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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金道鉉, 1852 철종3~1914, 자 明玉, 호 碧棲)은 영양(英陽) 출신의 유사(儒士)다. 병신년(丙申年)에 거의하여 여러 번 패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을사(乙巳)ㆍ경술(庚戌) 간에도 거의(擧義)하려 했으나 90 노친이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나중에 부상(父喪)을 지내고 동해(東海)에 나아가 투신자살했다. 역시 임절시 1수가 전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이 그의 「임절시(臨絶詩)」다.
我生五百末 赤血滿腔腸 | 조선왕조 마지막에 세상에 나왔더니 붉은 피 끓어 올라 가슴에 차는구나. |
中間十九歲 鬚髮老秋霜 | 그 사이 십구년을 헤매다 보니 머리털 희어져 서릿발이 되었구나. |
國亡淚末己 親沒痛更張 | 나라 잃고 흘린 눈물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마저 가시는 슬픈 마음 더욱 넓다. |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 홀로 고향산에 우뚝이 서서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가이 없다. |
欲觀萬里海 七日當復陽 | 저 멀리 바닷길 보고파 했더니 칠일 만에 햇살이 돋아서 오네. |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 천 길 만 길 저 물 속에 뛰어들며는 내 한 몸 파묻기 꼭 알맞겠구나. 『민족운동사』(한국문화사대계 I), p.626. |
병신년에 거사를 해보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을사ㆍ경술 간에 죽으려고 하였지만 그것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백발을 맞이하도록 살아남은 자신의 처신을 생각할 때 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바닷 속에 몸을 던진 시골 유생의 가엾은 충절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물론 경술국치 이후에 씌어진 것이기는 하나 작자가 거의한 것이 초기에 속하므로 이 속에 같이 넣기로 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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