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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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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는 이미 피와 살로 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소리나 빛이나 광선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나니. 그대는 죽을 수 없다.

-티벳 사자의 서중에서

 

 

살아남은 요원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 시온을 지키기 위해 모피어스를 포기하기로 한다. 시온은 모피어스나 트리니티나 보다 중요하니까.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판단하며 탱크를 말리지 못하는 트리니티. 탱크는 모피어스를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코드를 뽑으려 한다. “당신은 리더 그 이상이었죠. 우리의 아버지였어요. 잊지 않을게요.” 자신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예언.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괴로워하던 네오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신 없던 네오가 처음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잠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로 직접 들어가서 모피어스를 구해오겠다고 말한다. 놀란 트리니티는 네오를 설득한다. “모피어스는 널 위해서 잡힌 거야. 절대로 가면 안 돼.”

 

 

 

 

네오는 모피어스가 자신을 잘못알고 그렇게 한 거라고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가 아니라고. 미안해,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니깐 내가 아니라 모피어스를 구해야 해. 네오는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아니라 모피어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말을 조용히 삼킨다. 모피어스를 철통같이 지키는 스미스 일당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이건 자살 행위라며 네오를 만류하는 탱크. 그런데 네오는 눈빛에서 전에 없던 단단한 광채가 서리기 시작한다.

 

미친 짓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어. 이제야 모피어스가 왜 목숨까지 바치면서 믿었는지 알겠어. 그래서 가야만 해.” 그는 모피어스가 왜 그토록 를 찾고 싶어 했는지, 모피어스가 왜 일생을 걸고 매트릭스에 그토록 힘겹게 저항해왔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얼굴이다. 왜 가야만 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그는 말한다. “나도 이제 믿으니까. 그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각기 조금씩 엇갈리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일 거라 믿고 있고, 트리니티는 모피어스의 리더십과 오라클의 예언을 믿고 있으며, 네오는 자신이 가 아니지만 모피어스를 꼭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은 아직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 세 사람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믿음의 영역이다. 세 사람의 믿음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어디론가 이끌리는, 바로 그런 불가해한 믿음. 이것을 엘리아데는 아직 문명인에게 실낱처럼 남아 있는 종교성이라고 설명했다.

 

 

무의식의 활동에 대한 매혹의 느낌이나 신화와 상징에 대한 관심, 이방과 원시, 고대를 향한 열광,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상반된 감정을 동반하는 타자와의 만남,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성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0.

 

 

엘리아데가 말하는 종교성은 신앙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무신론자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그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종교성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일 수도 있고, 지금 여기의 이 삶 너머에 뭔가 커다랗고 신비한 무언가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느낌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의 힘이 깃든 것이라고 느끼는 숭고함의 감정이 일 수도 있다. 그릴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남모르게 그리워하는 그 무엇을 향한 마음의 화살표. 그것이 엘리아데가 말한 넓은 의미의 종교성이 아닐까.

 

자신의 논리와 네오의 믿음이 일치하지 않지만, 이제 트리니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네오를 믿기 시작한다. “너와 같이 갈 거야. 정말 그를 살리고 싶다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걸.” 이제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그들은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믿음의 불빛으로 움직이기에. 아무도 이토록 위험한 작전을 시도한 적이 없다며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네오는 말한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공할 거라고.

 

이상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평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도 비범해 보인다.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이 세 사람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조금씩 어긋나며 삐걱거리던 믿음이 완전히 일체가 될 때, 그 순간 네오는 진정한 로 거듭날 것이다.

 

 

정신분석처럼 특별히 근대적인 기술도 역시 입사식의 패턴을 보존하고 있다. 환자는 깊이 그 자신에게로 침잠하고, 자기의 과거의 삶을 되살리고, 자기의 외상적 경험을 또다시 직면하도록 요구 받는다. 형식면에서 보면 이 위험한 조작은 지옥에로, 마귀의 영역에로의 입사적 하강 및 괴물들과의 투쟁을 닮고 있다. 입사자가 그의 시련에서 승리를 거두고 다시 올라오리라고-간단히 말해서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 정신적 가치들을 향하여 열려 있는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리라고-기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는 정신적 건강과 통일성을, 그리고 따라서 문화적 가치의 세계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유령과 괴물들에게 쫓기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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