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매개적 소통의 철학적 함축
1. 노자철학과 장자철학의 차이
노자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구분되어야만 한다. 두 철학은 표면적으로 무척 유사하다. 그래서 장자 후학들도 『장자』를 편집할 때 노자의 철학을 자신들의 스승의 철학과 뒤죽박죽 섞고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무사유와 무반성이 아직도 우리 학계에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에서 들뢰즈는 철학을 크게 두 종류의 이미지로 분류한 바 있다. 그것은 나무(tree) 이미지와 뿌리줄기(근경, 根莖, rhizome) 이미지다. 나무가 땅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서서 무성한 가지와 잎들을 지탱한다면, 뿌리줄기는 땅 속에서 부단히 증식하면서 다른 뿌리줄기와 연결되기도 하고 분리되어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전자의 이미지가 중심과 토대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위계적인 전통 철학을 상징한다면, 후자의 이미지는 바로 타자와의 조우를 통해서 부단히 자신을 변형시키는 새로운 철학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나무 이미지의 철학이 중심이 있는 체계(centered system)를 가지고 있다면, 뿌리줄기 이미지의 철학은 중심이 없는 체계(acentered system)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조적인 들뢰즈의 두 이미지를 빌리자면 노자와 장자는 각각 전혀 다른 철학의 이미지에 기초해 있다고, 즉 노자의 철학이 나무 이미지에 기초해 있다면, 장자의 철학은 뿌리줄기 이미지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자』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훌륭한 주석을 붙인 왕필(王弼)도 노자의 철학에서 나무 이미지를 보았다. 그것이 그의 유명한 본말(本末)에 입각한 노자 해석이다. 여기서 본말은 글자 그대로 뿌리와 가지를 의미한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이상(形而上)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지는 감각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형이하(形而下)의 영역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또한 뿌리가 통일된 일자(一者)를 상징한다면, 가지는 다양하게 분기된 다자(多者)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왕필의 해석에 따르면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노자』의 구절, 즉 ‘도를 도라고 하면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는 구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영원한 도가 뿌리를 의미한다면, 도라고 말한 도는 가지들에 해당하니 말이다. 물론 가지들이 끝내는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지들도 분명 뿌리의 한 부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뿌리는 감각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일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뿌리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단지 구별되는 다자들의 세계, 즉 가지들에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 이미지에 근거한 『노자』의 철학이 함축하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가지와 가지 사이의 소통은 결코 직접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데 있다. 그것은 단지 뿌리를 매개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가지와 가지는 소통할 필요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의 뿌리에 그 두 가지들이 동시에 기초해 있기에 이미 소통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장자의 철학은 뿌리줄기 이미지에 기초해 있다. 「제물론(齊物論)」 편에 나오는 ‘도는 걸어다녔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道行之而成]’라는 구절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애초에 길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주체가 타자와 조우해서 그와 소통함으로써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도라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런 장자의 사유는 들뢰즈가 말한 뿌리줄기 이미지라는 것과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무 자체도 원래 처음부터 자신이 있던 곳에서 그렇게 영원히 자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많은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데, 어느 씨앗은 허무하게 강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느 씨앗은 허무하게 아스팔트 위에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 아름드리나무로 자란 그 나무를 가능하게 했던 씨앗은 우발적으로 바로 그 땅,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뿌리를 내릴 수 있기에 충분한 바로 그 땅에 도착했던 씨앗일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씨앗은 날개 없이 날아서 그 땅에 도착했던 것이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노자의 철학에서 영원한 도가 존재하는 데 비해, 장자의 철학에서 노자식의 도란 애초에 존재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주체와 타자 사이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것이라는 장자의 주장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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