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끌려다니지 말고 여행에 충실하라는 조언
서산으로 향하는 길에 ‘병천순대집’이 눈에 띄었다. 이미 순대의 본향인 병천에서 맛본 경험이 있는 터라 별로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
사람여행⑳: 현실인이지만 낭만을 품고 사시는 아주머니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다. 여기 순대국밥은 맑은 국물의 순대국밥이다. 맛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한 터라 순식간에 먹었다. 다 먹고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엌에서 양치질을 했다.
그때 아줌마는 큰 배낭을 보시더니 도보여행 중이냐고 물으신다. 보통 이런 경우엔 “등산 가시나 봐요?”라고 묻는 게 일반적인데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국토종단 때도 양평에서 식당 아주머니와 이런 식의 대화를 했었는데, 다른 듯 같은 풍경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그제야 아주머니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대학생 때 동아리 행사로 국토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첫 여행이었지만 친구들과의 의기투합으로 완주하셨단다. 그런데 무리하며 걸은 탓에 인대를 다쳐서 무려 1년 동안이나 치료를 해야 했단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엔 ‘뿌듯함’이 어리는 듯했다. 그건 ‘나도 한 땐 그랬었지’하는 추억담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러한 경험이 있으셨기에 내가 도보여행을 하는 줄도 단박에 알았던 게 아닐까. 확실히 타인에 대한 이해도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경험을 해본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폭도 넓게 마련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여행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며 힘을 북돋워 주셨다.
아주머니도 그 여행 이후 다시 떠나고 싶었지만 맘처럼 되지 않더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당부도 잊지 않으신다. 여행을 떠난 마당이니 현실에 끌려다니지 말고 그 여행에만 충실하라고 말이다. 따뜻한 밥 한 공기 이상의 힘과 열정을 받고 이 여행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스레 느끼며 문을 나섰다.
도보여행에 스마트폰은 득일까? 실일까?
서산에서 잠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한 시간 넘게 헤매기만 했다. 딱 이럴 때만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으로 교회를 찾으러 경찰서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삥 돌아갈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양날의 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종교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게 되고 갈 길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굳이 상황에 몸을 맡겨야 할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은 걸으며 무엇이 나올지 몰라 잔뜩 기대하고 실망도 한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으로 여기저기 상상하며 발을 내딛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특권이지 않을까. 미지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건, 여행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꼭 스마트폰이 있다고 해서 틀에 박힌 여행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시간 네트워킹을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들과 엮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잠자리를 구하거나, 지역의 명소를 찾아가는 일이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스마트폰은 도구일 뿐이다.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나의 역량에 달려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원시적인 도보여행을 해봤으니, 다음에는 스마트폰으로 좀 더 상상력 가득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 다양한 기획을 하고 그걸 낯선 사람들과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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