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자 사상의 의의
1. 공자를 심각하게 생각한 장자
보통 장자는 노자와 함께 도가(道家)의 중심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도가 사상이나 그 사유방법을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관례는 한대(漢代)에 들어오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한대 이전의 선진(先秦) 사상계에서는 노자와 장자는 결코 노장으로 병칭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장자』 제일 마지막 33번째 편인 「천하(天下)」편을 살펴보아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천하(天下)」 편에서 노자와 장자는 상이한 전통을 계승한 학자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에서 노자는 보통 노담(老聃)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내편」과 「외ㆍ잡편」이 각각 이 노담이라는 인물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외ㆍ잡편」에서 인용되는 노담은 분명 『노자』에 나오는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고 동시에 공자도 가르치고 있는 권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반면 「내편」에 등장하는 노담은 『노자』의 사상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노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우화는 「내편」에 나오는 「양생주(養生主)」편에 등장한다. 이 우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노담(=노자)이 죽었을 때 조문객이 끊이지 않자, 그를 조문했던 진일(秦失)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노자를 평가한다. “노담을 처음에는 지인(至人)으로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구나[始也吾以爲至人也, 而今非也].”
그렇다면 「내편」에서 등장하는 최고의 권위자는 노자가 아니라면 누구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공자다. 「우언(寓言)」편과 「천하(天下)」편을 보면 장자의 후학들은 장자의 문체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우언(寓言)인데, 이것에는 허구적 인물들이나 사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구성한 재미있는 우화적 이야기들이 속한다. 둘째는 중언(重言)인데, 이것에는 당시 사람들이 권위자로 인정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만든 이야기들이 속한다. 마지막 셋째는 치언(巵言)인데, 이것에는 대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혹은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속한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외ㆍ잡편」에서의 중언의 대상이 노자였다면 「내편」에서 중언의 대상은 공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노장이라고 병칭되는 장자와는 다른 장자, 공자라는 인물을 권위자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장자를 확인하게 된다. 공자와 장자! 우리는 여기서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유가와 도가는 사마천의 말대로 차가운 얼음과 활활 타오르는 석탄의 관계처럼 양립할 수 없는 상이한 사유체계라고 생각되어 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장자는 공자를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이 살던 시대에 공자의 권위가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장자와 동시대 사람인 맹자(孟子)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는 공자는커녕 유학사상도 죽은 개 취급을 받던 시대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자가 공자를 심각하게 고려한 이유는 당시의 지적인 유행에 편승한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가 공자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이유는 그가 공자 사상에서 철학적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 철학을 시작한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들고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을 통해서 반성적인 성찰의 작업을 열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는 독단적인 맹신에 불과한 것이다. 공자가 중국 철학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가 소크라테스와 비견되는 반성적 성찰의 작업을 중국 철학에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는 공자의 철학에서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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