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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97.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다[당진읍⇒서산 부석면](11.04.23.토)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97.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다[당진읍⇒서산 부석면](11.04.23.토)

건방진방랑자 2021. 2. 1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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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다

 

 

어젠 아무리 생각해도 힘겨운 날이었다. 겨우 16.8를 걸었기에 4시간 정도 밖에 걷지 않은 셈이지만, 비 내리는 날씨라 기분도 그랬고 잘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거부까지 당해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날씨가 흐릴 수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건 잘 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여태껏 잘 수 있도록 도와준 경우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 각 교회마다 목사님들은 다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다른 목사님들이 자기만의 반응을 보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목사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 당진읍 ⇒ 서산 부석면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상황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아직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기에 목사님의 얼굴만 보고서 어떨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없다. 단지 내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길 바라며 말할 뿐이다. 지금껏 부탁을 할 때 내 모습이 어땠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비굴했는지, 당당했는지, 좀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최대한 당당하고 활기차게 말해보려 한다. 내가 불청객임엔 분명하지만 이런 부탁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방식으로 부탁을 하더라도 그런 부탁을 받는 사람은 자신만의 성향에 따라 반응을 보이리라. 그러니 비굴할 필요도, 죄송해할 필요도 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말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버리게 되는 건 사람에 대한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말은 사람에 대해 희망을 갖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기대란 게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그런 선입견 자체를 버리겠다는 뜻일 뿐이다. ‘사람은 ~~하다라는 규정은 관계를 왜곡시키기 일쑤다.

 

 

최근의 몇 가지 경험에서 자주 생각을 키우는 느낌입니다만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것이 일회 완료의 대상화된 행위가 아니고 좋은 사람또는 나쁜 사람과 같이 그것이 사람인 경우에는 완전한 악인도 전형적인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 확인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추상된 도식이기 때문에 도리어 인간 이해를 방해하는 관념이라 생각됩니다. 전형적인 인간을 찾는 것은, 없는 것을 찾는 것이 됩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돌베개, 1998

 

 

사람에 대한 관념이 있으면 현실 속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 현실 속의 사람은 감정이나 행동이 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고 도리어 자신이 지닌 관념으로만 그 사람을 꿰어맞추는 것이다. 그러니 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긋날 수밖에 없다.

 

 

▲ 김동진 展, [할喝]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

 

바로 이와 같은 문제점 때문에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겠다는 거다. 관념을 앞세우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무언가 공감대가 형성되어 친해질 수도 있고, 심한 거리감만 느끼며 마음의 벽을 쌓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상황은 늘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린 마음을 활짝 열고 그 사람에게 다가서기만 하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선악의 윤리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찌 나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겠으며, 나를 거부했다 해서 나쁜 사람이겠는가. 그건 단지 시절인연(時節因緣, 호모 에로스에 나오는 표현)[각주:1]이 엮이지 않은 탓일 뿐이다. 나쁜 사람이란 없다. 단지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존재와의 만남이 있을 뿐이다. 그럴 경우 서로에게 나쁜 영향만 끼치게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계조차 시간이 흐른 후 만나게 되면 또 다른 관계의 장으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결국 시절인연에 따라 사람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볼 수 있도록 나의 시야를 더욱 넓히려 노력할 것이다.

 

 

▲ 모든 관계에는 시절인연이 있다. 한 때의 타오를 것 같이 뜨거운 관계가 저물기도, 아무런 감정도 없던 관계가 싹트기도 한다.

 

 

인용

목차

사진

 

  1. 결별의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랑할 때 아무 이유가 없었듯이, 헤어질 때 역시 마찬가지다. ……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시절인연이 어긋난 탓이라고밖에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사람도, 삶도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떤 사건들 때문에 헤어진다기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호모 에로스』, 그린비, 고미숙, 2008년, 1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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