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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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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어둠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빛이다.

-엘리아데

 

 

오라클은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네오에게 결국 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네 자신이라고, 너의 신화를 만드는 것 또한 너의 힘이라고 암시한 것이 아닐까. 오라클이나 트리니티나 모피어스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네 스스로가 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네오 스스로가 에게 마치 사랑에 빠지듯 완전히 몰입할 때, 그는 운명의 문턱을 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다/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에 네오는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과연 인지 아닌지 헷갈려 미칠 지경인 네오에게 또 다른 엄청난 미션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너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모피어스와 네오 일행이 매트릭스에 잠입하여 활동을 개시하려는 동안, 사이퍼는 그들이 매트릭스로부터 현실로 빠져나오는 출구를 봉쇄해버린다. 드디어 사이퍼는 모피어스를 스미스일당에게 넘기려 하는 것이다. 그는 모피어스를 처치하기 위해 다른 요원들까지 살해하고 트리니티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협박한다. 이제 너도, 네오도, 모피어스도 끝이라고. 더 이상 나는 매트릭스 바깥, 이 날것의 현실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는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가상이 훨씬 안전하고 매혹적인 현실 같다고. 이제 네오가 라는 환상 따위는 집어 치우라고.

 

 

사이퍼: 난 오래 전부터 널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네 꿈을 꾸곤 했지. (매트릭스 바깥에 분리되어 있는 트리니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넌 아름다운 여자야.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트리니티: 동료들을 네가 죽였구나.

사이퍼: 하하, 그래. 난 지쳤어. 전쟁도 싸우는 것도 지겨워. 여기도 지긋지긋하고 추운 것도 지겹고 맛없는 죽만 먹어대는 식사도 지겨워.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피어스 놈이 지겨워. (이번에는 모피어스의 몸 위로 올라타며 잠든 그의 멱살을 잡고) 놀랬지, 이놈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네 놈이 뒈지는 걸 봐야 하는데. 네 놈이 죽기 직전에 가서 내가 배신했다는 걸 보여 주는 건데.

트리니티: 모피어스를 노린 거였군.

사이퍼: 맞았어. 놈은 우릴 속였어. 속였다고! 네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빨간 약은 안 먹었잖아!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매트릭스를 선택하겠어.

트리니티: 매트릭스는 가짜야.

사이퍼: 그렇지 않아. 난 매트릭스가 이 세상보다 더 진짜 같다고 생각해. 여기서 플러그만 뽑으면 에이팍은 죽게 되지. (에이팍의 몸과 매트릭스가 연결된 코드를 뽑아버려 그녀 또한 즉사한다. 그는 이제 네오의 코드를 뽑아버리려 한다.) 모피어스의 말이 맞다면 난 플러그를 뽑을 수 없어. 만약 네오가 라면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맞지? 죽으면 가 아닌 거지. 넌 모피어스의 말을 정말 믿어? ‘, 아니오로만 대답해. 그의 눈을 쳐다봐. 커다랗게 아름다운 그 눈을 말이야. 그리고 대답해 봐.

트리니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그러나 차분하게 대답한다.) 난 네오를 믿어.

사이퍼: 난 안 믿어! 믿든 안 믿든 네오 너는 바비큐가 될 거다!

 

 

 

 

사이퍼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신이 나서 네오를 죽이려 하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탱크가 일어나 사이퍼를 처치한다. 그렇게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와 탱크만이 살아남는다. 한편 매트릭스의 수문장 스미스는 모피어스를 납치하여 고문하는 중이다. 그는 모피어스로부터 시온의 메인 컴퓨터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한다. ‘시온을 파괴하여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모든 반란세력들을 일시에 제거해버리려는 속셈이다. 스미스는 매트릭스가 구현해낸 안락한 미래를 예찬하며 이 아름다운 미래는 너희 원시 종족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진화된 존재들(인공지능컴퓨터)’의 것이라고 말한다.

 

 

스미스: 수십억 인간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지. 태평하게 말이야. 첫 번째 매트릭스는 원래 완벽한 인간 세상이었지. 고통이 없는 세상이었어. 그런데 비극이 됐지. 인간들에게 매트릭스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인간들은 수없이 죽어나갔어. 어떤 이들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내 생각에는, 인간들은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하는 것 같아. 너희 원시적인 두뇌들은 자꾸 깨어나려고 했지. 그래서 매트릭스가 다시 태어나게 된 거야. 너희 문명의 절정이지. 사실 너희 문명은 아냐. 우리가 맡은 이후로는 우리의 문명이 됐으니까. 진화야, 모피어스! 진화라고! 공룡처럼 말이야. 창밖을 봐. 미래는 우리 세상이야 미래는 우리 거라고.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고문하며 시온의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하는 동안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에서 네오와 트리니티는 탱크와 함께 모피어스의 안부를 걱정한다. 매트릭스 내부의 가상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자신의 두뇌를 스미스 일당들에게 해킹당하기 일보직전이고, 매트릭스 외부의 진짜 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견디고 있다. 모피어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간신히 고문을 버티고 있지만, 탱크와 트리니티는 이제 시온의 출구가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알게 된다. 탱크는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요원들이 컴퓨터에 들어가면 시온은 끝장이야. 그렇게 할 순 없지. 시온은 너나 나나 모피어스보다 중요해.” 절박해진 네오는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묻는다. 탱크는 절망적인 얼굴로 체념하듯 말한다. “플러그를 뽑으면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매트릭스와 모피어스를 연결하고 있는 플러그를 뽑으면 모피어스는 죽게 된다. 네오는 비로소 오라클의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피어스와 나의 목숨,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인간은 누구나 고립되고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분리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의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강한 그 무엇으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속에 위치시킬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으며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옛날의 어떤 상태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도 역사도 존재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세계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 수많은 신앙은 실낙원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상반된 요소들이 대립 없이 공존하고, 다양성이 신비로운 통일성의 여러 가지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 그런 천국의 모순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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