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
Owl of Minerva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도 서양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손꼽히니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면 탁월한 지혜를 뜻할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은 자신의 사상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할 만큼 자신감으로 넘쳤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철학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가리켜 헤겔은 마치 선문답처럼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법철학』”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은 고독하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혹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헤겔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지혜가 없는 보통 사람은 늘 현재의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지나간 뒤에야 “아하, 그랬구나”하고 알아차린다. 헤겔의 말은 그런 태도를 풍자한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는 태도다.
사실 헤겔의 태도는 고독에 시달린다기보다는 느긋하게 오만을 떠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헤겔은 자신의 사상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봉황의 뜻(부엉이의 뜻?)이 대체 무엇이기에 헤겔은 그토록 자신감에 넘쳤을까?
헤겔은 칸트(Immanuel Kant,1724~1804)가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을 불만으로 여겼다. 칸트는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구성한다고 봄으로써 이성적 주체의 능력을 끌어 올렸지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거기서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헤겔은 그가 한 걸음 더 앞으로 전진했다면 자신이 주장하는 절대정신을 발견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칸트는 인식의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했다는 데 만족하고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본체의 세계, 즉 예지계에 관해서는 인식을 포기했다. 그러나 절대적 이성을 가진 절대정신이라면 인식이 불가능한 영역은 없다. 그 점을 칸트의 시대만이 아니라 자기 시대의 학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언급한 것이다.
항아리 안에서 항아리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도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본질을 알기는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헤겔 역시 봉황은 되지 못했다. 헤겔은 자신이 철학을 완성했다고 자부하고 철학의 종말을 엄숙히 선언했으나 바로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은 일제히 헤겔의 사상을 비판했으며 그의 철학적 무덤 위에서 새로운 철학을 출범시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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