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 결론과 더 읽을 것들
1. 장자철학의 고유성
1. 대화와 소통이란 주제를 담은 『장자』
장자의 철학은 어떤 통일된 공동체라는 토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의 철학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정치적 상황과 제자백가(諸子百家)로 상징되는 사상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해 대화와 소통의 결여라는 상황 속에서 그의 철학은 탄생했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일방적인 무력 사용과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독단적 학설 묵수는 당시가 대화와 소통에의 의지가 결여되었던 시대임을 증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무력의 사용은 상대 국가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고, 독단적인 학설의 묵수는 상대 학파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당시는 표면적으로 다양한 국가들과 다양한 사상들이 유행했던 시대인 듯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유아론자들만이 존속했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이런 유아론자들을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비유한다. 왜냐하면 꿈속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대화인 듯이 보이지만 결국 유아론적 독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장자는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진정으로 타자와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이런 유아론적 꿈으로부터 깨어나야만[覺] 한다. 문제는 꿈과 깨어남이 주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임해도 주체의 행동은 항상 꿈에 사로잡힌 행동에 불과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꾸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깨어 있는 것이냐’의 문제는 주체로부터는 결정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꿈과 깨어남을 결정하는 기준은 주체라기보다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자에게는 꿈이 ‘주체가 스스로에게 닫혀 있음’을 의미한다면, 깨어남은 ‘주체가 타자에게로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장자철학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철학체계 속에서 타자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깨어나는 것만으로 대화와 소통이 완수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단지 이 상태는 주체가 자신의 유아론적 자기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에게 깨어남은 타자와 대화하기 또는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어남은 주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뿐, 결코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소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비록 깨어난 주체가 소통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소통은 항상 좌절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통은 소통의 양 항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와 타자에 의해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장자의 철학이 아직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그가 통찰해낸 타자에 대한 이런 현실적 감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철학은 철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이란 주제에 대한 사색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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