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상하는 그림에 쓴 제화시
제감설도(題賞雪圖)
서거정(徐居正)
江雲昏似漆 朔雪白於屑
강운혼사칠 삭설백어설
山河與大地 一夜瓊瑤窟
산하여대지 일야경요굴
幽人開竹扉 眼界迷空闊
유인개죽비 안계미공활
孤舟蓑笠翁 欸乃聲欲裂
고주사립옹 애내성욕렬 『四佳詩集』 卷之三十○第十八
해석
江雲昏似漆 朔雪白於屑 | 강 구름은 칠흑처럼 어둡고 북방의 눈은 가루보다 희네. |
山河與大地 一夜瓊瑤窟 | 산하와 대지는 하룻밤에 경요굴【경요굴(瓊瑤窟) : 신선의 세계에 있다는 아름다운 구슬로 된 굴로 눈의 비유로 쓰인다】이 되었네. |
幽人開竹扉 眼界迷空闊 | 은둔한 사람이 대나무 사립문을 여니 시야가 확 트여 혼미하네. |
孤舟蓑笠翁 欸乃聲欲裂 | 외로운 배에 도롱이와 삿갓 쓴 노인은 뱃노래【애내(欸乃): 애내가(款乃歌)의 준말로 뱃노래를 말한다.】 소리에 화폭이 찢어지려 하네. 『四佳詩集』 卷之三十○第十八 |
해설
이 시는 눈이 내린 경치를 감상하는 그림에 붙인 제화시(題畵詩)로, 서거정은 400여 수에 이르는 많은 제화시를 지었다.
1연은 어두운 하늘에서 가루보다 흰 눈이 내리는 광경을 시각적(視覺的)으로 묘사하고 있고,
2연에서는 신선이 사는 경요굴처럼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은자(隱者)가 대나무로 된 사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눈 덮인 산하가 눈앞에 펼쳐지고,
4연에서는 도롱이와 삿갓을 쓴 어부가 배위에서 부르는 뱃노래가 화폭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다는 청각적(聽覺的) 이미지로 끝을 맺고 있다.
4연에서는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에서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의 구를 그대로 인용하고, 「어옹(漁翁)」에서 ‘애내일성산수록(欸乃一聲山水綠)’을 약간 변형시키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23번에서 “점화가 저절로 묘하여 진실로 환골법을 터득했다[點化自妙 眞得換骨法].”라고 하여, 점화(點化, 앞 사람이 만든 詩文을 고쳐 新機軸을 내놓음)라고 칭한 환골법(換骨法, 옛사람의 詩文을 바탕으로 삼아 뜻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말로 시를 짓는 방법)을 용인(容認)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61~6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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