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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아리랑을 쓰게 된 작가의 말 - 4. 일본인 거주민들보다 2배나 많았던 친일파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리랑을 쓰게 된 작가의 말 - 4. 일본인 거주민들보다 2배나 많았던 친일파

건방진방랑자 2021. 2. 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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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인 거주민들보다 2배나 많았던 친일파

 

 

놀랍게도 왜놈들이 들어와 가지고 1910년에 합방을 하고 1912년부터 시작해서 8년에 걸쳐서 토지조사 사업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측량기술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 먹던 땅, 어느 나무에서 어느 나무까지가 우리 누구 것, 이 정도였죠. 그래 일본놈들이 들어와 가지고서 정확하게 측량을 한다고 해서 임자를 정확히 찾아주겠다이런 명분을 내걸고 토지조사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놈들이 홍보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신고하는, 신청하는 방법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실시를 해나갔어요.

 

 

▲ 땅을 찾아주겠다는 미명 하에 수탈을 위한 근거를 마련한 일본.

 

 

 

토지조사 사업은 빌미

 

그러다 보니까 결과가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걸 만들어서 농토를 관리하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땅 전체가 아니고 농토만, 논밭, 바로 우리 인간들의 생존에 직결되고 있는 먹이를 구하는 논밭 45%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가 되어버렸습니다. 다 빼앗겨 버린 거예요. 신고 안 했다고 뺏어 버리고, 뭐 했다고 뺏어 버리고, 이렇게 했으니 여기 농토가 제일 많은 땅의 제일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것입니다. 무식할수록 거의 땅을 다 뺏겨버리고. 그 땅이라고 하는 자작농 대체로 자작농 그러니까 5마지기 그것 가지고 있으면서 못 살겠으니까 소작, 자소작(自小作)이라고 하죠.

 

 

▲ 토지수탈의 중심체 동양척식주식회사.
▲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 동척은 중심지에 세워졌다.

 

 

그래 순소작이 있고, 자기 땅 한 2마지기 있으면서 소작도 하는 자소작이 있고, 자작이 있고, 지주가 있지요. 그래 이 자작농들의 땅이 거의 다 뺏기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인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여기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 일본놈들이 자꾸 밀려들어요. 안중근 의사한테 죽은 이등박문(伊藤博文, いとうひろぶみ)이란 놈이 식민지 계획을 세울 때 조선에 300만명을 이주시키면. 일본놈 300만명을 이주시키면 영구히 조선을 지배할 수 있다. 그때 우리 조선반도에 한반도에 인구가 대략 2,000만명 정도 됐을 겁니다.

 

 

▲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중근.

 

 

 

일본 정착민보다 많은 친일파와 식민통치 연장

 

결국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윱니다. 한국의 첫 번째 이유는 한국에 들어와서 일본놈들이 살 도리가 없어요. 얼마나 조선 농민들이 배척을 하는지 일꾼으로 가지도 않아요. 품앗이안돼요. 그런 식으로 해서 조선은 살 만한 땅이 아니다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일본놈들이 여기다 끌어다 놓고, 일본 사람 중에서 가장 하층민인 죄인이라든가 뭐 나쁜 짓 하는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끌어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가서 사는 땅에 조금 나은 계급이 오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해방이 될 때 저 신의주부터 시작해가지고 제주도까지, 일본놈들 조선 총독부부터 시작해서 젓갈장사까지 하는 놈 다 합하면 약 80만명쯤 됐습니다.

왜놈들이 그런데 놀랍게도 친일파가 얼마였는가? 그 두 배인 150만명이 친일파였습니다. 150만 더하기 80만이 이 땅을 식민지배했다고 봐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왜놈보다 2배가 많은 조선사람이 민족과 조국을 팔아먹었어요. 그래서 우리 식민지 지배가 10년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인데, 이것이 36년까지 갔습니다.

 

 

▲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한 인파.

 

 

10년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3.1운동 때 식민지 통치를 끝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친일파들의 농락에 의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잡아가는, 정보 제공해주고, 앞잽이 노릇을 하면서 독립군들이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고 만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 식민지 통치가 26, 27년을 더 연장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맥락 위에서 소설을 구성하게 되면서 김제가 무대가 되고, 우리 민족이 당한 것은 이 내부에서만 당한 것이 아니고 그 시절에 6, 7백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하와이로, 일본으로, 훗카이로, 사할린 그리고 연해주, 만주, 극동까지 전부 다 자발적으로 먹이를 찾아가거나 노무자로 끌려가거나 학병으로 끌려가거나 정신대(挺身隊)로 끌려간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도 작가가 한 번도 쓴 일이 없습니다.

 

 

▲ 3월 3일에 있을 고종의 장례식을 앞두고 기미독립운동인 3.1운동이 펼쳐졌다. 남대문에 모인 사람들.
▲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리는 칭경기념비에 모인 삼일운동 인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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