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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44. 없는 살림에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경천⇒연기](09.04.29.수)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44. 없는 살림에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경천⇒연기](09.04.29.수)

건방진방랑자 2021. 2. 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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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에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으니 사모님이 밥을 챙겨주시더라. 꼭 집에서 아침을 먹고 떠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모님께선 한갓진 길이 있다며 친히 메모지에 적어줬고, 가면서 밥값을 하라며 돈까지 챙겨주셨다. 그뿐인가 갈증 날 때 마시라며 배즙까지 주셨으니, 집에서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줬다고 할 만하다. 이렇게까지 나눠줄 수 있는 그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 잘 자고 아침까지 잘 먹고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난다. 싱그러운 날이다.

 

 

 

많아야만 나눌 수 있다?

 

여행을 떠난 이후로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고, 전혀 모르던 사람을 만나며 평소엔 미처 알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건 무언가를 받았고 어떤 환대를 받았기 때문에 드는 고마움이라기보다, 아직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다.

바로 여기엔 인생의 아이러니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권력과 지위, 그리고 돈을 가진 사람들은 인색한 경우가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없는 살림에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애쓰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많이 가져야만 베풀 수 있고, 넉넉해야지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교회에 열심히 다닐 땐 함께 나누며 살기 위해 많은 돈을 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곤 했었다. 분명히 그땐 함께 나누며에 방점을 찍고 이런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 속엔 어처구니없는 자기합리화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물질의 풍요=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자리하고 있으며,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가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기도를 하며 많이 가지게 된 사람들은 나누려 하기보다 더 분주하게 채우려고만 한다. 2007년에 있었던 홈에버 파업사태는 종교인의 기도가 얼마나 위선이며 신의 뜻과 위배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랜드 회장은 근무를 시작할 때 직원들이 모여 큐티(Quiet Time)를 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임에도, 돈 앞에선 여느 기업가보다도 더욱 악랄한 장사치였던 것이다.

 

 

▲ 치열했던 싸움은 [송곳]이란 웹툰으로, [카트]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돈이 많냐 적냐 하는 것이 나눔의 전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은 돈의 양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상관있을 뿐이다. 지금도 많은 교회에선 예전의 나처럼 성공하기 위해, 부유해지기 위해 열심히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때 허울 좋은 합리화(남과 나누겠다, 교회를 더욱 열심히 다니겠다,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를 할 테지만, 그건 결코 순수하지도 그렇다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모님의 마음 씀씀이가 정말로 고마웠기에, 나 또한 그처럼 베풀고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어제저녁의 불안과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고, 새 아침의 싱그러움만이 가득했다. 왠지 발걸음이 여행을 처음 시작하던 그 날처럼 가볍고 절로 신이 난다. 한참 걷다가 뒤를 바라보니 사모님이 손녀를 업고 나오셔서 마중 인사를 해주시더라. 반가운 마음에 두 팔을 다 저으며 인사를 건넸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다.

 

 

▲ [송곳]에 대해 하종강 교수는 "살아있는 노동법"이라 했다.

 

 

 

어우러짐을 맛보며 걷다

 

사모님이 알려준 길은 정말로 한가로운 길이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주위에 볼거리들도 많아서 산책을 하기에도 적당한 코스였으니 말이다. 오른쪽으론 계룡산을 끼고 왼쪽으론 양화저수지를 거쳐 계룡저수지를 지나서 간다.

계룡산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기가 센 산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인생이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뭇 청춘 남녀들이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 산을 오르는 건 아니지만 옆에서 보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그 기운이 전해져 왔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고 산들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와 내 뺨을 스쳤다. 더욱이 날씨까지 좋아서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기분도 한껏 업 되어 있고, 주위의 환경까지도 완벽하니 이런 날 맘껏 걸어서 여행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축복이다.

계룡산자락 밑에 난 굽이길을 걷고 있으니, 꼭 원시림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은 날씨와 한적한 코스가 한껏 어우러져 최고의 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모님이 알려준 길, 그건 국토종단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길이었고 목적지에 빨리 이르기 위한 여행에서 어우러짐의 맛을 느끼는 여행으로 성격을 확 바꾸는 길이었다.

 

 

▲ 한적한 길을 따라 걸어간다. 걸어가는 맛이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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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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