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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3. 작품의 평가 문제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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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3. 작품의 평가 문제⑩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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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평성세를 구가하던 숙종대(肅宗代)의 번영은 정치내부에서 불붙기 시작한 당론(黨論)의 가열로 말미암아 사림(士林)은 빛을 잃고 소단(騷壇)은 다시 산림(山林) 속으로 자복(雌伏)하여 명맥만 유지해 왔다. 때문에 시문(詩文)에 대한 논설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한문학의 전통이 사실상 끝장날 무렵에 김택영(金澤榮)소호당집(韶護堂集)8이란 잡언(雜言)을 남겨준 것이 고전비평의 마지막 문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기본적으로는 잡록(雜錄)이며, 문학을 논한 부분에 있어서도 문론(文論)이 시론(詩論)보다 양적으로 우세하다. 뒤늦게 나온 조긍섭(曹兢燮)김택영(金澤榮)과 주고 받은 암서집(巖西集)에서 나온 여김창강(與金滄江)란 왕복서(往復書)도 도학자(道學者)의 문장론(文章論)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김택영(金澤榮)과 조긍섭(曹兢燮)이 주고 받은 왕복서(往復書)의 내용은 문인과 학자 사이에 상존(尙存)하는 문장론(文章論)의 거리를 재확인케 하는 자료로서도 일단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지원(朴趾源)의 문장(文章)을 그토록 높은 수준에까지 끌어 올린 것은 김택영(金澤榮)이지만, 학문으로 발신(發身)한 조긍섭(曹兢燮)의 체질은 박지원(朴趾源)의 문장(文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열하일기(熱河日記)와 같은 박지원(朴趾源)의 발랄한 문장(文章)이 조긍섭(曹兢燮)의 삼엄(森嚴)한 안광(眼光)에는 김성탄(金聖嘆)수호지(水湖志)와 같은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다만, 신운(神韻)을 좋아한 김택영(金澤榮)의 취향이나, ()의 공졸(工拙)을 성조(聲調)로써 판가름하려 한 김택영(金澤榮)의 시학(詩學)을 알게 해주는 것은 이 잡언(雜言)이 한 일임에 틀림없다.

 

김윤식(金允植)이 편지글 형식으로 보여준 운양속집(雲養續集)답인논청구문장원류(答人論靑丘文章源流)김택영(金澤榮)의 잡언(雜言)과 더불어 문장(文章)의 소유래(所由來)를 가르쳐 준 글로서는 값진 것이다. 그러나 김윤식(金允植)의 장처(長處)가 문장(文章)에 있었기 때문에 시()를 논한 문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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