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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9. 모든 참고문헌을 찢어버린 인간의 고독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9. 모든 참고문헌을 찢어버린 인간의 고독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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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든 참고문헌을 찢어버린 인간의 고독

 

 

사회적 비교에 의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헐뜯고, 그들의 성공을 방해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다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진정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자기 방어를 위해 취한 행동은 대부분 원래 의도와는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 사회적 비교 기준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행동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상호작용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앨렌 랭어, 이모영 역, 예술가가 되려면, 학지사, 2008, 244~5.

 

 

존 내쉬의 MIT 재직 시절, 칠판에는 이런 낙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존 내쉬를 미워하는 날!” 존 내쉬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나 몰라라한다는 소문에 휩싸였고, ‘좋은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았다. 그의 수업은 바람직한 교육이라기보다는 도박성 짙은 게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쉬는 스티븐슨과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선거전을 놓고 학생들과 내기를 했는데 결국 선거에서 누가 승리해도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고안하여 학생들을 골탕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만이 좋은 스승은 아니었다. 괴짜 스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학생들이 많아 수강생 수는 날로 줄어들었지만 내쉬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 빛나는 영감을 선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MIT 신입생 시절 존에게 수학을 배웠던 하버드 대학교수 배리 마주르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가 들려준 수학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 느껴졌지요.”

 

 

해결되지 않은 고전적인 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내쉬가 즐겨 사용한 수법이었다. 로버트 오만은 이렇게 회상했다. “학생들에게 π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어요. 그건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학과장에서 질책을 당한 내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려운 문제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그 문제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면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비아 네이사,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255.

 

 

풀 수 있는 것풀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사고의 경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미해결 난제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때마다 존이 내세운 변명은 그런 논리였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내쉬 자신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는 난제가 발견될 때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참고문헌부터 뒤지는 보통 연구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어떤 위대한 참고문헌보다 자신의 두뇌를 믿었다. 그는 모두가 포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난제와 만날 때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문제에 매달리는 뚝심으로 유명했다. 그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놀라운 사람임에는 분명했다.

 

내쉬는 스스로의 업적을 유치하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고, 주변 사람들을 대놓고 깔보곤 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의 괴팍한 성격을 눈감아주었다. 그의 동료 도널드 스펜서는 내쉬가 신변 잡담을 전혀 하지 않는 것, 어떤 순간에도 칭얼거리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쉬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구 테마는 누가 정해준 주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남이 주제를 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더없이 독창적이었어요.”

 

내쉬가 문제를 발견하는 수단은 바로 적들을 통해서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천재성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적이었으므로 주로 친밀한 적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프린스턴에서 공부하고 MIT에서 재직하던 동안 만났던 수많은 천재 소년들, 랜드 코퍼레이션에서 일하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동료들은 각각 그들의 고향에서는 유일무이한 천재들이었다. 적의 존재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았던 존 내쉬는 자신을 자극하는 동료를 만날 때마다 더욱 업그레이드되는 스타일이었다. 수없이 동료들과 불화하고 유치찬란한 말싸움과 도를 넘는 경쟁으로 말썽을 일으킨 내쉬. 그러나 바로 그 떠들썩한 경쟁과 쓸데없는 말다툼이야말로 존 내쉬의 자가 학습 장치였다.

 

자네가 그토록 우수하다면, 다양체 매장 문제를 직접 풀어보지 그래?”라는 동료 앰브로스의 비난 섞인 야유와 농담은 내쉬의 승부 근성을 자극했다. 내쉬 못지않게 경쟁심이 강했던 동료 앰브로스와의 유치한 내기덕분에, 리만이 제기한 이래 풀리지 않고 있던 악명 높은 문제를, 누구도 20대의 풋내기 수학 강사가 풀 것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내쉬는 풀어버리기도 했다.

 

해답의 발견보다 문제의 발견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제도 교육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라고 가르치지 네가 중요하다고 믿는 문제를 내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의 물꼬를 비틀어 역사의 물길 자체를 바꾼 사람들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문제 자체를 창조하는 능력이었다. 주어진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풀어내는 영재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일견 매우 단순해 보이는 문제를 가지고 사유의 극한까지 스스로를 몰아쳐가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문제의 가치를 뒤바꿔버리거나(중요하지 않았던 문제를 중요하게 만들기), 아니면 문제 자체를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은 한 개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사안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바칠 화두를 발견하는 순간이야말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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