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의 전반기를 마치며
302번 지방도를 따라 쭉 걸었다. 이 길은 산을 삥돌아 올라가 안성 근처의 금광 저수지를 따라 걷는 길이다. 산을 오를 땐 혹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는 모래재를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모래재에 비하면 규모가 작더라도 힘은 꽤 들었다. 그러나 호젓한 산길을 걷는 기분은 좋았다. 그저 찻길만 쭉 따라 걷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길이었다.
여행을 즐기는 데 방해되는 것
산에서 나는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땐 아련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어렸을 때 기억들이다. 어렸을 땐 산을 잘도 ‘헤매고’ 다녔었다. 봉분에서 눈썰매를 타기도 했고, 불장난을 하다가 산에 조금이나마 불을 낸 적도 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희미한 이미지로만 남은 기억들이 향기로 인해 내 머릿속에 꽉 찼다. 후각이나 청각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떤 냄새를 맡으면 불현듯 과거의 어느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들이 샘솟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난 다시 산길을 걷던 어린 날의 그때로 되돌아간 마냥 손을 좌우로 ‘씨게’ 흔들며 명랑하게 걷고 있다.
오늘은 집에 간다. 원랜 내일 갈 생각이었다. 예비군 훈련 하루 전에 집에 도착해도 되지만 막상 큰 도시가 옆에 있는 걸 보고 경로를 음성에서 안성으로 급하게 바꾸었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큰 도시(안성)에 도착하는 날짜가 하루 빨라진 것이다. 그래서 하루 일찍 집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걸으니 몸과 맘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은연중에 여행 내내 ‘오늘 밤엔 어디서 자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나 보다. 하긴 아무리 ‘어떤 상황도 즐겁게 맞이해야지’라고 다짐한다 해도 그런 상황들에 두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부담이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그렇지만 문제는 있었다. 가까울 것만 같던 안성까지의 길이 꽤 멀다는 것이다. 이러다 오늘 집에 못 가는 것 아니야?
처음치고 최고였던 국토종단을 잠시 멈추며
걷고 또 걸어 안성에 들어선 시각은 3시쯤이었다. 다행히도 터미널은 외곽지대에 있어 한시름 놓았다. 조금씩 커져가는 도시답게 터미널을 이전한 지 얼마 안 되나보다.
큰 도시니까 당연히 전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행선지표를 봤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전주는 없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단순히 생각해야 한다. 처음엔 이천이나 원주로 갈까 생각했는데 잘 찾아보니 서울남부터미널로 가는 게 있더라. 남부터미널에선 전주로 가는 버스가 많으니 그곳으로만 간다면 만사 오케이다. 3시 30분에 떠난 버스는 1시간 정도를 달려 서울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남부터미널에선 5시 전주행 버스를 타서 7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걷는 것보다 버스를 타는 게 더 힘들었던 하루였다.
이로써 내가 계획한 ‘여행의 전반기’는 끝났다. 맛보기 차원에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의외로 많은 것을 얻은 귀한 시간이었다. 잠시 예비군 훈련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떠나게 되는 ‘여행의 후반기’에는 어떤 인연들과 엮이게 될지 기대된다. 다시 떠나는 만큼 처음보단 더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고 많은 경험을 실컷 하리라.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안성-서울 버스비 |
4.400원 |
서울-전주 버스비 |
10.500원 |
총합 |
14.9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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