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06:33
728x90
반응형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신화는 별들에게 열정의 옷을 입히고,

신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지닌 결함과 과오를

덧씌우기도 했다네. 신화 속에서 바람과

파도는 음악이었다네. 모든 호수와 사내,

샘물과 산, 숲과 향내 그윽한 골짜기는

온갖 요정들의 놀이터였다네

-로버스 G. 잉거솔

 

 

세속의 아수라 속에서도 신성의 숨결을 발견하는 열쇠. 그 열쇠는 바로 이었다. 네오를 비롯하여 매트릭스에 갇혀 있던 모든 인류는 자신의 진짜 몸을 AI에게 건전지로 헌납한 채 가상의 이미지로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신의 눈, , , , 발을 단 한 번도 진짜 세계에서 써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네오가 매트릭스로 철저히 세뇌된 자신의 두뇌를 해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을 매트릭스의 회로에서 빼내 육체와 정신의 혼연일체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으로, 매트릭스 안에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스미스가 이상하게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스미스는 모든 것을 갖췄지만 자신의 건전지를 인간의 육체로부터 쥐어짜내야 하는 참혹한 운명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협박하며 투덜거리는 장면은 결국 매트릭스 안의 적자인 인공지능로봇조차도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만든다.

 

 

 

 

스미스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욕망대로 사용할 수 없기에, 아니 자신의 욕망 자체가 곧 매트릭스의 욕망이기에, 그 불완전한 육체조차 인간에게 철저히 기생해야만 유지할 수 있기에, 결코 구식 인간들처럼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의 희열을 평생 누릴 수 없다. 그는 한 번도 햇살의 따스함을, 얼음물의 청량감을, 향기로운 꽃냄새를, 사랑하는 여인의 체온을 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스미스: 난 여기가 싫어. 이 동물원, 감옥……. 뭐라고 부르든 간에 더 이상은 못 참아. 냄새 때문이지.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네 냄새가 느껴져. 마치 감염될 것 같아. 아주 불쾌해. 안 그래? 여기서 벗어나야 해. 네 머릿속에 열쇠가 있어. 시온이 파괴되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지지. 시온으로 들어가야 해. 코드가 뭔지 빨리 말해.

 

 

스미스는 마치 권태에 지친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을 향해 유혹의 미끼와 저주의 화살을 동시에 던진다. 스미스의 엄청난 파워에 기가 질렸던 네오는 스미스와 으로 싸우면서 그의 불안과 공포를 차츰차츰 읽어낸다. “너희를 느낄 수 있다. 너희는 우리를 두려워한다. 변화가 두려운 거야.” 네오는 천하무적으로 보였던 스미스 일당이 실은 자신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스미스는 바로 매트릭스의 명령체계를 향해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인간에게 운동과 생명 대신 휴식과 정지, 죽음을 강요하듯이. 네오가 싸워야하는 것은 바로 스미스라는 강력한 상징적 존재로 대변되는 매트릭스의 의지, 생의 운동성을 부정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만유인력이었다. 스미스는 단지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운동을 부정하고, ‘생명을 부정하고, 마침내 자유와 저항을 부정하기에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끊임없이 꿈틀대고 미끄러지는 인간의 욕망,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육체이기에. 매트릭스의 인공지능로봇은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인간의 살아있는 육체를 결코 소유할 수 없기에.

 

 

괴테가 구상한 메피스토펠레스는 항의하고 부정하는 영이며, 특히 삶의 흐름을 멎게 하고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영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행위는 신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생을 거스르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방해의 아버지다”. 그가 파우스트에게 요구하는 것은 멈추라는 것이다. “어쨌든 멈춰라!”는 특히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문구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멈추는 순간 그 영혼을 잃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멈춤은 창조주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부정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에게 직접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중요한 창조물인 생을 방해한다. 운동과 생명 대신 휴식과 정지, 죽음을 강요하려고 애쓴다. 바뀌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부패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99.

 

 

 

 

인용

목차

전체

시네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