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Mimesis
예술가와 의사의 공통점은 뭘까?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일까? 기예(art)를 중시한다는 점일까? 그보다는 교육 방식이 닮은꼴이다. 전통적으로 예술 교육과 의학 교육은 개인 교습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음악과 미술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승의 집에 제자로 들어가 직접 1 대 1로 배우는 방식이었다. 의학 교육도 마찬가지였는데, 수련의를 뜻하는 인턴(intern)과 레지던트(resident)라는 말에 모두 ‘거주’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대 1 교육은 모방을 기본으로 한다. 제자는 스승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승의 솜씨를 모방한다. 무수한 모방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제자는 스승을 똑같이 흉내 내는 복제의 수준을 벗어나 점차 자기만의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 예술창작을 위한 모방을 미메시스라고 부른다.
미메시스는 창의성의 어머니다. 대가의 테크닉을 모방하는 단계가 없으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기본적인 현의 운지법(雲脂法)조차 모르는데 바흐(Bach)의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을 창의적으로 해석해 연주할 수는 없으며, 색 혼합의 초보적인 효과도 알지 못하고서 전람회에 내걸 만한 유화를 그릴 수는 없다.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메시스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본이 있다면 원본도 있을 것이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미메시스의 원본이 자연이라고 보았다. 예술의 미메시스는 곧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본을 능가하는 사본은 없듯이 예술은 자연을 완벽하게 복제하지 못한다. 그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플라톤은 자연과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이데아의 사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나무에는 참나무, 물푸레나무, 상수리나무 등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모두 나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소설, 만화, 교과서, 참고서를 뭉뚱그려 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데는 뭔가 책의 본질 같은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플라톤은 그것이 바로 이데아라고 여겼다. 나무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개별 나무들이 존재하며, 책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있기에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행동, 아름다운 여인 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이고 이데아의 세계만이 참된 실재의 세계이자 진리의 세계다. 완벽한 이데아의 조잡한 모방이 바로 자연과 현실의 세계다. 그렇다면 그 자연을 예술적으로 모방한 미메시스는 더욱 조잡할 터다. 그런 이유에서 플라톤은 예술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했다.
플라톤이 주장한 이상국가에서 교육의 주안점은 음악과 체육이다. 그러나 음악은 잘 통제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절제의 덕을 일깨워주는 것이라야 한다. 자칫하면 음악은 향락과 타락을 부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검열을 거쳐야 한다. 심지어 플라톤은 음조가 복잡한 것도 안 되고 화음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연은 이데아의 미메시스이고 예술은 자연의 미메시스다. 플라톤은 복제를 거듭할수록 사본의 질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미메시스가 그럴듯한 모방조차 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 파일은 아무리 복제해도 사본의 질이 원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메시스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의성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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