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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1. 내과의사가 정신의학으로 발길을 돌리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1. 내과의사가 정신의학으로 발길을 돌리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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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과의사가 정신의학으로 발길을 돌리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내과 교수에게 그 결정을 알렸을 때 그의 얼굴에서 실망과 놀라움의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내 옛날의 상처,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한층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동떨어진 세계에 흥미를 느끼리라고는 그 누구도, 아니 나 자신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나를 바보로 여겼다. 내가 내과의사로서 출세할 기회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정신의학 같은 하찮은 것과 바꿔버리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회는 누구나 당연히 잡으려고 하며 나에게도 무척 유혹적이었다.

-칼 융, 조성기 역, 기억, , 사상, 김영사, 2002, 210~11.

 

 

그 무렵 의학계에서 정신의학은 철저히 버려진 황무지였다. 병원 원장이 환자들과 함께 같은 건물에 갇혀(?)’ 있어야만 했으며, 정신병원은 나환자 수용소처럼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격리되어 있었다. 의사들도 일반인들처럼 정신의학을 기피했다. 정신병에 드리워진 절망적이고 치명적인 그림자가 정신의학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융은 내과의사로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던 상황에서 암흑의 땅이었던 정신의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스스로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결정이 갑자기 내려진 계기는, 한 정신의학 교과서 때문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정신의학의 주관성과 불확실성이 정신질환 자체가 인격의 질병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융은 인격의 질병이라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말에서 자신의 두 가지 거대한 관심이 맹렬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지는, 가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그는 그동안 사방팔방 헤맸지만 찾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 경험의 장이 형성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융은 정신의학이 자연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겉으로는 제1의 인격으로 자연과학을 연구하던 자신의 일상적 자아, 그리고 제1의 인격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격렬한 탐구열(2의 인격)을 통합할 수 있는 학문적 장이 바로 정신의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까지 융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는 것조차 부끄러워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고, 가난한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융은 자신의 제2의 인격이 관심을 갖는 무의식의 영역이 매우 비실용적인 분야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1의 인격의 활동 영역, 즉 내과의사로서의 길에 만족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의학이 인격의 질병을 다룬다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문장에서 융이 계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홀로 고민해왔던 문제가 아주 작은 계기에도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인격이라는 인문학적 시선과 질병이라는 자연과학의 시선이 융에게 있어서는 제2의 인격과 제1의 인격을 표상하는 대리물로 체험되었던 것이 아닐까. 즉 그는 자기 인격의 분열을 오랫동안 감지하고 있었고 그 분열의 원인을 무의식에서 찾았기 때문에 미세한 자극에도 곧바로 폭발해버릴, 욕망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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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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