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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1. 공자 사상의 의의, 서(恕)란 폭력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1. 공자 사상의 의의, 서(恕)란 폭력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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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란 폭력

 

 

공자가 의미가 있는 지점은 그가 바로 내면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공자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공자 철학의 정수는 서()라는 한 글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는 서를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을 타자에게 하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거나 자신이 서고자 하면 타자를 세워 주어라[己欲立而立人]’고 정의한다. 결국 서의 원리에는 타자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자신을 대상화해서 반성한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서라는 윤리적 원리의 이면에는 더 큰 공자의 문제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공자는 이런 서라는 원리는 제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는 관계에 대한 의지를 함축하고 나아가 이 의지는 타자와의 충돌을 전제로 해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공자는 타자와의 갈등이나 다툼[]의 상황 속에서 이것을 해소하고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서의 원칙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의 원리가 타자와 올바른 관계 맺음의 원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것은 나와 타자가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와 타자가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의 욕망을 통해 매개된 실천 원리로서의 서는 오히려 타자와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음악을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타자가 음악을 듣고 싶어한다면? 혹은 나는 아침에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을 아침에 깨워서 산에 오르도록 한다. 그러나 만약 내 아들이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한다면? 여기에 바로 서의 이율배반(antinomy)이 존재한다.

 

타자가 나와 동일한 욕망 구조를 갖고 있는 경우에만 서는 갈등을 해소하는 관계 맺음의 원리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자가 나와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갖고 있다면 애초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갈등이 생겨야만 서라는 실천 원칙을 사용할 수 있는데, 갈등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나와 타자가 상이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나와 동일한 욕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한 타자일 수 있을까? 타자는 오히려 나와 상이한 욕망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타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공자의 서의 원리는 타자에 대한 관계 맺음의 원리인 듯이 보이지만, 이 원리에서 사실 진정한 타자는 빠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서의 원리는 단지 동일한 욕망 구조를 공유한 특수한 공동체 내에서만 적용 가능한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날씨가 춥다고 애완견에게 옷을 입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분명 공자의 서의 원리를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그 개는 정말 타자일 수 있는가? 오히려 이 경우 애완견에게 적용된 서의 원리는 이 말 못하는 개에게 가해진 폭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 개는 자신의 복슬복슬한 털만으로도 충분히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경우를 기준으로 개에게 갑갑한 옷을 사 입히고 예쁘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공자의 서가 애초의 그의 의도와는 달리 타자와의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타자와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나아가 자신과 관계 맺어야만 하는 타자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장자가 자신의 사유를 시작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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