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내가 된다
폴 리쾨르는 한 인간이 일생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죽음이라는 운명과 관련된) 인간의 유한성.
둘째, 신이나 신령한 존재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의 현실.
셋째, 생성과 초월의 과정,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있는 존재인 개개의 인간에게 진리는 절대로 온전하게 완성된 것일 수 없다는 점.
넷째, 선택에 대한 인간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사이의 모순성.
다섯째, 인간이란 타자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with, in, and through others)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여섯째,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그 역할.
-비얼레인, 배경화 역, 『살아 있는 신화』, 세종서적, 2000, 18쪽.
그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with, in, and through others) 비로소 존재하는 우리. 네오를 위해 다치고, 의심 받고, 죽음을 불사했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네오는 평생 ‘그’가 될 순간을 단 한 번도 포착하지 못한 채 매트릭스 안에서 방황하다 죽어갔을 것이다. 온종일 말 한 마디 안 하고 ‘디지털 무언족’으로 살아도 충분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더욱 친구가 필요하다. 나를 일깨우고, 나를 시험하고, 나를 뒤흔드는 타인이 없다면 우리는 평생 각자의 ‘그’가 되는 길을 찾지 못해 운명의 미궁 속을 헤매지 않을까.
네오가 진정으로 성숙하게 되는 계기는, 단지 그의 뛰어난 학습 능력이나 놀라운 해킹 실력 때문이 아니라, 늘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고 혼자 결정하던 네오가 드디어 모피어스라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순간이다. 모두가 ‘시온’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소중한 모피어스라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오직 네오만이 모피어스를 살리자고 한다.
모피어스와 네오 중 둘 중 한 명의 목숨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비극적인 예언이 ‘틀리는’ 순간 네오는 비로소 진정한 ‘그’가 될 수 있다. 오라클은 단지 ‘너는 아무리 피해도 그가 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손쉽게 운명의 진로를 귀띔해준 것이 아니라, ‘네가 진정으로 넘어야 할 운명의 장벽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일깨워준 것이다. 그 운명의 장벽을 넘을 것인가 아닌가는 바로 네오 스스로의 선택이고 능력이고 용기였던 것이다.
엘리아데는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버크 박사의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안에 내재한 ‘그’가 발현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묘사한다. 세속의 틈바구니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체험. 그것은 완전히 낯선 경험은 아니다. 내 안에 깃든 타자, 가장 익숙하지만 동시에 가장 낯선 타자를 발견하는 순간. 내 안의 빛, 바로 너와 함께, 너를 통해, 네 안에서, 우리는 언젠가 비로소 ‘그’가 될 수 있다.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비로소 나는 존재한다.
버크박사는 어느 봄날 밤 자신에게 닥친 일을 3인칭으로 서술했다. 친구들과 함께 워즈워드와 셸리, 키츠, 특히 휘트먼의 시를 읽으며 파티를 즐긴 뒤 자정에 빠져나온 그는 승합마차를 타고 오랜 드라이브를 했다. (일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는 거의 수동적인, 고요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갑자가, 예고도 없이, 그는 불꽃 색깔의 구름에 파묻혔다. 순간 그는 불, 대도시의 돌발적인 화재를 떠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빛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즉시 고양된 감정이 그를 감쌌는데, 이는 엄청난 기쁨의 감정이었으며, 여기에 형언할 수 없는 지적 계시가 수반되고 또 뒤를 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부라만의 찬란함을 지닌 순간적인 번갯불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이 불은 그 뒤로 그의 일생을 밝힌다. 부라만의 지복 한 방울이 심장으로 떨어져, 천국의 뒷맛을 그에게 영원히 남긴다. (……) 그는 보고, 알았다. 우주는 죽은 물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존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며(……) 세상의 근본 원리는 우리가 사랑이란 부르는 것이고, 길게 보면 각자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그는 단 몇 초의 계시에서 그 후의 몇 달, 심지어 몇 년의 연구에서보다 더 많이 배웠으며, 어떤 연구도 가르쳐줄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배웠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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