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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Ⅴ. 대대(待對)와 무대(無對) - 1. 동일성의 논리와 대대(待對)의 논리, 동일률을 추구하는 서양철학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Ⅴ. 대대(待對)와 무대(無對) - 1. 동일성의 논리와 대대(待對)의 논리, 동일률을 추구하는 서양철학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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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일률을 추구하는 서양철학

 

 

서양 철학의 이런 고유성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다툼과 논쟁을 근본으로 삼는 그리스 철학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그들의 논쟁, 혹은 동일성이 무엇이냐는 논쟁은 보편적인 것에 의한 근거 제시, 곧 정당화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이들의 동일성을 모색하는 논쟁은 보편자에 대한 탐색, 그리고 탐색된 보편자에 의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삼단논법의 경우를 살펴보자.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도 인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도 죽는다.’ 이 경우 우리는 이 삼단논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주장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보아야 삼단논법이 지닌 핵심적 문제틀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주장일 것이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사람은 앞의 두 명제들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렇게 발견된 두 명제들을 전제로 삼아서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는 삼단논법 구성의 동기가 주어진 문제의 결론에 대하여 그것을 증명해 줄 전제들을 찾는 데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삼단논법은 법정의 논리에 가까운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검사라고 해보자.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우리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사람을 고의로 죽이는 경우는 사형에 처한다등의 법, 조문들을 통해서 살인범을 찾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 사람을 살인범으로 증명해서 사형을 구형하기 위해서 증거들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증거들을 법조문에 기록된 일반원리들과 결합시켜서, 그 용의자가 살인범이고 따라서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검사로서 우리가 발견하는 증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알리바이다. 다시 말해 용의자가 범죄 현장에 있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검사로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진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용의자가 범죄 현장에 있었기도 하고 없었기도 하다라는 식의 진술이다. 범죄 현장에 있었다면 범죄 현장에 없을 수 없고, 만약 범죄 현장에 없었다면 범죄 현장에 있을 수 없다. 여기에 바로 모순율이라는 것이 작동한다. 결국 용의자의 정체(= 동일성)를 밝히기 위해서 검사로서 우리는 모순율이라는 원리를 지켜야만 한다.

 

따라서 동일성을 추구하는 서양 철학의 탐구 형식은 모순율로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모순율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이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라는 진술을 피해야 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이 꽃은 붉고 동시에 붉지 않다는 주장은 모순율을 어긴 주장이 된다. 그러나 왜 이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될까? 예를 들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해라는 모순된 문장을 흔히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장을 통해서 그 사람이 지금 나와 애매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경우에 빠질 때 서양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정체(= 동일성)를 밝히려고 한다. “그 사람은 사랑하면서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순율에 어긋나는 주장이기 때문이야. 분명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어느 것이 옳을까?” 우리는 여기서 서양 철학이 지닌 거친 이분법적 속성과 이로부터 기인하는 폭력성을 짐작하게 된다. 사랑이 싹틀까 말까 하는 애매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거야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고 질문하게 되면, 아마도 이 사람은 사랑하려던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서양 철학에서 모순된 주장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서양 철학에서 이 꽃은 붉고 동시에 붉지 않다는 명제는, 이 꽃의 정체(= 동일성)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것도 알려주지 않는 명제일 뿐이다. 결국 서양 철학은 변화를 포착하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붉은 꽃은 언젠가 붉기도 하고 붉지 않기도 한 상태를 거쳐서 시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워하던 사람이 언젠가 사랑스럽게 된다거나 혹은 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서양 철학은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서양 철학이 어느 시점을 마치 사진처럼 고착화시켜서 사유한다고, 따라서 공간화된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어제 본 붉은 꽃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을 경우, 그런데 그 꽃은 이미 시들고 있는 경우, 그 사람은 결코 그 꽃을 가지고 올 수 없을 것이다. 그 붉은 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제 마음 속에 사진처럼 가지고 있는 기억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이처럼 서양 철학이 동일성(= 또는 정체성)을 추구할 때 최종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바로 모순율이었다. 다시 말해 모순을 피하겠다는 이런 의지는 동일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에 다름아닌 것이다. 서양 철학에서 이 꽃은 붉다는 문장은 붉지 않음을 배제한 다음에야 출현할 수 있는 명제다. 정확히 말해 이 꽃은 붉다는 문장은 이 꽃은 붉지 않은 것이 아니다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서양의 동일성에로의 추구는 차이타자적인 것을 배제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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