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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목적론(Teleology)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목적론(Teleology)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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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론

Teleology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모든 행위의 구성요소는 이 세 가지다. 즉 행위에는 주체, 방법, 목적이 있다. 추리소설이 발달해온 과정도 그 세 단계로 나뉜다. 초기 추리소설은 “Who done it?” 즉 범인이 누구냐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다음에는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How done it?”)로 중심이 옮겨갔고, 가장 높은 단계로 범죄의 목적(“why done it?”)을 중시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나 현상을 설명할 때 목적을 고려하면 상당히 그럴듯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자칫하면 목적론의 함정에 빠진다. 목적은 사건의 시간 순서로 보면 맨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간 과정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편하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목적에 비추어 설명할 경우 이론은 깔끔해지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목적은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목적과 원인을 혼동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훔쳐 팔다가 검거되었다고 하자. 이 사건에서 청년은 행위의 주체이고, 오토바이를 훔쳐 파는 것은 행위의 방법이며, 유흥비를 마련하는 것은 행위의 목적이다. 행위의 원인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는 흔히 목적을 원인으로 둔갑시킨다. 범죄의 원인과 목적을 동일시하면 그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을 세울 수 없다. 원인을 추측해보면 청년은 놀고는 싶은데 돈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범죄를 예방하려면 청년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과, 놀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책이 다 필요하다. 목적론에 빠지면 생산적인 해결책을 생각할 수 없다.

 

 

목적론은 목적을 뜻하는 그리스어 텔로스(telos)에서 나온 개념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목적론의 원조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운동의 네 가지 인자를 말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목적이다. 조각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네 인자로 설명하면, 대리석(질료인)을 깎아서(동력인) 조각상(형상인)을 만들어 아름다움(목적인)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토리가 참나무로 자라는 운동을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참나무가 도토리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도토리는 참나무로 자라니까 그 이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목적론의 오류다. 추론의 결과로 목적이 도출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나무가 도토리의 목적이자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AB의 원인이자 목적이라면 논증은 순환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논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은 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까지는 아직 유일신이 없었지만,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중세가 되면 목적론은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신을 논증하는 안성맞춤의 도구가 된다. 중세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명이 있는 사물은 내적 목적을 가지며, 생명이 없는 사물은 외적 목적을 가지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신을 향한다.”

 

신은 세계의 창조자이므로 세계의 원인이며, 동시에 세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결국 신은 모든 걸 설명하는 듯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자 목적인 듯하지만 아무 것의 원인도 목적도 아니다.

 

 

그러나 목적론은 중세 이후 철학이 독자적인 영역을 획득한 뒤에도 여전히 유용하게 쓰인다. 헤겔(Hegel, 1770~1831)절대정신의 외화가 세계이고, 역사란 절대정신이 자기실현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역사의 종착역은 다시 절대정신이다. 즉 역사의 원인과 목적이 같은 순환론의 구조다. 헤겔의 사상에서 절대정신은 특정한 종교의 외피를 두르지 않았을 뿐 중세 그리스도교의 신과 거의 같은 역할이다.

 

목적론의 매력은 이론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데 있지만 그 매력에 지나치게 빠졌다가는 돌고 도는 순환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칸트(Immanuel Kant,1724~1804)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목적론은 지식의 범위를 규제하는 원리일 뿐 지식을 구성하는 원리는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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