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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3. 작품의 평가 문제⑦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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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3. 작품의 평가 문제⑦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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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태조(太祖)때부터 문치(文治)를 숭상하였으므로 이후 100여년 동안 문풍(文風)이 크게 떨쳤으며 많은 문사(文士)들이 배출되었다. 성현(成俔)은 그 태평한 시대에 용재총화(傭齋叢話)를 썼다. 그의 쉽고도 아름다운 문장(文章)으로 진기(珍奇)한 풍물도(風物圖)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역대의 문장(文章)을 논함에 있어서는 그의 필하(筆下)에 완전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삼엄(森嚴)했다. 사자(四字)로 된 평어(評語)를 사용하여 포()와 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높은 조감(藻鑑)은 후대(後代)신흠(申欽)허균(許筠)과 더불어 조선시대 실제비평의 선구가 되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성현(成俔) 이후의 비평 양상도, ()의 본질이나 시작법(詩作法)의 기술과 같은 것은 감쇄되고 있으며 실제비평이 대부분이다. ‘시자음영성정(詩者吟詠性情)’이나 시발어성정(詩發於性情)’과 같은 것이 시문집(詩文集)의 서문에서 자주 애용되고 있었으나 이것은 재도적(載道的)인 시관(詩觀)이 제조한 상투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비평의 양상이 이와 같이 흐르게 된 사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경술(經術)이 곧 문장(文章)’으로 생각하는 효용론적인 문학관[經術文章一道觀]이 지배하던 시대에 있어서 시문(詩文)의 본질이나 기능 따위를 논하는 것은 스스로 도학(道學)과의 상호충돌을 가져올 뿐이며 둘째, 한시(漢詩)를 이미 우리 것으로 수용한 이후의 문학비평에서 개별작품이 비평의 대상으로 중요시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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