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욕의 본향이 전라도가 된 이유
그때 당시에 농민이 90% 그러니까 조선시대부터 시작해서 일제시대가 되기 전까지, 조선이 멸망되는 그 순간까지 끝없이 이 땅은 착취의 땅이죠. 지주가 1차 착취하고, 2차로는 국가가 착취하고 그 이중의 착취 속에서 500년을 시달려 왔고, 500년만 시달려 왔겠습니까? 그 전 고려시대, 백제시대 이렇게 올라가면 3,000년을 시달려온 착취의 땅이 됩니다.
전라도와 욕
그래서 조선시대에 뭐라고 하고 나왔냐 하면 ‘욕의 본향이 욕의 본 고향이 전라도다’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이 욕을 그렇게 잘하냐? 친한 친구도 “야, 시벌놈아”지 아들보고 “오살육시(五殺戮屍)하네. 지리산 호랭이가 콱 물어갈놈 저놈”. 자기 아들 보고 그래요. 딴 도(道)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요. 친밀감도 전부 욕으로 해결해요.
왜 그런가 하면 저 강원도나 함경도 사람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어요. 세금을 낼 게 없었어요. 전부 산간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조나 심어 먹고 무슨 세금을 걷겠어요. 거기에서는 사또한테 곰 쓸개, 호피 호랑이 껍데기나 갔다 주면 그걸로 끝나요.
여긴 아니에요. 2중 3중으로 착취를 당했던 곳이에요. 그러니 보세요. 뼈 빠지게 일을 했는데 국민의 90%가 농민이고 그 90% 중에서 또 90%가 소작인이에요. 대단히 죄송하지만 여기에 지주(地主) 자식 계시면 이해하십시오. 천석꾼, 천석꾼, 그 천석꾼 밑에 소작인이, 소작인의 자식까지 생각하면 약 2,000명이 매달려야 합니다. 만석꾼, 거의 8,000명이 매달려야 합니다. 그들의 착취 속에서 천석꾼, 만석꾼이가 배를 불리고 살았어요.
그러니 자기는 저기서 거머리 뜯기고 요즘 장화. 그때는 장화가 있습니까? 거머리 뜯기고 허리 휘어지고 얼굴 팅팅 붇고 똥은 마렵죠, 햇볕은 쬐죠, 눈은 찔리죠, 거머리는 물어뜯죠. 그렇게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주들은 가마 타고 왔다 갔다 해요. 조선시대에는 일제시대에는 하이야 1타고 왔다 갔다 해요. 그 꼴을 보고 소작농들이 할 수 있는 게 뭐요?
“저런 오살육시(五殺戮屍)할 놈 콱 디져 부러라”하는 욕이나 안 하면 그분을 그 고통스러움을 어찌 풀겠어요? 여러분들 지금 토하(土蝦)가 농약 때문에 다 없어졌어요. 토하라는 게 있습니다. 민물새우 나이 많으신 분들은 보신 적이 있을 거에요. 논두렁에 물이, 맑은 물이 흘러가면 7∼8월 달에 새우가 이만썩한 게 들끓습니다. 휘몰이를 하며, 휘돌면서 이렇게 막춤을 추는데 그 빛이 꿰뚫려서 맑을 물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 같습니다. 그것을 젓갈을 담으면 토하젓이고 그 토하가 알을 뱁니다. 이 새끼손가락 이만밖에 안 되는 이 1/3로 가는 거기에 알을 붙어 있으면 얼마나 붙어 있겠어요. 그 알을 뜯어서 젓갈을 담아요. 그게 토하알젓이에요. 그 맛이 기가 막히는 겁니다. 첩도 안 준데. 그것을 소작농들이 농사를 짓고 그걸 보를 막아서 떠서 잡아 가지고 단지에다가 알을 담아서 이 한 단지를 만들어요. 얼마나 많은 토하를 잡아서 그것을 뜯어서 한 단지를 만들겠어요. 그걸 만들면서 소작인들이 뭐라 하겠어요? “야 이놈 이걸 먹고 디져 버려라. 복상사나 해 버려라” 복상사 2가 뭐에요? 남녀관계하다가 남자가 여자 배 위에서 죽어버리는 거에요. 토하 알젓이 정력에 좋다고 하거든요. 그래 이것 쳐먹고 복상사나 디져 버려라. 그 말을 안 하면 못 살아요.
판소리는 욕의 승화
전라남북도가 다 똑같죠. 곡창지대가 많으니까. 그 욕이 500년, 1,000년을 흘러 내려오다 보니까 욕이 아주 문학적으로 승화돼 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태백산맥』ㆍ『아리랑』에서 우리 전라도 넉끌넉끌한 욕을 그대로 다 쓰므로써 그 역사성도 말을 하고 전라도 말이 얼마나 찰방지고 쫄깃거리고 맛있는가? 왜? 판소리가 이 땅에서 나왔는가 하는 이야기도 동시에 해냈습니다.
“에레기 순 개자슥덜아, 고런 드런 눔에 법 맹그니라꼬 그리 삐대고 개지랄쳤냐! 지미 붙어 묵을 눔덜.”
“싸악 다 호로 개아덜눔덜이다. 요것이 농지 개혁은 무신 빌어 묵을 농지 개혁이냔 말여. 씨부랄 눔덜이 사람을 워띠캐 보고 혀는 잡지랄덜이여. 시방”
“워치게 보기는 뭘 어치캐 바. 소작이나 부치묵고 사는 것덜이야 보나마나 썩은 홍어 좆이고 똥통에 구데기제. 눈꼽쟁이만치라도 사람으로 여겼음사 요런 가당찮은 직거리 혔것어?”
『태백산맥』에 보이는 욕들
『태백산맥』이 일본에서 번역이 됐는데 번역하는 사람들이 제일 어려운 게 뭔가? 욕 번역이에요. 욕 번역. 일본놈들에게는 욕이 두 가지 밖에 없데요. 칙쇼 3, 빠가야로 4 그것밖에 없대요.
우리의 욕이 일본에선 현실?
“니 에미 붙어 먹을 놈아.” 뭐 우리 그러잖아요. 근데 일본놈들은 니 에미하고 붙어버린대요. 그래 이게 욕이 아니래요. 형수 데리고 사는 게 일본놈들이잖아요. 그건 또 괜찮아요. ‘딴 데 갈 수도 없고 애가 있는데 가기도 뭐하고 하니까 그 애를 살리기 위해서 동생이, 능력 있는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산다.’ 거기까지는 논리적으로 맞아요. 근데 니 에미 붙는 것은 막 붙어 버리니까 욕이 안 된대요. 그래서 그 많은 욕을 번역하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이 땅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핍박에다가 일본놈들이 들어오면서 그때 당시 일본놈들이 한국에서 제일 탐낸 게 두 가집니다. 첫 번째 쌀, 두 번째 목화. 그다음 세 번째 광산물ㆍ금ㆍ은. 네 번째가 목재 수풍댐을 만들어서 거기에 가면 댐만 있는 게 아니고 종이 펄프공장이 있다고 그래요. 큰 게 목재 이런 식으로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게 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놈들이 지가 만들어내는 쌀이 국민의 반도 못 먹거든요. 그래서 쌀을 착취를 한 건데 그 착취의 대상이 바로 여긴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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