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라클의 시험: 미안하지만, 너는 ‘그’가 아니야
신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신들 앞에서는
영원의 물결로 변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떠밀려 올라가고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하고 만다네
-괴테
엘리아데는 도시인들 대부분의 삶이 오직 경제적 타깃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꼬집어 말한다. 마치 ‘진화된 인류’는 비과학적인 신화 따위엔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듯 이성 지상주의적인 교육이 판을 쳐왔다. 그러나 신화의 힘을 믿는 종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문명인의 교육이야말로 ‘우주적 시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우리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힘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매트릭스의 회로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창조해야 할 새로운 신화를 방해하는 모든 집착과 강요가 우리 안의 매트릭스를 오늘도 열심히 가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세속적 존재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은 그 자신과 그의 사회에 대한 책임 이외에는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 근대인의 커다란 관심사는 지구의 경제적 자원을 어리석게 고갈시키는 짓을 피하는 데 쏠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적으로 원시인은 언제나 그 자신은 우주적 맥락 속에 던진다. 그의 개인적 경험은 진정성도, 깊이도 결여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근대인의 눈에는 거짓되고 유치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83쪽.
사이퍼: 자네 생각을 알아.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난 항상 그 생각뿐이지. 빨간 약이 아니라 파란 약을 먹을걸. 너도 그렇지?
네오: (살짝 미소 짓지만 이제 더 이상 파란 약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사이퍼: 얼마나 부담스러워? 세상을 구해야 한다니! 충고 한마디 하지. 매트릭스의 요원을 보면 나처럼 해. 죽어라고 도망치라고.
지금 여기 보이는 삶 너머로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사이퍼. 그는 세속적인 가치 이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되어버렸기에, 지금까지 그들 모두를 지켜온 믿음직한 수장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팔아넘긴다. 저항운동의 본거지인 ‘시온’의 메인프레임 접근 코드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사이퍼의 눈에는 네오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그 거대한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 할 불쌍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낯설고 불확실하지만 이제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진심 어린 눈빛을 믿기로 한 눈치다. 아직 ‘내가 바로 그다’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사이퍼의 유혹만큼은 달갑지 않다. ‘당신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라는 듯 안타깝게 빛나는 네오의 눈빛에는 이제 지금-여기 너머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이퍼가 잔인한 배반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네오는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 내가 정말 ‘그’라는 것을 확인할 준비. ‘오라클의 계시’와 ‘네오의 존재’, 그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출 준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네오를 오라클에게로 데려간다. 여신의 치렁치렁한 드레스자락을 휘날리며 머리 뒤로 광배를 드리우고 있을 것만 같은 ‘예언자 오라클’의 모습을 상상했던 관객들은 오라클의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에 놀란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푸근한 아낙네 같은 오라클의 모습. 오라클의 카리스마는 그래서 더더욱 따스한 빛을 발한다.
오라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네오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예상과는 많이 다르지? (오븐에서 익어가고 있는 쿠키를 바라보며) 거의 다됐어. 냄새가 참 좋지?
네오: (얼떨떨한 표정으로) 네.
오라클: (……) 넌 생각보다 귀엽구나. 그녀가 좋아할 만해.
네오: 누가요?
오라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다지 똑똑하진 않구나. 왜 나한테 왔는지는 알지? 어떻게 생각해? 너 자신이 ‘그’라고 생각해?
네오: 솔직히 모르겠어요.
오라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지. ‘그’라는 존재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아무도 알 수 없고 자신만이 알아. 온몸으로 아는 거지.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입을 벌려봐, 네오. 좋아. ‘흥미롭군’이라고 말해야겠지만, 하지만…….
네오: 하지만, 뭔가요?
오라클: 자넨 이미 알고 있어.
네오: (더없이 실망한 눈빛으로) 전 ‘그’가 아니군요.
오라클: 미안하다. 넌 재능이 있지만 뭔가를 기다리고 있어.
(……)
네오: (쓸쓸히 웃으며) 모피어스한테 거의 설득됐었거든요.
오라클: 불쌍한 모피어스. 그가 없으면 우린 안 돼.
네오: ‘그가 없으면’이라뇨?
오라클: 정말 알고 싶나? 모피어스는 네가 ‘그’라고 믿어. 너도 나도 아무도 그를 설득할 순 없어. 널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그는 눈이 멀었어. 넌 선택을 해야 돼. 모피어스의 목숨과 네 목숨 중에서 말이야.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그건 네 손에 달렸어.
내가 ‘그’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피어스는 내가 ‘그’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그의 기대를 저버리면 어떻게 될까. 난 이제 매트릭스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내가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여기 머물러야 할 이유가 뭐지? 매트릭스의 편안한 세계에 대한 미련, 그리고 내가 정말 이 엄청난 미션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 오라클은 네오가 아직 버리지 못한 이 미련과 공포를 진정으로 떨쳐내게 하기 위하여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라클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을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오라클은 ‘너는 그가 아니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네가 바로 그야’라고 확실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오라클은 단지 너를 만드는 것은 너 자신임을 일깨운다. 내가 ‘그’임을 믿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아찔한 것,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엄청난 일임을 암시할 뿐이다. 답을 저 멀리 바깥에서 구하지 마. 언제나 그렇듯 답은 네 안에 있어. 다만 그 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가, 그게 관건이지. 네 마음을 찬찬히 만져보렴. 너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은밀한 해답의 질감이 느껴지는가.
폴 리쾨르에 따르면 실존의 두 기둥이란, ‘쾌락’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생명의 기둥’과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신의 기둥’이다. 리쾨르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인생이란 이 두 기둥이 하나로 합쳐서 서로 밑거름이 되어주는 그런 인생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립되는 이 두 요소를 파악해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리쾨르가 그러한 필연적인 통합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믿은 인간의 기능은 바로 ‘느낄 수 있는 능력(feeling)’이었다. 신화는 이 느낌들의 기록이다. 신화는 자신들의 실존적 모순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쳤던 인간적 시도의 기록이며, 그 해결의 살아 있는 도구였다.
-비얼레인, 배경화 역, 『살아 있는 신화』, 세종서적,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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