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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70. 신경쇠약과 맥주[안성 터미널⇒안성 일죽면](09.05.09.토)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70. 신경쇠약과 맥주[안성 터미널⇒안성 일죽면](09.05.09.토)

건방진방랑자 2021. 2. 7.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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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과 맥주

 

 

진규에겐 황금주말일 텐데 여행을 떠나기에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나 때문에 신경을 써야 했다. 명지대 앞에서 밥을 먹고 1140분쯤 헤어졌다. 남부터미널에서 안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10분에 도착했다. 54일에 이곳에서 떠났으니 5일 만에 다시 이곳에 온 셈이다.

 

 

▲ 5일 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 오늘은 안성을 걸어 일죽면까지 간다.

 

 

 

국토종단을 하며 신경쇠약을 얻다

 

다시 시작하는 여행이다. 하지만 며칠 쉰 탓에 배낭이 엄청 무겁게 느껴진다. 필요 없는 물건을 뺐음에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한껏 더워진 날씨도 꽤나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편하자고 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다. 그런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건, 그 힘듦 속에 진정 알고 싶던 지금껏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난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하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으며 나와 좀 더 친해지고 나에 대해 실망도 하고 호감도 느껴보고 싶다. 이젠 그런 나를 만나기 위해 힘껏 팔을 흔들며 걷기만 하면 된다. 이 기분 그대로 Let's Go!

 

 

▲ 다시 찾은 안성터미널~ 왠지 이 곳에 오면 '안성탕면' 한사발 후루룩 짭짭!! 하고 싶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불어 그나마 괜찮았다. 38번 국도를 따라가는 방법과 325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국도가 2차선이라면 당연히 거기로 가겠지만 불행히도 4차선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지방도로 걷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로 볼 때와는 달리 터미널에서 나와 둘러보는데도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헤맸나 보다. 날씨도 덥고 괜히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38번 국도로 갔다.

쭉 뻗은 길인지라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하지만 문제는 너! ! ! 잘 닦여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Q: 사람에게 길이 잘 닦여져 있으면 좋을까?

 

이 질문에 대부분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길을 차를 타고 가긴 해도 걸어서 갈 일은 없으니 당연한 대답이다.

하지만 잘 닦여진 길은 걷는 사람에겐 최악이다. 우선 운치가 없다. 걸으며 보게 되는 건 쭉 뻗은 도로와 차뿐이다. 얼마나 지겹고 답답할지 느껴지지 않은가?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잘 닦여진 도로엔 차들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리 달린다. 더욱이 대형차들이 지나갈 때면 그 바람에 내 몸이 휘청거릴 정도다. 그러다 누군가 실수해서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난 외마디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황천에 가 있을 거다.

그러니 이런 도로를 걸을 땐 잔뜩 긴장해야 한다. 국토종단 하다가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잘 닦여진 국도로 걸어가는 여행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뭔가를 얻고자 떠난 여행에서 난 신경쇠약을 얻고 왔노라. ㅡㅡ;;

 

 

▲ 신경쇠약을 모르는 그대에게, 신경쇠약에 걸릴 수 있는 여행 코스를 소개합니다.

 

 

 

맥주와 커피

 

그래도 오늘은 모처럼만에 걷는 것이라 생기가 돌았고 몸도 가뿐하다. 여주까지 가야하기에 좀 빨리 걸었다. 조금이라도 쌩쌩할 때 더 걸어두자는 속셈이었고 늦은 시간에 출발한 만큼 까먹은 시간을 메워보자는 심산이었다. 4차선 국도는 운치가 전혀 없다. 당연히 기록할 만한 광경이나 에피소드도 있을 리 없다.

목을 축일 겸 슈퍼에서 맥주를 샀다. 땀을 흘리고 난 뒤엔 맥주가 제격이라고 현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기에 한 번 그 기분을 느껴보려 산 것이다. 한참 가다가 보니 한적한 장소가 나온다. 컨테이너 박스가 있고 그 옆엔 나무 그늘이 있다. 그곳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목을 통해 내려가는 맥주의 맛, 그건 온몸을 전율케 하는 맛이었다. 거기엔 어떤 수식어도 불필요하다. 딱 이 한마디만 적합할 뿐. “~~!!” 더운 날 왜 사람들이 맥주, 맥주 하는지 알겠더라.

한참 맥주맛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컨테이너의 창문이 열리는 거다. 그 순간 식겁했다. ‘왜 남의 집 옆에서 시끄럽게 하냐~’고 혼날 줄만 알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락부락한 아저씨는 여행 중이냐고 물으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네준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일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이 하며 꽤나 당황했지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커피를 받아 마셨다. 이런 호의는 언제든 오케이다. 맥주의 시원한 맛과 커피의 따뜻한 맛이 꽤나 잘 어울렸다.

 

 

▲ 김제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셨던 맥주. 한참 걷다 갈증날 때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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