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가미 & 폴리가미
Monogamy & Polygamy
지금의 문명사회에서는 대부분 모노가미(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 관습이 제도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본능을 중시하는 생물학적 인간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폴리가미(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가 모노가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류 문명이 탄생할 무렵에는 세계적으로 폴리가미가 훨씬 더 많았으며, 현재까지도 폴리가미를 관습으로 취하고 있는 사회가 상당수 존재한다.
폴리가미의 한 형태인, 형제가 공동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인도의 어느 부족에는 형제가 동시에 한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있으며, 이슬람 율법은 한 남자가 아내를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역사 속에서는 그런 경우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의 흉노와 우리의 부여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변형된 일처다부제인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가 있었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근세까지도 모노가미보다 폴리가미가 더 흔했다. 조선시대에 서얼 차별로 자주 사회 문제화되었고 1960년대까지도 우리 사회에 존속했던 축첩 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의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지배한 중세부터 폴리가미를 법으로 금지했다.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재혼을 허용했지만 여기에도 제한은 있었다. 두 번째까지는 괜찮지만, 삼혼은 ‘점잖은 간통’이라고 해서 4년 동안 성찬식을 받지 못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당시 성찬식은 신의 은총을 정기적으로 받는 행사였으므로 무척 중요했다】. 만약 누가 분별없이 사혼까지 하려 한다면 간통보다 더 나쁜 일부다처의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해 ‘인간이 아닌 금수와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고 8년 동안 성찬식을 받지 못하는 벌이 부과되었다.
모노가미가 제도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모노가미의 관습은 그리스도교가 성립하기 전에도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로마 제국 초기의 황실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Gaius Octavius, BC 63~AD 14)는 아들을 낳지 못한 탓에 부하들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양자로 삼고 제위를 상속시켰다.
만약 로마가 중국식 제국(한반도의 왕조들도 포함된다)이었다면 제위 계승의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자의 혈통을 중시하는 중국의 경우에는 황제가 많은 후궁들을 거느렸으므로 설사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 해도 황실의 대가 끊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후궁들 중 한 명이 아들을 낳으면 얼마든지 제위 계승자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의 아들들이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인 적도 많았으나 그것은 부작용에 불과하다.
묘하게도 로마 황제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제국의 초기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들을 거의 낳지 못했다. 그러자 로마의 황실에서는 아예 양자상속제를 관습으로 삼았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불리는 기원후 2세기의 번영기 – 이 시기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연이어 등장해 ‘5현제 시대’라고도 한다 - 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제위 세습보다는 권력의 정통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5현제 시대가 끝나면서 로마 제국은 권력의 불안정이 노골화되었고, 이는 극심한 사회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워낙 황제가 암살되는 사건이 잦다 보니 기원후 235년부터 284년까지 약 50년 동안에는 황제의 수가 무려 26명에 달했다. 군인 출신의 황제가 많은 탓에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군인 황제 시대라고 부르지만, 명칭이 그럴싸할 뿐 실은 그만큼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권력구조의 불안을 초래한 인물이 하필 로마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황제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였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명상록(Meditations)』을 지은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한 그는 5현제 중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 제위를 상속시켰는데, 그 아들이 바로 유명한 폭군인 콤모두스(Commodus, 161~192)였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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