네 삶의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2. 6.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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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에게 들려준 우리네 삶의 이야기

 

 

사모님의 들려 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분들은 순탄한 삶을 살아오신 게 아니라, 삶의 파도 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오신 거였다. 아마도 나의 이런 모험 자체를 긍정해주실 수 있었던 데엔, 맘처럼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내력이 작용하는 듯했다.

 

 

▲ 금방 전까지만 해도 사시 나무 떨듯 비관적이었지만 지금은 온갖 행복을 다 안은 듯 낙관적이기만 하다.

 

 

 

건빵이 만난 사람: 아픔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 길로 가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한창 잘 나갈 땐 계룡산 밑에 소 100마리를 키우기도 했단다. 그런데 소값이 나날이 떨어져 똥값이 되자, 한순간에 쫄딱 망하셨다는 것이다. 삶은 그렇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했다. 그건 정부와 농협이란 괴물의 공동작품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야 했기에, 집이 있는 자리에 별채를 세워 장사를 하기로 했단다.

이 건물을 세우려면 융자를 받아야 했는데, 그걸 받는 과정이 압권(壓卷)이었다.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농협에 가서 아무리 통사정을 해봐야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어필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모님은 소똥 묻은 장화를 신고 조합장실로 나흘간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들의 장난으로 우리가 망했으니, 저리 융자로 돈을 빌려달라고 외친 것이다. 처음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4일째 되는 날 조합장이 아줌마처럼 이렇게 억척스런 사람은 처음 보네요라는 한 마디를 내뱉으며 일처리를 해줬다고 한다.

그 억척스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이미 삶은 극단으로 내몰렸고, 여기서마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니 좀 과격하게 보일지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이곳에서 정육점을 시작해 여태껏 장사를 해오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여태껏 얼마나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별 다른 걱정 없이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절실함과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데 이젠 그마저도 그만두시려고 하신단다. 정부가 대규모 사업자에게 정육점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기 때문이다. 기업형 정육점이 등장한다는 말씀되시겠다. 대기업 슈퍼가 곳곳에 들어서면 경쟁력이 없는 영세 슈퍼는 문을 닫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자본가의 손만을 들어주고 영세 상인들을 내치는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있다(여담으로 2009625일에 이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투어하면서 대기업슈퍼에 불만을 표시하는 상인들에게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로 상처 난 곳에 염산을 뿌려대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뻔뻔한 대통령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 누군가에게 시장은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겐 투어의 장소이며 이미지 정치를 구현하는 장소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걷는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민폐를 끼치더라도 민가에서 자고 싶었던 거다. 책이 한 사람 인생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모두 다 인정하듯이, 한 사람의 인생담도 책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국토종단을 한 날이자,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날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단순히 스쳐 지나가며 느끼는 여행을 하기보다 여러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온기가 깃든 풍경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어느 곳을 다녀왔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여행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명(共鳴)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여행을 국토종단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해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의 여행도 적극적으로 민폐를 끼치며 관계를 창조해나갈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난 잠자러 들어왔다. 이 방은 아들 방인데 작년에 결혼을 해서 빈 것이란다. 이제 편안히 자면 된다. 두 분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던지. 지금 누워있는 아늑함이 꼭 꿈만 같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란 말도 제대로 터득할 수 있었다. 두 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셔요.

 

 

▲ 사람의 이야기엔 삶의 절정이 담겨 있다. 고로 오늘 책 한 권 잘 읽었다.

 

 

 

시골에 대한 편견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시골은 정을 중시하는 곳이고,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어서 모두가 가족처럼 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말만 들으면 정말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게 밀착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도를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의 대소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해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백번이라도 환영할 테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가십거리가 되고, 그게 아무렇지 않게 퍼져 나간다. 그러니 자꾸 남의 이목에 신경 쓰게 되고, 더 심해지면 노이로제까지 걸리게 된다. 그리고 모임이나 마을 행사에 불참하기라도 하면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기도 한단다.

공동체가 좋아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이길 강요하니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사모님은 이와 같은 시골의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불만스러워하셨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잘 나갈 때 일이 잘 풀릴 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궁지에 몰릴 때 누군가의 입방에 오른다는 건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골에서 사는 것의 힘겨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 곤하게 자고 있는 손녀. 천사가 따로 없다.

 

 

 

지출내역

 

내용

금액

잡채밥

5.000

과자

3.000

총합

8.000

 

 

인용

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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