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꿈과 깨어남
안연이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소리내어 울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슬퍼하지 않았고, 장례를 집행할 때도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 가지를 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나라 전역에 걸쳐 가장 애도를 잘한 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내용이 없는 데도 그런 이름을 얻는 경우가 실재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정말로 그것이 이상합니다.”
顔回問仲尼曰: “孟孫才, 其母死, 哭泣無涕, 中心不戚, 居喪不哀. 無是三者, 以善處喪蓋魯國, 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 回壹怪之.”
공자가 말했다. “그 맹손재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상례에 대한 앎[知]을 넘어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비록 상례를 간소히 치르려 하다가 뜻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간소히 한 바가 있었다. 맹손은 삶과 죽음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생동하는 현재가 아닌) 관념적으로 기억된 과거의식[先]과 관념적으로 예기된 미래의식[後]을 알지 못했다. 변화를 따라서 그 변화에 맞추어 개별자가 되어서 그가 알 수 없는 변화에 의존할 뿐이다. 게다가 변화할 때 어떻게 그가 그것과 대립하는 변화되지 않음을 사유하겠는가? 변하지 않을 때 어떻게 그가 변화를 사유하겠는가? 단지 너와 나만이 꿈으로부터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仲尼曰: “夫孟孫氏盡之矣, 進於知矣, 唯簡之而不得, 夫已有所簡矣. 孟孫氏不知所以生, 不知所以死. 不知就先, 不知就後. 若化爲物,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 且方將化, 惡知不化哉? 方將不化, 惡知已化哉? 吾特與汝, 其夢未始覺者邪!
게다가 그는 몸을 놀라게 했지만 마음을 해치지는 않았고, 마음을 새롭게 해서 자신의 삶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소리내어 울 때 그도 또한 소리내어 울었다. 이것은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서로 각자 나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우리 자신이 나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나가 아님을 알겠는가? 너는 너 자신이 새이고 그래서 하늘을 날고 있다고 꿈꾸고 있고, 너 자신이 물고기이고 그래서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꿈꾸고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다.”
且彼有駭形而無損心, 有旦宅而無情死. 孟孫氏特覺, 人哭亦哭, 是自其所以乃. 且也相與 ‘吾之’ 耳矣, 庸詎知吾所謂 ‘吾之’ 乎? 且汝夢爲鳥而厲乎天, 夢爲魚而沒於淵. 不識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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