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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노자도덕경』이라고 하는 책 - 6. 16살에 노자를 주해한 왕필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노자도덕경』이라고 하는 책 - 6. 16살에 노자를 주해한 왕필

건방진방랑자 2021. 5.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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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6살에 노자를 주해한 왕필

 

 

그럼 오늘 우리가 보는 노자(老子)금본(今本)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것이 바로 왕필(王弼, 왕 삐)이라고 하는 천재적 사상가가 주석을 단 판본을 말하며 보통 왕본(王本)’이라고 지칭한다. 왕필(王弼, 왕 삐)이라는 사람은 A.D. 226년에 낳아서 A.D. 249년에 죽은 위()나라의 천재적 사상가였다.

 

그런데 여기 연대를 한번 잘 계산해 보라! 몇 살에 죽었는가? 23살에 죽었다. 23? 모차르트는 몇 살에 죽었는가? 그래도 모차르트는 결혼도 했고 35살까지 살다 죽었다. 그럼 23살에 죽은 청년이 언제 무슨 사상을 구축할 수 있었던 말인가? 왕필이 노자(老子)를 주석한 것은 16살의 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요즈음 나이로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소년이다. 그러나 이 소년 왕필의 노자(老子)주석은 거의 중국 전 역사를 통털어 가장 탁월하고 가장 심오하고 가장 널리 읽히는 주석으로 꼽히고 있다.

 

왕필이 활약한 시대는 삼국지(三國誌)의 조조(曹操), 유현덕(劉玄德) 같은 사람들이 활약하던 시대와 비슷하다. 왕필이 태어난 다음 해 3월에 제갈량(諸葛亮)이 그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를 올리고 를 쳤으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ㆍ고구려ㆍ백제가 흥기하면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던 삼국초기(三國初期)에 해당되는 시기다.

 

모차르트와 같이 10대에 이미 탁월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요즈음 우리나라의 음악천재들을 보아도 이해가 갈 수 있다. 그리고 10대에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배출된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10대에 인생에 대해 쓴맛 단맛을 다 겪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모든 통찰을 거쳐야 나올 수 있는 심오한 철리(哲理)의 대가(大家)가 된다는 것, 그것도 당대(當代)의 인간들에게도 쉽게 접근이 될 수 없었던 난해(難解)한 문헌이었던 고경(古經)의 대가가 된다는 것, 그것도 보통 대가(大家)의 수준이 아니라 그 수천억의 인구가 살고 죽고 했던 중국땅덩어리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된다는 것, 그것도 10대에,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상식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 UFO를 좋아하는 사람들, 에집트의 피라밋을 놓고, 나즈카의 지오글립스를 놓고 스페이스 커넥션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뭔가 고대적(古代史)의 신비가 인간적 상식에 의해 풀리는 것을 공포스러워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희한한 가설에 인류가 호기심을 기울여 주는 것을 자기들의 종교로 삼는다. 그러나 왕필은 조금도 그러한 신비의 인물이 아니다.

 

 나스카 라인(Nasca Lines)

 

 

왕필을 보면 인간의 가능성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왕필의 성장과정은 정확하게 추정 가능하며, 그는 당대의 최고의 라이브러리(library)였던 채옹(蔡邕)의 만권지서(萬卷之書)’를 물려받은 서향지가(書香之家)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당대의 석학들과 고담청론(高談淸論)을 일삼았다. 무엇보다도 왕필이라는 존재를 가능케 했던 것은 삼국시대(三國時代)라고 하는 변혁기ㆍ혼돈기의 창조적 자유의 분위기였다. 나이를 불문하고 실력자를 실력자로서 대접하는 비권위주의적 분방함이 확보되지 않은 시대였더라면 왕필은 태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 어느 권문세가 이 사회의 리더들이 열살짜리 석학을 모셔다 그의 강론을 듣고 심복(心服)을 할 것인가? 그의 시대는 곧 완적(阮籍)ㆍ혜강(嵇康)과 같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기괴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행동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로맨스의 시대였고, 그러한 로맨스는 지교(智巧)에 찬 속진(俗鹿)을 부정하고 자연(自然)의 순박(純朴)을 영탄하는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와 같은 시경(詩境)으로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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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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