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1. 형벌은 인간을 길들일 수 있는가
영화 『몬테 크리스토』(2002)에는 죽어야만 나갈 수 있다는 악명 높은 독방이 등장한다. 오랜 감방생활에 지친 주인공 에드먼드 단테(제임스 카비젤)는 이렇게 항변한다. “제 방에는 72519개의 돌이 있어요. 전 그걸 세 번이나 세어봤다고요!” 10년이 넘도록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었던 젊은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늙은 죄수 아베 파리아(리처드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 돌들에 각각의 이름은 지어줘 봤나?”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감방에서 죄수들은 ‘자기 계몽’이 아니라 하염없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를, 어떻게 하면 이 저주받은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야수를 가두기 위해 고안된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아주 작은 감시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탈출하곤 한다. 생명체를 가두어 길들이고 형벌로 단죄하는 모든 권력에 의문을 제기한 철학자, 그가 니체였다.
우리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의 한계상황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빠삐용』에서 『쇼생크 탈출』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탈출이 이미 예견되어 있는 영화에서 관객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갇힌 사람의 죄보다 훨씬 무서운 ‘가두는 자들’의 공포를 본 것이 아닐까. 야수처럼 사나운 죄수가 우아한 에티켓을 갖춘 교양인으로 변모하는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끈 적은 거의 없었다. 형벌은 결코 죄인을 길들일 수 없다는 것, 맹수를 조련하듯 인간을 교화하는 어떤 권력도 인간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우리를 매혹시킨 탈주범들의 이야기는 늘,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은 이 자유의 피비린 중독성을 이야기해왔다. 도덕의 이름으로, 법률의 이름으로 인간을 가두는 권력의 잔혹성에 대해서라면, 우리의 니체가 가장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이나, ‘회한’이라 불리는 저 정신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고유한 도구를 형벌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현실과 심리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 진정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것은 바로 범죄자나 수형자 사이에서는 대단히 드문 일이며, 감옥이나 교도소는 이런 집게벌레 종족이 번식하지 좋은 온상이 아니다. (……) 형벌이란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단련하며 냉혹하게 만든다. 형벌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형벌은 소외감을 격화시킨다. 형벌은 저항력을 강화한다.
-니체, 김정현 역, 『도덕의 계보』, 책세상, 2002, 427쪽.
요컨대 형벌은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인간을 효과적으로(?) 길들일 수도 없으며,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덜 위험하게 보이도록 연기할 수는 있지만, 자신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스스로의 야수성을 완전히 길들일 수는 없다. 도덕은, 법률은, 감옥은,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거대한 동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관점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이렇듯 ‘갇힌 자’보다 더욱 악랄한 ‘가둔 자’들의 부당한 권력과 그 내면의 나약함을 흥미롭게 해부한 바 있다. 이 영화는 보고 또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풍부한 사유의 보물 창고다. 아마도 그 이유는 『쇼생크 탈출』이 ‘선과 악’의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 인간 본성의 다채로운 모호성을 화두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쏜살같이 주인공의 ‘단죄’를 향해 질주하는 ‘법’의 광기를 냉정하게 보도한다. 검사는 단지 ‘무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의 유죄를 확정한다.
검사: 피고는 아내가 살해되던 날 아내와 다퉜습니다. 심하게 다퉜죠.
앤디: 들통 나서 잘 됐다며 숨기려고도 안 했어요.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검사: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앤디: 그럴 수 없다고 했죠.
(……)
검사: 싸운 후 아내는 어떻게 했나요?
앤디: 짐을 꾸렸어요. 그 애인이랑 살려고 말이죠. 애인은 스포츠 센터 골프강사였죠.
검사: 아내를 미행했습니까?
앤디: 먼저 몇 군데 술집에 들렀습니다. 그 남자 집으로 갔더니 없더군요. 차를 한 켠에 세우고 기다렸죠.
검사: 무슨 의도로요?
앤디: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웠고 술에 취해 있었죠. 그냥 겁만 주려고 했어요…….
검사: 두 사람이 돌아오자 따라가 살해한 거군요.
앤디: 아뇨. 술이 깨고 있었고, 마저 깨려고 집으로 차를 돌렸어요. 도중에 강에다 총을 버렸고요. 분명히 말씀드렸던 대로요.
검사: 다음날 그 집 파출부는 총에 맞은 두 구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 아닙니까? 단지 제 생각입니까? 살인이 있기 전에 총을 버렸다? 편리한 착상이군요. 사실입니다. 경찰이 3일 동안 강을 조사했지만,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죠. 그래서 피고인의 총과 피살자의 총 자국을 대조할 수 없었죠. 그것 또한 대단히 편리한 논리 아닌가요? 안 그런가요? (……) 현장에서는 피고지문이 묻은 술병과 탄알 타이어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의 팔에 안긴 젊은 두 남녀가 죽었습니다.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크다고 해서 죽음을 선고할 수 있습니까? (……) 이건 우발적인 범행이 아닙니다. 간통이 죽을죄는 아닙니다. 이것은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혈적인 복수입니다. 한사람 앞에 4발씩 쏘았습니다. 6발을 쏜 게 아니라 8발을 쏘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총을 다 쏘고 난후 다시 장전하여 그들을 쏘았다는 겁니다. 남은 총알을 사랑하는 사람의 오른쪽 머리에요. 저는 피고 듀프레인에게 냉혹하고 잔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본 법정에 부여된 권한으로 각각의 희생자에 대해 한 번의 종신형씩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정말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녀와 정부를 살해했을까.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고를 ‘죄인’으로 확정할 수 있을까.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한 인간에 대한 두 번의 종신형으로 저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 법정에 부여된 권한’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권력인가. 한 인간을 두 번의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권력의 막강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인간은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어디서 부여받은 것인가. 그들이 도덕이라 주장하는 것, 그들이 올바른 행위라 규정하는 판단의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도덕은 과연 인간을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 모든 규율에 ‘도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도덕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는 권력이 아닌가.
그들은 존엄함과 덕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하려할 때 그러지 말라고 제동을 거는 것, 그것을 두고 그들은 덕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태엽이 감긴 단조로운 시계와 같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똑딱거린다. 이 똑딱임이 덕이라 불리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다. (……) 아, “덕”이란 말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가! 그들이 “나는 정의롭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듣노라면, 그것은 언제나 “나는 앙갚음을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니체, 정동호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2, 153쪽.

2. 도덕 없이는 살 수 없다?
니체는 도덕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인류의 ‘상식’을 의심한다. 니체는 도덕이 인간의 선천적 본성도 아니며 보편적 기질도 아님을 밝혀낸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도덕의 역사적 가변성을 입증하고, 한 시대의 도덕이 다른 시대의 패륜이 될 수도 있음을, 도덕의 가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해왔음을 보여준다. 야스퍼스는 『니체와 기독교』에서 왜 인간이 ‘도덕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변모했는가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계몽의 과정을 통해 ‘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동안의 문명화 과정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외부적 존재’ 없이는 살 수 없도록 길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미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신의 그림자’에 철저히 길들어져 있기에, 인간은 ‘신과 닮은 존재’가 보좌해주는 세계의 안전판 없이는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는 존재로 변모해왔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절대성, 즉 ‘도덕’이라는 ‘신의 대용품’이 필요했던 셈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동안 레드(모건 프리먼)는 가석방 심사를 받고 있었다. 가석방 심사위원은 레드에게 질문한다. “20년을 복역했지요? 사회에 복귀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까?” 레드는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이 교화됐음을 주장한다. “네. 저는 준비됐습니다. 감옥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전 변했습니다.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레드의 표정은 절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심사위원은 레드의 서류에 ‘부적격(rejected)’ 판정 도장을 찍는다. 그는 젊은 시절 범죄를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20년 동안이나 별 탈 없이 복역했지만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레드를 비롯한 쇼생크의 죄수들은 자신의 삶이 ‘적절하다/부적절하다’는 판정을 가석방 심사위원으로부터 인증 받아야 할 처지다. 그들은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여 이 죄수가 감옥 밖으로 나가서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살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교화된다는 것’은 바로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는 것이며 ‘계산 불가능한 의외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행위다.


레드는 이 영화의 내레이터이자 쇼생크 감옥의 터줏대감으로서 신출귀몰한 물자공급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담배, 마리화나, 애들 졸업 축하주도 구할 수 있죠. 뭐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인간 백화점이죠. 듀프레인이 와서 영화배우 사진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도 문제없다고 했지요. 듀프레인은 아내와 정부를 죽인 죄로 1947년 쇼생크 감옥으로 왔습니다. 전직 은행 부지점장이었죠.” 듀프레인이 쇼생크에 입성하던 날, 죄수들은 새내기 죄수들을 향해 내기를 한다. ‘신참 죄수들 중에서 누가 먼저 울음을 터뜨릴까’에 내기를 거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현금보다도 소중한 담배를 저마다 내기의 판돈으로 걸며 키득거리는 고참 죄수들. “처음에 듀프레인은 제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았죠. 그게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레드는 아무도 담배를 걸지 않은 ‘꺽다리 귀공자’ 앤디 듀프레인에게 담배를 무려 10개비나 건다.


이제 감옥에서의 첫날밤이 시작된다. “죄수들은 저녁 점호를 위해 감방으로 돌아가라.”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의 소장 노튼은 죄수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너희는 중죄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나에게 맡겨진 것이다. 첫 번째 규칙. 욕설금지! 내 감옥에서는 신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 그 외의 규칙들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질문 있나?” 듣고 있던 신참 죄수 중 한 명에게서 질문이 터져 나온다. “밥은 언제 먹나요?” 너무나도 ‘초딩스러운’ 질문에 관객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치려는 순간, 소장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지고 간수는 전의를 불태우며 신참에게로 다가간다. “먹으라고 할 때 먹고, 싸라고 할 때 싸면 된다. 알았나? 이 더러운 자식!” 단지 밥은 언제 먹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죄수는 흠씬 두들겨 맞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신참들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이제야 감옥에 온 것이 실감 났다는 듯, 고통받는 동료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투사한다.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죽은 듯이 살아야지, 무사히 살아 나가기만을 빌어야지……. 폭력은 이렇게 인간을 길들인다. 좀더 비굴하게, 좀더 나약하게, 좀더 온순한 존재로 만드는 것. 그것이 ‘교화’의 진정한 목적이다. 소장은 이 ‘교화’의 대리인으로서 마치 자신이 신의 사도인 양 죄수들을 협박한다. “난 두 가지를 믿는다. 원칙과 성경. 너희도 그렇게 될 것이다. 믿음을 가져라. 너희는 내 손에 달렸다. 쇼생크에 온 걸 환영한다.” 소장이 손에 쥔 성경은 마치 이 감옥에서 너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양 신성한 위엄(?)을 과시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이 쓸쓸하게 이어진다. “감옥에서의 첫날밤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처럼 발가벗겨지고 살충제에 범벅이 된 채 돌아다녀야 하죠. 감방에 집어넣어지고 철문이 탕하고 닫히면 그제야 실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은 망가졌다는 것을요. 대부분의 신참들은 첫날밤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됩니다. 항상 몇몇은 정신없이 흐느껴 울죠. 매번 일어나는 일입니다. 단지 문제는 누가 먼저 우느냐 입니다. 이것만큼 재미있는 내기는 없죠. 저는 앤디 듀프레인에게 걸었습니다.” 이어서 감옥 안의 불이 꺼지고 신참들의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된다. 레드의 친구 헤이우드는 장난기가 발동해 자신이 담배를 건 신참(간수에게 폭행당한 바로 그 신참)에게서 눈물을 뽑아내려고 작정을 했다.
“신참. 잔뜩 겁에 질려서 뭐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는 거야? 어이, 뚱보. 내가 말이야. 자넬 소개시켜 줄게. 자넬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남자를 좋아한다고. 특히 백인 뚱보를 말이야.” 간수에게 폭행당한 충격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 나약한 신참은 겁에 질려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여긴 제가 있을 곳이 아니에요. 집에 보내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꺼내주세요…….” 간수는 소란스러운 감옥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신참을 ‘처리’한다. 아까보다 한층 더 난폭해진 간수의 린치 앞에서 신참 죄수는 울다 지쳐 두들겨 맞고, 두들겨 맞다 지쳐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퍽, 쿵, 퍽, 쿵. 한 명의 죄수를 때리는 소리는 마치 쇼생크 감옥의 죄수 전체를 집단폭행하는 소리처럼 엄청난 울림으로 감옥의 밤을 뒤흔든다. 레드가 담배를 10개비나 걸었던 앤디는 정작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하다. 감옥의 첫날밤은 그렇게 끔찍한 풍경 속으로 사라져간다.

다음날 헤이우드는 자신이 내기에 이겼다는 생각에 환호작약하며 다른 죄수들에게 담배를 잔뜩 받아내고 기뻐한다. “뚱보 녀석에게 감사의 키스라도 해야겠어.” 헤이우드는 히죽거리며 내기의 전리품에 흡족해한 후, 자신이 놀려먹은 그 신참 죄수의 안부를 묻는다. “타이렐. 자네 의무실 근무지? 그 뚱보 잘 있나?” 타이렐은 대답한다. “죽었어.” 헤이우드와 함께 시시덕거리던 고참 죄수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 신참이 머리를 심하게 맞은 모양이야. 의사도 없었어.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어. 응급처치도 못했다고.” 헤이우드의 표정은 싸늘해지고 모두들 할 말이 없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지금까지 조용하던 앤디가 차분하게 질문을 한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죠?” 모두들 신참의 대담한 질문에 놀란다. 헤이우드는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뭐라고?” 앤디는 마치 죽은 신참의 이름을 자기 혼자라도 기억하고 싶다는 듯이,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면 그 사람의 죽음이 조금이라도 덜 무의미해지리라는 듯이, 진지하게 묻는다. “누가 그 사람 이름을 아는가 해서요.”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이봐 신참,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름이 뭐가 중요해? 이미 죽어버렸는데.”

감옥 바깥에서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던 앤디, 아직도 자신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는 앤디는 이제야 쇼생크의 ‘게임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개개인의 ‘이름’도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앤디 듀프레인’이 아니라 죄수번호 ‘37927’로 불리는 ‘관리 대상’에 불과함을. 이제 성공한 은행 부지점장 앤디 듀프레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아내를 사랑했던 기억은 물론 바깥세상에서의 모든 행복은 차라리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감옥 안의 죄수들은 이미 감옥의 도덕에 길들어졌으며 스스로의 욕망을 감옥의 도덕이라는 잣대로 자기 검열한다. 복종하지 않으면 세 가지 길밖에는 없다. 린치, 독방, 아니면 죽음. 죄수가 내면화한 감옥의 도덕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강제이며 ‘복종의 기술’에 다름 아니다. 즉, 이들에게 도덕의 기초는 ‘선의’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3. 그는 우리와 다르다, 그 다름은 무엇일까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평균적인, 공동의 체험’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을 길들여온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 속담을 듣는다면 아마도 니체는 치를 떨지 않을까. 모난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그 ‘정’은 도대체 누가 내려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모난 돌이 정 맞는 현실이 ‘옳다’는 것인가……. 니체는 아마도 수없는 질문을 퍼부으며 모난 돌을 ‘다른 돌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비겁한 권력의 맨 얼굴을 파헤치지 않을까. 니체가 혐오한 약자의 근성은 바로 ‘무리 지어’ 다니며 ‘우리가 표준이야, 우리가 대세야’라 외치는 패거리의 행태였다. 강한 자는 무리 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 강한 자는 자기 안에서 자신의 윤리를 창조해낸다. 결코 타인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자,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해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약자의 무리들은 강한 자의 바로 이런 점을 증오한다. 굳이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은둔하기를 선택하며,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자의 ‘홀로 있음’을, 그들은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좀 더 유사하고 좀 더 평범한 인간들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좀더 선택된 자, 좀더 예민한 자, 좀 더 희귀한 자, 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은 쉽게 고립되기 쉬우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재난을 당하기도 쉽고 거의 번식하지도 못한다. (……) 유사한 것, 일상적인 것, 평균적인 것, 무리적인 것으로 ― 비속한 것으로! ― 인간을 다시 교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저항력을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니체, 김정현 역, 『도덕의 계보』, 책세상, 291쪽.
레드(모건 프리먼)를 매혹시킨 앤디(팀 로빈스)의 매력도 바로 그 ‘홀로 있음’이었다. 앤디는 좀처럼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고, 말을 해도 두 단어 이상 입을 떼지 않음으로써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앤디 듀프레인은 죄수들과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옥 생활에 적응하려다 보니 그런 거라 생각했죠. 한 달이 지나자 앤디는 두 단어 이상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을 건 첫 번째 상대는 바로 저였습니다.” 앤디가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오자 레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아내를 살해한 은행가시군. 왜 죽였소?” 앤디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한다. “난 안 죽였어요.”

레드는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당신도 똑같군. 여기 있는 죄수 모두 자기는 무죄라고 생각하지.” 레드는 운동장에서 산책하는 죄수 중 한 명을 무작위로 골라 질문한다. “어이, 자네 죄명이 뭐지?” 죄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흥, 무슨 죄? 무능한 변호사 때문이지.” 앤디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침묵한다. 레드는 앤디의 심성을 떠보려는 듯이 질문을 이어나간다. “자네, 거만하다고 소문났던데. 자네는 우리들과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앤디는 형형한 눈빛으로 레드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런 식의 질문 자체가 부당하다는 듯이. “당신 생각은 어때요?” 레드는 인정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앤디는 물품 공급원 레드에게 아주 작은 돌망치 하나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은 암석 수집광이었는데, 그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레드는 뭐든지 구해줄 수는 있지만 ‘흉기’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앤디는 여기엔 자신의 ‘적’이 없다며 그 작은 망치를 흉기로 쓸 일은 없다고 말한다. 레드는 앤디에게 경고한다. “적이 없다고? 두고 보자고. 자네에게 보그스 일당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조심해.” 앤디는 순진한 눈빛으로 “난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면 되죠.”라고 대답한다. 레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의 강도를 높인다. “저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저들의 머릿속에서는 ‘그 짓’밖에 든 것이 없어. 만일 내가 너라면 뒤통수에도 눈을 달고 다닐 거야.” 레드는 절대로 망치를 ‘흉기’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 불시 검열 때 걸리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임을 분명히 해둔다. “그런데 당신을 왜 ‘레드’라고 부르죠?” 레드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내가 아일랜드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인종적 특수성이 자신과 다른 죄수들 간에 ‘거리’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레드의 ‘다름’은 피부색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있다.


레드는 단 한 번의 대화만으로, 앤디의 ‘다름’을 알아차렸다. 앤디는 거만한 것이 아니라 감옥 생활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죄수들, 자신이 ‘열등한 무리’로 전락했음을 인정하는 다른 죄수들과 ‘다른’ 사람일 뿐임을. “왜 사람들이 그를 거만하다고 수군거렸는지를,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듀프레인은 말수가 적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투도 달랐습니다. 세상사에는 초연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마치 이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투명코트를 입은 것 같았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좋았습니다.” 이 감옥의 ‘죄수다움’을 만드는 온갖 폭력과 욕설과 굴욕으로부터 앤디를 지켜주는 ‘투명코트’를 알아본 것도 레드뿐이었다. 그 투명코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리의 도덕으로부터의 자유, 그 어떤 외부적 강제와 타인의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는 무한한 자유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앤디 앞에는 이 아름다운 투명코트의 강도를 시험하는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앤디를 향한 보그스의 끈적끈적한 시선은 그 첫 번째 난관이었다.

4. 강자는 끊임없이 각자 흩어지려 하고 약자는 집요하게 서로 무리 지으려 한다
보그스는 샤워장에서 앤디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며 추파를 던진다. “이봐, 너 아직 싱싱하지? 아직 아무도 안 건드렸지? 우린 모두 친구가 필요해. 네 친구가 돼줄게. 짜식, 좋으면서 내숭 떨기는!” 앤디는 뱀처럼 감겨오는 보그스의 시선을 무심하게 떨쳐낸다. 그러나 사건은 예고 없이 닥쳐왔다. 세탁장에서 노역을 하던 앤디는 가루비누가 떨어졌다는 동료의 말에 묵묵히 창고로 발걸음을 향한다. 창고에는 이미 계획하고 있던 듯 보그스 일당들이 앤디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떼 지어 덤벼들어 한 사람을 겁탈하려 한다. 앤디는 가루비누를 움켜쥔 채 “이건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어.”라고 위협해보지만 사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를 혼자서 당해낼 수가 없다.

보그스는 역겨운 표정으로 앤디의 저항을 즐긴다. “그래, 덤벼봐. 반항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 레드의 초연한 듯한 내레이션은 계속 이어진다. “듀프레인이 훌륭한 싸움꾼이어서 무사히 풀려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지만, 감옥은 동화의 세계가 아닙니다. 듀프레인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우리 모두는 알 수 있었죠. (……) 종종 듀프레인은 얼굴에 멍 자국이 가득한 채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니었습니다. (……) 처음 2년은 듀프레인에게는 최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계속됐다면 듀프레인은 완전히 망가졌을 것입니다.”

앤디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고통을 끌어안고 침묵한다. 그는 어떤 무리와도 섞이지 않고 무리 속에서도 홀로 은둔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구원의 손길을 자신의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어떤 패거리의 집단적 폭력도 더럽힐 수 없는 앤디의 투명코트는 과연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앤디는 분명 엄청나게 ‘모난 돌’이지만 자신에게 날아오는 망치질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보그스 일당으로부터는 성폭행을 당하고, 감옥의 다른 죄수들로부터는 ‘거만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모난 돌에게 가해지는 망치질을 당하면서도 자기 안의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감옥의 교화’로 인해 온순하게 길들여지지도, 그의 육체를 탐하는 무리의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지도 않을 것이다. 강자는 끊임없이 각자 흩어지려 하고 약자는 집요하게 서로 무리 지으려 한다. 니체가 말하는 강자, 혹은 고귀한 자는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 의탁하지 않는 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자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는 대체로 자신을 사물에 처음으로 영예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한다. 이러한 도덕은 자기 예찬이다. 그 전경에는 충만한 감정이 넘쳐흐르고자 하는 힘의 느낌, 고도로 긴장된 행복과 베풀어주고 싶어 하는 부유함의 의식이 있다. 고귀한 인간 역시 불행한 사람을 돕는다. 그러나 거의 동정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힘이 낳은 충동에서 돕는다.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276쪽.

5. 내가 떠나온 세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들이 ‘노동’을 찬미하고 ‘노동의 축복’에 대해 지치지 않고 말할 때 나는(……) 모든 개인적인 것에 대한 공포를 본다. (……) 이런 노동이야말로 최고의 경찰이며, 그것이 모든 사람을 억제하고 이성, 열망, 독립욕의 발전을 강력히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낀다. 왜냐하면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 걱정, 애정, 증오를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작은 목표를 겨냥하면서 수월하고 규칙적인 만족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사회는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전이 현재는 최고의 신성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191쪽.
도무지 길들이기 힘든 개인의 야성을 빼앗는 가장 효과적인 비결은 ‘노동’을 통해 개개인의 신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이 최고의 경찰’이라는 니체의 날카로운 성찰은, 감옥에서야말로 훌륭하게 적용된다. 감옥에서는 노동이 최고의 간수다. 숲 속을 마음껏 질주하던 야수들을 규칙적인 생활과 소모적인 노동이라는 철책에 가둠으로써, 야수들은 가축으로 훈육된다. 쇼생크의 죄수들도 이러한 ‘노동의 철책’에 감금된다. 이번에는 야외 노동이다.

죄수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노동 착취인가. 쇼생크 감옥은 앤디가 복역한 지 3년이 되던 해, 감옥 근처 공장의 지붕 보수공사에 죄수들을 동원한다. 이 보상 없는 고된 노동 뒤에는 뜻밖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감옥 바깥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점이었다. 앤디와 레드는 이 보수공사에 동원되는 행운(?)을 누린다. 감옥 바깥의 공기를 단 한 번이라도 마시고 싶은, 레드의 앙큼한 ‘뇌물 공세(간수들에게 담배 한 갑씩!)’ 덕분이었다.

고분고분하지 못한 죄수들을 폭행하는 데 엄청난 재능(?)을 선보인, 악명 높은 간수 하들리. 그는 죄수들의 노동을 감독하면서 동료 간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몇 년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친형이 얼마 전에 죽어 유산을 남겼는데, 유산이 백만 달러나 된다는 거였다. 자기 몫으로 3만 5천 달러를 남겼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나머지, 세금 때문에 ‘한 몫’ 챙기기도 힘들겠다는 투덜거림이었다. 세금이 너무 많아서 새 차 한 대 뽑을 돈 밖에는 안 남을 거라고 불평하는 하들리의 중얼거림을 앤디도 듣는다. 묵묵히 지붕 공사에 참여하고 있던 앤디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겁도 없이 하들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간수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까 걱정이 된 레드는 앤디를 말려보지만 이미 앤디는 간수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중이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앤디가 던진 질문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들리 씨. 아내를 믿으십니까?” 하들리는 갑자기 자신에게 꽂힌 난데없는 질문에 놀라 앤디의 멱살을 맞잡고 지붕 끝으로 몰아세운다. 일촉즉발의 순간, 간수가 멱살을 잡은 손만 놓으면 앤디는 지붕 밑으로 떨어져 즉사할 참이다.
하들리: 네가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앤디: (멱살이 붙들려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도 차분하게 묻는다) 아내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냐는 겁니다.
하들리: (앤디의 멱살을 더욱 바짝 잡아당기며) 계속 나불거려봐. 확실히 죽여줄 테니까.
앤디: 당신이 아내를 믿는다면 그 돈을 고스란히 가질 수 있어요. 3만 5천 달러요.
하들리: 3만 5천을 전부?
앤디: 전부요. 잔돈까지 빠짐없이 전부 다.
하들리: 설명해봐.
앤디: 아내에게 그 돈을 주는 겁니다. 국세청은 6만 달러까지는 1회 한도로 배우자 양도를 허락하거든요.
하들리: 세금으로 안 뜯어가고?
앤디: 네. 1센트도 건드릴 수 없죠.
하들리: 흥. 네가 바로 그 은행가로군.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나더러 너처럼 감옥살이 하라는 거야?
앤디: 합법적인 거예요. 국세청에 물어보세요. 똑같이 말할 거예요. 직접 조사해 보세요. (……) 그래도 서류 작성할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하들리: 제기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들!
앤디: 변호사 대신 제가 서류를 작성해 드리죠. 비용도 절약되잖아요. 서류만 가져오시면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저희 동료들에게 맥주 세 병씩만 주세요.
하들리: 뭐, 동료? 정말 웃기시는군.
앤디: 보통 사람들처럼 그저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제 조건입니다.



하들리는 앤디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한 푼도 안 드는 뜻밖의 행운을 놓칠 수 없었으니 그 ‘기묘한 거래’는 성립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예전보다 조금 젖은 듯한, 애잔한 목소리로 이어진다. “쇼생크 감옥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949년 봄. 지붕을 고치던 죄수들은 아침에 옥상에 둘러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셨습니다. 쇼생크의 악명 높은 간수가 베풀어준 뜻밖의 호의로 말입니다. 그런 냉혈한도 부드러워질 때가 있더군요. 죄수들이 온몸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지붕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니, 마치 우리가 자유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치 자기 집 지붕 위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죠. 그 순간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듀프레인은 응달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띤 채,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걸 지켜보았죠. 간수에게 잘 보이려고 했거나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그는 단지 옛날처럼 보통 사람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찬란한 희열과 가눌 수 없는 슬픔이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앤디는 ‘동료’가 권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자신은 술을 끊었다며, 다만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맞아보는, ‘감옥 바깥의 햇살’을 만끽하며. 아무도 앤디를 ‘동료’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앤디에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료였으리라.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순간, 정말 감옥 바깥에서 친구들이 시시덕거리며 맥주를 들이키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한없이 평화롭고 자유롭다. 감옥 안의 어떤 폭력과 억압도 막아낼 것만 같았던 앤디의 투명코트는 이렇게 아름다운 기적의 풍경을 연출해낸다. 꼬질꼬질하게 차려 입은 죄수들이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맥주를 마시며 함께 둘러앉아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는, 이 멋진 풍경에는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앤디가 쇼생크 감옥에 최초로 들여온 것은 단지 맥주만이 아니라 맥주보다 알싸한 자유의 바이러스였다. 그는 혼자만의 탈출을 꿈꾼 것이 아니라, 희망 없는 이곳 쇼생크에서도, 창살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처럼 따스한 자유의 틈새를, 함께 발견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이 순간, 그의 몸은 간수의 속박 아래 있었지만 그는 아무도 모르게 유체이탈을 감행하여, 지붕 위를 훌쩍 날아올라 감옥 바깥의 세상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내가 말했듯이 앤디는 보이지 않는 코트처럼 자유를 입고 다녔고 한 번도 죄수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의 눈은 결코 그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앤디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긴긴 밤을 보내기 위해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죄수의 걸음걸이-어깨는 축 쳐져 있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어놓는―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앤디는 따듯한 식사와 예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어깨를 곧게 펴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감방을 향해 걸어가곤 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물러터진 야채덩어리와 잘 으깨지지 않아서 덩어리가 그대로 있는 감자, 죄수들이 정체 모를 고기라고 부르는 비곗덩어리와 연골투성이의 고기 비슷한 것 한두 조각과 벽에 걸려 있는 라켈 웰치의 포스터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스티븐 킹, 『쇼생크탈출』 중에서.

7. 감옥에서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다
대부분의 죄수는 감옥 생활에 다만 ‘적응’하려 한다. 이미 적응된 사람은 적응을 뛰어넘어 감옥 생활에 애착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런데 앤디는 뭐가 그리 바쁜지 머릿속으로 늘 딴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도 그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그는 주어진 노동만 간신히 해내기도 바쁜 다른 죄수들과 달리, 틈만 나면 없는 일도 굳이 만들어낸다. 간수 하들리의 골치 아픈 유산 상속 문제를 해결해준 이후로 그는 감옥 안에서 인간 ― 은행이자 인간 ― 세무서가 된다. 하들리의 입소문 마케팅 덕분에 그는 주변 간수들의 모든 세금 환급을 담당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뿐만 아니라 신참 죄수 토미를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하며 감옥을 ‘학교’로 만들기도 하고, 있으나 마나 했던 유명무실한 도서관을 갈고 닦아 감옥 안의 멋진 문화 공간으로 만들기도 하며, 광활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던 감옥 전체를 멋진 음악 감상실로 만들기도 한다. 그는 감옥 안의 기계적 배치를 바꿈으로써 완고하기 그지없던 감옥이라는 기계적 공간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욕망이 꿈틀대는 역동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게 그는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한다. 그는 감옥을 마치 감각의 한계를 확장하는 실험실처럼 사용한다. 그는 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고착된 대상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레드를 ‘친구’로서 아끼지만 레드에게 끈끈한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동료를 존중하지만, 그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감옥이라는 밀폐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그로 인해 쇼생크 감옥은 점점 ‘최초의 사건들’로 가득해진다. 그가 사는 곳은 어느새 ‘단지 감옥’이 아니게 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감옥 안의 욕망의 배치를 바꿀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무슨 속셈인지 그는 지질학까지 연구한다. 주어진 감각의 경계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취미를 찾아다니는 앤디의 열정. 그것은 그의 경이로운 미래를 예언하는 정교한 복선이다.
앤디는 레드에게 체스를 가르쳐주겠다며 체스판을 구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체스판은 살 테지만 체스의 ‘말들’은 손수 깎을 것이라는 계획도 들려주며.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돌이 없어서 문제죠. 돌은 많은데 쓸모없는 것들뿐이잖아요.” 돌의 종류를 일일이 설명해주며 암석 전문가의 기질을 보이는 앤디. 속을 알 수 없는 앤디의 독특한 취미가 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레드는 앤디를 아끼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언제든 새로운 일을 벌이는 앤디로 인해 감옥 생활이 더 이상 권태롭지 않기에. 하루는 레드가 영화 『길다』의 눈부신 히로인 리타 헤이워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앤디가 다가와 어이없는 부탁을 한다. 바로 저 여자,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달라고. 모든 물품을 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레드는 앤디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다. 몇 주 걸릴 테니 기다려보라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죄수들의 영화상영관을 나오던 앤디를, 또다시 보그스 일행이 급습한다. 앤디는 주변의 모든 기물을 이용해 저항한다. 치욕스러운 포즈를 원하는 보그스의 비열한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앤디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보호한다. “보그스는 그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당도 마찬가지였죠. 앤디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때리기만 했습니다. 듀프레인은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죠. 보그스는 일주일간 독방에 갇혔습니다.” 뜻밖에도 앤디의 자원봉사에 힘입어 거액의 유산을 챙긴 하들리가 보그스를 처절하게 응징한다. “그 후로 녀석들은 더 이상 듀프레인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보그스는 못 걷게 됐죠. 병원으로 이송되어 평생 빨대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앤디로 인해 한낮의 야외 맥주라는 기적을 선물 받은 레드와 친구들은, 그동안 앤디를 도와줄 수 없었던 죄책감까지 더해져, 곧 퇴원할 앤디의 환영 선물을 마련한다. “앤디가 체스를 좋아하니까 돌을 구해주자고.” 말똥과 돌도 구분 못하던 죄수들은 레드의 지휘 아래 앤디가 평생 깎아도 남을 엄청난 돌들을 무더기로 구해다 준다. 가만히 있어도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던 ‘귀공자’ 앤디는 드디어 동료의 진정한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레드가 감옥 안의 죄수들을 위해 준비한 물품들이 도착한다. 담배, 껌, 위스키, 여자 나체 무늬의 카드……. 그 중 가장 중요한 물품은 바로 앤디가 부탁한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였다. 앤디는 보그스 일당의 상습적인 폭행 속에서도 삶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존엄을 잃지 않았다. 이제 감옥은 앤디에게 더 이상 굴욕의 공간이 아니다. 앤디는 철통같은 감옥의 질서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내어 감옥을 때로는 축제의 공간으로 때로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역전시킨다. 게다가 앤디에게는 새로운 애인(?)까지 생겼다. 레드가 구해다 준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는 마치 구원의 여신처럼 앤디의 감방을 화사하게 밝혀준다. 저 리타 헤이워드의 탐스러운 육체 뒤에 아무도 모를 앤디의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침대와 변기밖에 없는 초라한 단칸방에 수십 년간 갇혀 산 앤디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비밀의 방들’이 존재했고, 그 누구도 앤디의 ‘뇌 구조’를 쉽게 밝힐 수 없었다.


8.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고통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혹은 작은 고통에도 쉽게 절망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고통을 빨리 없애고자 한다. 고통을 제거해야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인간의 오랜 믿음을, 니체는 거부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 그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는 고통을 더 높은 강도로, 더 힘겨운 것으로 부풀린다. 주어진 위험을 오히려 극대화하는 자, 이미 넘쳐나는 고통을 천 배로 부풀리는 자, 그리하여 불행을 기꺼이 짊어진 채 불행을 샅샅이 해부하고 마침내 불행을 영혼의 창조에 이용하는 용기를 지닌 자, 그가 바로 초인이다. 불행을 피하는 데 급급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안락함, 그것은 니체가 보기에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생의 ‘종말’이다. 현재의 불행은 단지 미래의 고통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주사가 아니라,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창조적 긴장이다. 고통을 거부하는 자들이 도망쳐 가는 가장 흔한 도피처,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아, 형제들이여, 내가 꾸며낸 이 신은 다른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하고 망상에 불과했다. (……)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이 피로감이 온갖 신을 꾸며내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꾸며낸 것이다.
-니체, 정동호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2, 47쪽.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를 강조하며 이 세계의 고통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다음 세상에는 천국이 펼쳐질 테니, 지금의 고통을 묵묵히 인내하라’고 외치는 사람들, 너희가 고통스러운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성경의 등 뒤에 숨어 현재의 속물적인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평일에는 바지런히 타인의 삶 위에 군림하다가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회개’함으로써 그 모든 만행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쇼생크 탈출』의 우두머리 노튼 소장은 그런 인물의 전형이었다. 그는 죄수들의 방을 불시 검열하다가 앤디의 방에 성경이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흐뭇해한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는지 묻는 노튼 소장에게 앤디는 대답한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언제나 ‘그날’이 온 듯이 사는 앤디, 언제나 ‘그날’이 바로 지금인 듯이 사는 앤디에게는 이 문장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노튼 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말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는 마치 이 세상의 빛이 자기 자신인 양 거들먹거린다. 자신을 잘만 따르면 마치 저 세상의 천국으로 입장하는 암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듯. 현실의 삶으로 빛을 만들지 못하는 노튼은 성경의 빛에 의탁하여 도무지 빛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빛내보려 한다. 사실 노튼의 속셈은 불시 검열을 핑계로 앤디의 의중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신출귀몰한 세무 능력을 지닌, 과거의 은행 부지점장 앤디의 ‘이용가치’를 고민하는 노튼 소장. 그는 앤디의 방에 있던 성경을 무심코 가져가려 하다가 앤디에게 돌려준다. “이걸 뺏어서는 안 되지. 이 안에 구원이 있으니까.” 카메라는 앤디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성경을 의미심장하게 비춰주고, 앤디의 눈빛은 이날따라 달빛을 비춘 칼날처럼 시리게 빛난다. 성경 안에 있는 구원, 그것은 노튼 소장에게는 ‘말씀의 빛’이었겠지만, 앤디에게는 ‘말씀 이상의 무엇’이었고, 이 비밀은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자신의 재산을 부풀리는 데 앤디를 이용하기로 결심한 노튼 소장은 앤디를 쇼생크 감옥 도서관의 조수로 배치한다. 앤디의 잡무를 덜어주고 좀더 ‘손쉽게’ 앤디를 곁에 두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도무지 ‘할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쇼생크 감옥 도서관의 일인 사서이자 관장은 30여 년 동안 ‘죄수들의 독서’를 담당했던 터줏대감 브룩스였다. 브룩스는 30여 년 동안 혼자서 해도 충분했던 이 일에 ‘조수’를 붙여준 노튼 소장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도서관 업무보다도 밀려드는 간수들의 ‘재정 상담’에 바빠진 앤디는 비로소 노튼 소장의 의중을 눈치채기 시작한다. 소장보다 더 잽싸게 앤디의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발 빠른 간수들이었다. 자녀교육 신탁예금을 계획하려는 간수에게 앤디는 묻는다. “아들을 보내고 싶은 대학이 어딥니까? 하버드입니까, 아니면 예일입니까?” 간수들은 앤디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왔지만 감옥의 간수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대학을 금방이라도 보내줄 것만 같은 앤디의 듬직함에 환호작약한다. 이제 간수들은 물론 소장조차도 앤디를 무시하지 못한다.

9. 성경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쇼생크의 죄수들은 앤디의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며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한다. “간수가 죄수한테 별 아양을 다 떨더군.” “앤디가 간수들을 아주 가지고 놀았구먼?” 앤디는 털끝만큼도 우쭐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냉정하게 말한다. “난 안 그랬어. 그저 재정 자문을 해 주는 죄수일 뿐이야. 귀여운 강아지지.” 죄수들은 세탁소의 고된 잡무에서 벗어난 앤디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귀여운 강아지니까 세탁소에서도 빼준 건가?” 앤디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 이상이지, 도서실을 확장할 거야.”

그는 언제나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자신의 사용법’을 찾아낸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앤디의 두 눈에는 언제부턴가 은밀한 광채가 돌기 시작했다.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 도서 기금을 요구하겠다는 앤디의 황당한 제안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뿐이다. 죄수에게 책이 무슨 소용이냐, 그저 당구대나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죄수들. 단지 앤디가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벗어난 것을 부러워하던 죄수들은 앤디의 마음속에서 이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한 저 내밀한 ‘꿈의 지도’를 짐작도 하지 못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앤디가 결국 탈옥에 성공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탈옥시키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옥의 훈육에 길들여지거나, 감옥에서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다치거나 미치는 수밖에 없었던 죄수들에게, 앤디는 이 움쭉달싹할 수 없는 광대한 원룸, 그 어디에도 간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만 같은 치밀한 감시체계 안에서도, 우리의 욕망이 꿈틀거릴 수 있는 ‘CCTV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증명한다. 아니, 그는 무엇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는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정복자나 탐험가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영토’를 만들어 내놓고 마치 그곳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로 인해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빼고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던 쇼생크 감옥 도서관은 총천연색 문화의 향기가 넘실대는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앤디는 자신이 말 한대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노튼 소장이 말했듯이 답장이 없었습니다. 쇼생크의 간수의 절반은 듀프레인의 손을 거쳤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소장을 포함해 모든 간수들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체육대회를 핑계로 다른 지역 간수들도 모여들 정도였지요. 그들은 모두 한 해의 세금 공제를 위한 명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잘나가는 사업이었습니다. 세금 징수기에는 너무 바빠 조수가 필요했죠. 저는 기쁘게도 한 달간은 목공소 일을 쉴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라는 성경 구절을 좋아한다는 앤디.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오늘이 바로 생애 최고의 그날인 듯 살아간다. 노튼 소장도 이 구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늘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주인이 돌아올 날에 대한 노예의 공포 때문이다. 앤디는 단지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해서 잠도 들지 못하고 간신히 깨어 있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주인이 돌아올 때를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이미 주인의 머리 위에서 주인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는 자, 주인과 노예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진짜 삶이 모범이 될 수 없기에 성경의 권위를 참칭(僭稱)해야 존속되는 노튼의 권위. 앤디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장이 없는 주 의회를 향해, 소장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은 쇼생크 도서관에 도서기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한다. 몇 년 동안 일주일도 거르지 않고, 답장 한 번 오지 않는 곳에 편지를 보내는 앤디. 초인의 재능 중 가장 모방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반복’에도 ‘권태’를 느낄 줄 모르는, 지칠 줄 모르는 ‘놀이’의 열정이다. 초인은 똑같은 주사위를 천만 번 던지더라도 매번 다른 표정으로, 매번 다른 마음가짐으로 게임에 임할 것이다.
똑같은 성경을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기로가 펼쳐진다. 노튼은 성경을 무기로 성경 뒤에 숨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데 집중하고, 앤디는 성경의 말씀과 함께 성경을 ‘물질’로 이용한다. 앤디에게 성경은 또 하나의 리타 헤이워드였고, 자신의 진짜 자아를 잠시(10여 년 동안!) 은폐하기 위한 영혼의 베일이었다.

10.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형벌. ―기이한 것이다. 우리의 형벌이라는 것은! 그것은 범죄자를 정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속죄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도 범죄자를 더럽힌다.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251쪽.
감옥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어져 마치 감옥의 벽돌처럼 감옥의 일부가 된 사람들. 그 중에 브룩스가 있었다. 브룩스는 50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기에 감옥을 빼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죄수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독서를 권하는 일은 브룩스를 감옥에 갇힌 ‘죄수’라기보다 더없이 충실한 ‘사서’처럼 보이게 한다. 브룩스의 표정은 언제나 편안하고 만족스러워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어린 새 한 마리를 품안에 넣고 다니며 직접 키워 ‘제이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브룩스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그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 레드와 앤디는 브룩스가 헤이우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칼을 제대로 들고 있을 힘도 없어 보이는 브룩스는 정작 협박당하고 있는 헤이우드보다 더 두려운 표정으로 떨고 있다. “우리, 말로 하자고.” “할 말 없어. 목을 그어 버릴 거야.” “헤이우드가 뭘 잘못했어?” “그건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앤디는 침착하게 브룩스를 설득한다. “브룩스, 헤이우드를 해치지 않을 거죠? 그도 브룩스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왜 친구를 죽이려는 거죠? 날 봐요. 브룩스, 그거 내려놔요. 목을 봐요. 피가 나잖아요.” 브룩스의 날 선 눈빛은 앤디의 애정 어린 몇 마디 문장으로 무너져버린다. “이 길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브룩스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떨어뜨리고 죄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면을 받아 감옥을 나가게 된 브룩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죄밖에 없다는 헤이우드는, 억울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브룩스가 미쳤다’고 투덜거린다.

도대체 얌전하기만 하던 브룩스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죄수들에게 레드는 이야기한다. “브룩스는 교도소에 길들어졌을 뿐이야.” “길들어져?” “감옥에 50년 동안 있어봐. 바깥세상을 전혀 몰라. 여기선 브룩스가 대장이야. 모르는 게 없지. 하지만 사회에선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지.” 죄수들은 갑자기 숙연해진다. 감옥의 철책을 바라보며 레드는 말한다.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증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길들어지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어지는 거야.” 형벌의 목적은 정말 인간을 교화하는 것일까. 니체는 형벌이 인간을 계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믿지 않았다. 형벌은 인간은 단지 ‘덜 위험하게 보이도록’ 길들일 뿐이다. 형벌은 그가 저지른 죄보다 그를 더욱 망가뜨리는 폭력이다. 브룩스는 어느새 형벌의 한가운데서 삶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브룩스는 형벌에 완벽하게 길들어진 나머지 형벌이 곧 삶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형벌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감옥을 나가는 브룩스. 그러나 그의 표정은 50년 만에 자유를 찾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근속했던 회사에서 창졸간에 쫓겨나는 명예퇴직자의 허허로운 표정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시작할 만한 용기도 체력도 친구도 남아 있지 않다. 50년 만에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매정하고, 너무 무섭다. 브룩스는 그의 유일한 친구들, 죄수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렸을 적엔 차가 드물었는데 이젠 지천에 깔렸다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어. 난 가석방자 임시 거처에 기거하고 있다네. 식료품점에서 포장하는 직업도 얻었지. 남들처럼 빨리 하려고 했지만 실수만 한다네. 지배인은 날 싫어해. 일을 마치면 공원에 가서 새에게 모이를 주지. 제이크가 나타나서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 벼랑으로 떨어지는 악몽도 꾼다네. 겁에 질려서 깨어나면 때때로 내가 어디 있나 싶어. 도둑질이라도 한다면 나를 쇼생크로 보내주지 않을까? 날 다시 보내주기만 한다면 지배인을 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늙었다네.” 감옥으로 날아온 마지막 편지는 브룩스의 유서였다. 브룩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살이었지만 50년 동안의 복역 자체가 그를 ‘느린 자살’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레드는 친형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지 못한 친구를 가슴에 묻으며, 앤디에게 말한다. “브룩스는 여기서 죽어야 했어.” 이제는 얼굴조차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료 브룩스를, 레드는 그렇게 잃어버린다.




11. 노랫소리에서 비릿한 자유의 향기를 맡다
한편 앤디는 6년 동안 주 의회에 도서 기금을 요청했던 편지의 답신을 드디어 받아낸다. “당신의 거듭된 요구에 도서기금을 동봉합니다. 도서기금 200달러와 더불어 지방도서관에서 헌책과 잡동사니를 보냅니다. 이제 만족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으니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마십시오.” 앤디의 편지를 모른 척하고 싶었던 당국은 6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는 앤디의 열정에 항복하고 만다. 간수가 앤디의 성과를 축하하며 6년씩이나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치하하자, 앤디는 말한다. “겨우 6년밖에 안 걸렸어요. 이제는 일주일에 두 통씩 써야겠어요.” 간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앤디는 주 의회가 보낸 잡동사니 중에서 모차르트의 음반을 발견한다. 그는 언제나 죄수들에게 ‘명령’만 내리던 감옥의 스피커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여인의 목소리를 실어 죄수들에게 띄워 보낸다. 일일 DJ로 변신한 앤디는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까지 걸어 잠근 채 『피가로의 결혼』을 거대한 쇼생크 감옥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만든다. 난생처음 오페라를, 그것도 감옥의 스피커로 들어보는 대부분의 죄수들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들의 귓속에 울려 퍼지는 것은 단지 낯선 오페라가 아니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형태도 빛깔도 없는 자유의 바이러스가 되어 권태와 침울함에 젖어 살아온 죄수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간수는 물론 소장까지 나서서 앤디 듀프레인의 돌발적인 DJ 활동을 막아보려 애써 보지만, 앤디의 표정은 너무 평화롭고 즐거워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저 아름다운 음악을 닮아 마치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애잔한 목소리로 관객의 가슴을 데운다. “두 명의 이탈리아 여인들이 도대체 무슨 내용의 노래를 불렀는지 저는 이날까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지요.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지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말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었지요.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노랫소리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라 갔습니다. 이 잿빛 감옥에서는 도저히 꿈꿀 수도 없는 그 어딘가로, 더 멀리, 더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우리를 가두던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쇼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느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죄수들의 심장을 파고든 모차르트는 감옥의 안과 밖을 가르는 족쇄를 산산이 부수고 그들이 미처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비릿한 자유의 향기를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린다. 죄수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이 지나쳐온 모든 삶의 과정이 한 순간에 자신을 스쳐가는 듯한 가슴 저린 환상을 만끽한다. 이 음악은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이태리어’라는 ‘언어’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형태도 빛깔도 없는 무형의 메시지로 죄수들의 딱딱해진 심장을 한순간에 녹여버린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한 마리 날아와서, 우리를 가둔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았다’는 뭉클한 시적 묘사가 태어난 사연.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음악이 할퀴고 간 레드의 심장이 불현듯 꿈틀거린 흔적을, 30년 동안 쇼생크의 벽돌로 살아간 레드가 앓고 있던 영혼의 불감증이 치유된 흔적을 증언한다.
음악이 모든 사물의 진정한 본질과 맺는 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다음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어떤 장면, 줄거리, 사건, 환경에 적절한 음악이 흐르면, 음악은 그것의 가장 은밀한 의미를 해명해주는 것 같고 그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주석을 알려주는 듯한 까닭이 설명된다. 이는 어떤 교향곡이 주는 인상에 완전히 몰두한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삶과 세계의 모든 가능한 과정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개념들은 관조로부터 추상화된 형식, 즉 사물에서 벗겨낸 겉껍질만을 가지고 있어서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음악은 모든 형체들에 앞서 존재하는 내밀한 핵심, 사물의 심장을 제공한다.
-니체, 이진우 역, 『비극의 탄생』, 책세상, 2005, 124~5쪽.

12. 내 머릿속에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다
질투 없는 눈.
그래, 그의 눈에는 질투가 없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를 존경하는가?
그는 너희들의 존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는 너희들을 보지 않는다―그는 별들을, 별들만을 바라본다.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51쪽.
일일 DJ로 활동한 앤디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 편안하게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한다. 소장과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열어! 열라니까! 경고한다! 꺼라! 넌 이제 죽었어!” 노튼 소장은 믿었던(?) 앤디의 도발에 분노하고, 앤디는 2주간 독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독방은 사람은 물론 빛도 소리도 책도 없는 광막한 어둠을 마주하는 곳이지만, 2주나 독방에 갇혀 있던 앤디는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레드는 돌아온 친구에게 1주일이 1년처럼 더디게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앤디는 씩 웃는다. 난 괜찮았다고. “모차르트가 친구가 되어줬거든요.” 순진한 레드는 앤디의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독방에 녹음기를 넣어줬단 말이야?” 앤디는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을 가만히 가리킨다. “내 머릿속에 모차르트가 있었어요. 그들이 그것까지 빼앗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요?”

레드는 아주 머나먼 곳,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덧없이 회상하듯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왕년에 하모니카를 잘 불었지. 이젠 흥미를 잃었어. 도무지 감흥이 안 나서.” 앤디는 곧바로 레드의 말꼬리를 붙잡는다. “감흥을 느끼는 데는 감옥이 제격이죠. 왕년의 그 하모니카 소리를 잊지 않도록 가끔 불어보세요.” 앤디는 천연덕스럽게 감옥이야말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데 적당한 장소라며 미소 짓는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도 있어요. 그 안쪽까지는 저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죠. 건드릴 수도 없어요. 그건 오직 당신만의 것이니까요.” 레드는 앤디의 투명한 눈빛에 서린, 달콤하지만 불온한 상상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앤디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말한다. “희망이요.” 레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마치 ‘금기어’를 들은 듯이 정색을 하며 앤디에게 경고한다. “희망? 내가 충고 한마디 할까? 희망은 위험한 존재야. 사람을 미치게 하지. 감옥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레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앤디를 바라보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하모니카의 슬픈 환청이 망각의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하다. 레드의 가처분 심사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심사위원들은 도살장의 쇠고기 등급을 심사하는 듯 냉혹한 눈빛으로 레드를 샅샅이 훑어본다.


“당신은 30년 동안 복역했소.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됐나요?” 레드는 평소와 달리 긴장된 눈빛과 경직된 말투로 심사에 임한다. “물론입니다. 전 옛날의 제가 아닙니다. 위험한 존재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전 완전히 교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이 ‘부적격(rejected)’ 판정이다. 가처분 심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종신형 죄수를 고문하는 또 하나의 형벌이다. 레드가 복역한 지 30년, 앤디가 복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앤디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레드에게 전해준다. “이거 가처분 불합격 선물이에요. 뜯어봐요.” 레드가 한때 멋들어지게 불었다는 하모니카였다. 한가로이 하모니카를 부는 레드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앤디의 심정을 알면서도, 레드는 지금은 불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모니카는 잊고 있었던 바깥세상을 일깨워줄 것이며, 앤디의 머릿속에 사는 모차르트가 일깨운 위험한 자유의 공기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레드는 그 희망의 냄새를 다시 맡는 것이 새삼 두렵다. 레드는 다음에 불어보겠다고 이야기하며 쓸쓸히 웃는다.


13.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대다
앤디는 정말 일주일에 두 번씩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쇼생크 도서관을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한 앤디의 ‘허황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앤디가 쇼생크에 입성한 지 13년째 되던 1959년, 드디어 주 의회는 200달러만으로는 앤디의 끈질긴 편지 공세를 무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주 의회는 매년 500달러씩 쇼생크 도서관에 보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앤디는 주 의회의 생색내기용 일회적 지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적 지원을 바랐다. 아마 그가 떠나도 쇼생크에 계속 ‘우리 안의 모차짜르트’를 들려줄 DJ가 필요하다고, ‘우리 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불러내 줄 수많은 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상상한 것이 아닐까.

앤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와 교섭하고 재고서적을 싸게 구입하여 쇼생크 도서관을 당대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는 쥐똥이 득실거리는 창고를 개조하여 쾌적한 감옥 도서관을 만든다. 이제는 ‘친구’가 된 동료와 함께. 죄수들은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며 쇼생크 감옥을 새로운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앤디는 단지 책이라는 물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책 속에 기록된 형체 없는 희망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회색 공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위험한 선동을 구입한다. 그는 이렇게 감옥 안에서는 가장 위험한 무기인, ‘희망’을 차입해온 것이다.

노튼 소장도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번창시켜, 죄수들을 사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는 허울 좋은 공익사업에 착수한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미명 하에, 그는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쇼생크의 죄수들을 감옥 밖에서 ‘임금 없는 노동자’로 착취할 계획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죄수들의 ‘노동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며 노튼 소장을 유명인사로 만든다. “죄수들은 담장 밖에서 노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겠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에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인건비와 자재비 등 엄청난 ‘외부의 돈’이 감옥으로 굴러들어 오기 시작했고, 노튼 소장은 거의 무한한 ‘제로 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엄청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건설 수주를 따준다는 명목으로 뇌물까지 수수하는 노튼의 비리 행각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뒷거래 배후에는 검은돈이 뒤따랐고, 이 무시무시한 돈들을 청결하게(?) 세탁하는 임무는 앤디의 것이었다.


앤디는 노튼 소장의 돈세탁이라는 꺼림칙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레드에게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 비법까지 공개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인다. “꿈에도 생각 못할 수를 써서 등을 쳐요. 더러운 돈이 이곳을 통해 나가요. (……) 주식, 은행예금, 채권을 이용해서 제가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불려주죠. 노튼이 은퇴할 때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거예요.” 레드는 혀를 내두르며 걱정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꼬리가 길면 의심받아. FBI든 세무국이든 누군가 눈치챌 거야.” 앤디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봐야 저도 소장도 의심 안 받아요.” “그럼 누구야?” “랜달 스티븐스!” “누구라고?” 랜달 스티븐스라는 낯선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사귄 절친한 벗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든든한 표정을 짓는 앤디. “말 없는 파트너죠. 돈세탁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이름밖에 안 나와요. 가상의 인물이죠.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제가 만들었어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죠.” 레드는 소스라친다.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제도의 허점을 알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랜달 스티븐스는 출생증명도 있고 운전면허에, 사회보장번호도 있는 걸요. 어떤 계좌를 추적한다 해도 내 상상의 단면밖에 못 찾아요.” 레드는 앤디의 신출귀몰한 기술에 놀란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젠장, 내가 널 좋은 놈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잖아?” 앤디는 웃으며 대답한다. “맞아요. 더 웃기는 건 내가 사회에 있을 땐 오히려 정직했다는 거예요. 전 사기꾼 되려고 교도소에 왔나 봐요.” 이제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앤디의 여유로움 뒤로 신비로운 음모의 냄새가 배어나온다. “그 일 덕분에 쇼생크 도서관을 확장했고, 동료에게 고등학교 과정도 가르칠 수 있었어요.”


앤디는 성격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인 돈세탁을 하면서도, 그의 몸짓은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고 기품마저 넘실거린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인하고 신념에 찬 쾌활한 모습.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지 모차르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침묵의 파트너 랜달 스티븐스. 그와 함께 앤디는 무언가를 은밀히 계획하는 중이다. 아니, 모차르트나 랜달 스티븐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머나먼 그 무엇을 향해, 앤디의 눈은 서늘하게 빛난다. 그는 지금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거대한 휴화산이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의 분출. ― 인류가 예전의 단계에서 획득한 무수히 많은 것들, 그러나 너무 미약하고 미숙한 단계에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오랜 후에, 아마도 수 세기가 흐른 후에 빛을 보게 되는 경우. 그 사이에 그것이 강하고 성숙해진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달리 비유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이후에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도.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79쪽.

14. 억울한 누명의 진실이 밝혀지다
예언자적 인간이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훌륭한 “재능”이 주어졌으며, 그대들도 이 재능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 그래서 나는 비유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 동물들이 대기와 구름의 전기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겠는가! 동물 중의 몇몇 종들은 날씨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례로 원숭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들을 예언자로 만든다는 것은 ―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양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구름의 영향으로 인해 음전기로 변하여 날씨의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이 동물은 마치 적이 다가오고 있기나 한 것처럼, 방어 자세나 도주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은 어딘가로 숨어든다. 그들은 악천후를 날씨가 아니라 적의 손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89쪽.
레드가 쇼생크의 최고참이 되고 앤디가 쇼생크의 중견이 되는 동안, 쇼생크에는 끊임없이 신참 죄수들이 입성한다. 토미는 바로 그 신참 죄수 중 하나였다. 토미는 텔레비전을 훔치다가 들켜 무단침입죄로 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온다.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토미는 순식간에 쇼생크의 마스코트가 된다. 도둑질조차 서툴렀던 토미는 좀도둑질을 하다 매번 붙잡혀 어린 시절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토미의 넉살 좋은 수다를 듣고 있던 앤디는 불쑥 충고를 한다.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는 게 어때? 자네는 도둑질도 잘 못하니 다른 걸 해보라는 거야.”

토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생각하며 앤디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죄수들의 학업을 도와주며 쇼생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던 앤디는 토미의 개인교습도 도맡기로 한다. 문맹이었던 토미를 위해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앤디. 토미는 빠른 속도로 고교 과정을 습득하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토미였기에 배움은 더욱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앤디는, 자신으로 인해 매일매일 변해가는 토미를 자식처럼 아낀다. 토미를 가르치는 것은 앤디가 기획하고 있었던 어떤 문화 사업 프로젝트보다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배움에 대한 아무런 열망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토미가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는 것,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던 인간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누군가가 나 때문에 삶의 노선 전체를 바꾼다는 것. 그 모두가 앤디에게는 또 하나의 감미로운 모차르트였고, 또 다른 희망의 뮤즈였다. 레드는 토미를 향한 앤디의 열정을 이렇게 해석한다. “감옥의 하루는 매우 길죠. 그래서 집중할만한 게 있어야 합니다. 어떤 죄수들은 성냥 쌓기도 하죠. 듀프레인은 쇼생크 도서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죠. 바로 토미였습니다. 수년간 갖가지 돌을 깎고 다듬은 이유도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앤디는 여배우 사진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앤디가 토미를 자식처럼 가르치고, 조각가 못지않게 돌을 연마하고, 여배우 포스터를 수집한 것은 단지 감옥의 권태를 견디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 후 토미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보고 나서 스스로 시험을 망쳤다고 판단하며 절망한다. 그런 토미를 위로해주는 레드. 토미는 시험을 망친 것보다 앤디 실망시켰을까 봐, 그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앤디가 실망했겠죠?” “그렇지 않아. 앤디는 자네를 늘 대견하게 생각한다네. 우린 오랜 친구라서 내가 잘 알지.” 앤디가 사회에 있을 때는 최고의 은행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레드. 토미는 앤디가 아내를 살인한 죄로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래, 앤디는 살인을 할 사람은 아니지. 침상에 있던 아내와 정부를 총으로 쐈다고 하더군.” 토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는다. 앤디를 불러 자신이 아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는 토미.

“4년 전 토마스톤 감옥에 있을 때였어요. 전 자동차를 훔쳤어요. 바보 같은 짓이었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새 식구가 들어왔어요. 엘모 블래치였죠. 미치광이 같았어요. 아무도 그런 작자랑 방을 같이 쓰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는 6년 형을 선고받았죠. 도둑질만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 어느 날 밤에 제가 그에게 물었죠. 살인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토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살인자 엘모 블래치의 끔찍한 고백이 시작된다. “딱 한 번 저질렀지. 컨추리 클럽에서 돈 많아 보이는 대상을 물색했어. 한 남자를 골랐지. 밤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가서는 한탕 했다고. 그놈은 잠이 깼는지 나한테 대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죽여 버렸지. 옆에 있던 여자도 같이 말이야. 이 대목이 중요해. 그 여자는 골프선수와 자고 있었어, 결혼한 여자였는데 말이야. 그 여자의 남편은 성공한 은행가였지. 남편이 내 대신 죄를 뒤집어썼어.”
엘모 블래치의 잔인한 미소와 앤디의 당혹스런 표정이 오버랩된다. 앤디의 지난 19년 감옥생활, 그 모든 것이 끔찍한 누명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19년. 갓난아기가 태어나 어엿한 성년으로 자랄 만한 시간, 감옥에 갇힌 한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 그리고 앤디에게는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을 거쳐 ‘라켈 웰치’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타 헤이워드’는 반란의 시작을, ‘라켈 웰치’는 반란의 끝을 장식하는 앤디만의 암호였다.


15.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앤디는 비로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깨닫고 노튼 소장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한다. 토미의 증언이 있으면 자신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앤디를 자신의 ‘충직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석방이 곧 자신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살인자는 지금 어디 있다고 하던가? 그자가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으니 벌을 대신 받겠다고 할 줄 아나?” 그는 앤디를 설득하려 하지만 앤디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토미의 증언이면 다시 재판 받을 수 있어요.” 노튼 역시 필사적이다. 앤디가 쇼생크를 떠나는 순간 자신의 호시절이 끝날 것이라는 예감에 몸을 떤다. 19년 무고한 감옥 생활 동안 한 번도 분노하지 않았던 앤디는 드디어 폭발한다. “제 인생이 달렸다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옥 밖으로 나가도 ‘돈세탁’에 관련된 일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앤디의 말에 노튼은 결정타를 맞는다. 앤디를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노튼은 자기 인생을 정작 좌지우지하는 것은 앤디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앤디가 없다면 그의 모든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앤디는 ‘한 달간 독방 감금’이라는 쇼생크 감옥 역사상 최고의 형벌을 받고, 앤디가 그토록 아꼈던 토미는 앤디를 석방하지 않으려는 노튼의 흉계로 목숨을 잃고 만다. 토미가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생애 최고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끽한 직후였다.

앤디는 1달 동안의 독방 생활 동안, 그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망상들을 죽인다. 노튼 소장은 자신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 법의 힘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는 환상,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죽인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 태어난다. 그에게 토미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지만, 그 동아줄은 향기로운 만큼 더없이 위험한 미끼였다. 토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실낱같은 환상을 일깨운 토미는 그에게 아름다운 유혹이었던 셈이다. 그는 토미의 죽음을 통해 자신 안에 있었던 마지막 망상을 죽인다. 토미의 죽음은 더 없는 슬픔이었지만, 앤디 안의 또 다른 앤디의 죽음은 기쁜 죽음이었다. 쇼생크의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반란이 비로소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그 모든 적들보다도 가장 무서운 적,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순간, 초인의 새벽은 밝아온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므로.

모두에게 그렇듯 니체에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씁쓸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모든 거친 질료들을 씹어서 자기 신체의 구성 요소가 될 때까지 향유할 줄 아는 건강한 사유자였다. 그는 죽음에서 슬픔이 아닌 기쁨의 요소를 발견한다. (……) 그는 죽음에서 소멸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먼 신비를 발견한다. 기쁘고 명랑한 죽음이 있으며, 이 죽음을 다른 말로는 생성이라고 부른다. 후일 그는 이런 생성의 기쁨을 찾아가는 사유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했다.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2007, 28쪽.

16. 절망에 빠진 이의 넋두리?
우리 청각의 한계. ―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31쪽.
노튼 소장은 전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앤디를 협박한다. 그는 앤디를 더욱 충실한 개로 만들기 위해 토미를 죽이고도 천연덕스럽게 뻔뻔한 거짓말을 읊어댄다. “토미 말이야. 출옥이 1년도 안 남은 놈이 탈옥하려고 하다니 어리석은 짓이었어. 하들리도 쏘며 괴로워했지. 그 문제는 끝났네. 이제 우리 일을 해야지.” 1달 동안의 독방 생활로 걷잡을 수 없이 초췌해진 앤디는 소장의 제안을 거부한다. “난 안 하겠습니다. 모든 게 끝났어요. 다른 사람을 시키세요.” 노튼은 더욱 잔인한 미소로 앤디를 옥죈다. “끝난 건 없어. 끝나면 넌 살아가기 힘들 거야. 간수 보호도 못 받아. 내가 그 감방에서 끌어내면, 넌 또다시 강간당할 거야. (…) 도서관도 마찬가지야.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폐쇄할 거야. 책들을 마당에서 태우면 수마일 밖에서도 연기가 보일 테지. (……) 한 달만 더 있으면서 생각해봐.” 노튼 소장은 앤디가 입고 있던,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완전히 벗겨 내 그를 서글픈 알몸으로 홀로 서 있게 할 작정이다. 앤디는 다시 텅 빈 독방에 갇힌다. 앤디가 고통 속에서 창조해낸 모든 것을 말소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힘겹게 독방에서 풀려나온 앤디 옆에는 언제나처럼 레드가 앉아 있다. 앤디는 전에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아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내는 저에게 말했죠. 난 이해하기 힘든 남자라고. 내가 좀처럼 속마음을 안 드러낸다고 항상 불평했지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전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어요. 다만, 그걸 표현할 줄을 몰랐지요. 내가 그녀를 죽게 했어요.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지만 제가 죽게 만든 거예요.” 죄 없이 감방에 갇힌 19년 세월도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을 지우진 못했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내의 살인범으로 몰려 무려 19년 동안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는 풀려나오지 못했지만 적어도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자유나마 얻게 되었다.

“네가 살인자는 아니잖아. 나쁜 남편이긴 했지만.” 앤디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옷자락을 붙들지는 못함을 안다. “레드. 당신은 석방될 것 같으세요?” “나? 흰 수염이 나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때야 나갈 수 있겠지.” 앤디는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던 자신의 꿈을 말한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지후아타네오예요.” 앤디의 몽환적이지만 더없이 진지한 표정에 레드는 당황한다. 독방에 두 달 동안 갇히는 초유의 형벌 앞에서, 앤디가 입던 무적의 투명코트도 효력을 잃은 것일까. “지후…… 뭐라고?”
“지후아타네오. 멕시코에 있어요. 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이죠. 멕시코 사람은 태평양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추억이 없는 곳이라고 해요. 그곳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요.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바닷가에 조그만 호텔을 열고 낡은 배를 사서 수리한 다음 손님들을 태우고 낚시를 하는 거지요. 지후타네오. 그곳에선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레드는 쓴웃음을 짓는다. “난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살았지.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도 이제 길들어졌어. 브룩스처럼.” 앤디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거두고 레드를 바라본다. “자신을 비하하지 마요.” 하지만 레드는 이미 체념한 듯한 표정이다. “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라. 태평양? 엿이나 먹으라지! 난 큰 바다를 보면 빠져 죽을까 봐 겁부터 날 거야.” 앤디는 굳은 표정으로,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말한다. “난 아니에요. 난 내 마누라도 정부도 쏘지 않았어요. 난 내 실수보다 더 많은 걸 보상받을 거예요. 호텔과 보트……. 그 정도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레드는 전에 없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앤디의 정신 건강이 걱정된다. “자신을 학대하지 말게, 친구. 실현될 수 없는 꿈이야. 멕시코는 저 멀리 있다고.” 앤디는 마치 유언을 하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지요. 멕시코는 저 멀리, 난 여기 있죠. 선택은 간단해요. 열심히 살던가, 빨리 죽던가.” 흠칫 놀라는 레드에게 앤디는 부탁한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나가거든 부탁이 있어요. 벅스톤 근처에 풀밭이 있어요. 거대한 오크나무를 끼고 긴 돌담이 있는 곳. 프루스트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요. 그곳에서 아내에게 청혼했어요. 우리는 함께 소풍을 가서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아내는 내 청혼을 받아줬죠……. 당신이 나가면 그곳을 찾아줘요. 담 아래를 보면 특이한 돌 하나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까만 흑요석이에요. 그 돌 아래 뭔가가 있을 거예요.” 앤디는 지금 스스로 미래를 만들고 있다. 흑요석 아래에 그가 담을 메시지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 레드와의 ‘약속’을 통해 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앤디의 진심을 알 리 없는 레드는 더럭 겁이 난다. 마지막 유서를 남기듯 절절한 그의 메시지는 레드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른 죄수들도 앤디를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듀프레인 말이야.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밤에는 꼭 혼자 있잖아.” 헤이우드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털어놓는다. “맙소사. 듀프레인이 오늘 나한테 와서는 밧줄을 구해 달랬어.” 레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밧줄?” “응. 2미터 길이로 말이야.” 아직 앤디의 계획을 모르는 관객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은 브룩스다. 브룩스처럼, 절망에 빠진 앤디가 목숨을 놓을까 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관객을 살짝 속이기 위한 거짓 복선. 그날 밤, 아무리 걱정되어도 앤디의 방을 찾아갈 수 없는 처지인 레드는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을 보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속삭이던 앤디의 표정과 브룩스의 유언이 담긴 마지막 편지와 헤이우드가 전해줬다는 밧줄이 머릿속에서 ‘공포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듯하여, 레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17. 이 책에 구원이 있었소
다음날 쇼생크 감옥 초유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앤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가장 피가 마르는 것은 노튼 소장이다. 앤디와 가장 친했던 레드를 붙들고 늘어지는 소장. “늘 같이 있었잖나? 뭔가 말한 게 있을 텐데?” 레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적이 일어났군. 귀신처럼 사라지다니! 흔적도 없이! 돌 몇 개와 여자 사진만 남겨놓고!” 소장은 길길이 날뛰다가 앤디의 방 여기저기로 돌을 집어던지고 그러다가 라켈 웰치의 멋진 포스터를 맞힌다. 그 순간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 이후로 앤디의 방을 늘 지키고 있었던 여신의 육체가 숨겨준 비밀의 문이 드러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드디어 앤디의 머릿속에 살고 있던 모차르트를, 앤디가 늘 입고 다니던 투명코트의 비밀을 통쾌하게 누설한다. “1966년 듀프레인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했습니다. 진흙 묻은 죄수복이 발견되었죠. 비누 한 개랑 닳아서 해진 망치 하나도 발견되었죠. 굴을 파려면 600년이 걸릴 걸로 생각했던 그 망치 말입니다. 그에게는 20년도 안 걸렸죠. 그는 지질학을 좋아했습니다. (……) 오랜 시간에 걸쳐 압력과 지질을 연구한 거죠.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합니다. 터널을 파는 것도 압력과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포스터는 터널의 입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지요. (……) 듀프레인은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을 500미터나 기어갔습니다. 저라면 안 했을 겁니다. 500미터라니. 축구장 5개만 한 길이죠.”



“포스터의 비밀이 벗겨지던 바로 그 순간 한 신사가 주 은행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류상에만 존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랜달 스티븐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없는 게 없었습니다. 서명마저 똑같았죠. (……) 듀프레인은 그날 아침 은행을 12군데나 들렀습니다. 소장의 돈 37만 달러를 찾아갔습니다. 죄 없는 옥살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었죠.” 앤디는 은행 직원을 통해 소장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기록한 보도 자료를 보내고 포틀랜드 신문에는 『쇼생크-타락과 살인의 온상』이라는 폭로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한다. 우리의 친절한 앤디 씨는 소장에게 상큼한 작별의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장 말이 옳았소. 이 책에 구원이 있었소.” 소장이 늘 ‘돈세탁’의 근거지로 사용하던 금고 속에는 소장의 성경과 앤디의 성경이 은밀하게 바꿔치기 되어 있었다. 물론 앤디의 소행이다. 소장이 한때 빼앗을 뻔했던 앤디의 성경 속에는 구원의 망치를 숨겨놓는 비밀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파랗게 질린 소장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지가 ‘체포 아니면 죽음’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소장에게 성경이 ‘악행의 은밀한 알리바이’였다면 앤디에게 성경은 ‘엑소더스를 향한 무기’였던 것이다.

“노튼 소장, 체포 영장 가져왔소. 문 열어요!” 소장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가 결국 그 총신을 자신의 목에 겨눈다. 앤디는 자신만 탈옥한 것이 아니라 ‘노튼 소장 재임기’의 쇼생크의 통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 것이다. 죄수들은 앤디를 그리워하면서도 앤디의 목격담을 통쾌한 영웅 서사로 치장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동료에게 맥주를 달라는 조건으로 자신의 금융 관련 지식을 기꺼이 내다 팔았던 앤디, 쇼생크 도서관을 짓고 죄수들의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의 충견 노릇도 마다치 않았던 앤디……. 누구보다도 앤디를 그리워하는 것은 레드였다. 가족이나 연인 못지않게 서로를 아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떼어놓을 수 없는 영혼의 분신이 되어 있었다. 앤디는 멕시코 국경을 넘기 직전 레드에게 소인만 달랑 찍힌 빈 엽서를 보내고 레드는 앤디의 무언의 메시지를 이해한다. “그의 빈자리는 때로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새는 가둘 수 없다는 걸 떠올려야만 했죠. 새의 깃털은 눈부시게 아름답죠. 새들이 비상하는 기쁨을 뺏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래도 저는 허전했습니다. 제 친구가 그리웠죠.” 30년 넘게 복역했던 레드는 드디어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고, 브룩스가 잠시 머물다 죽었던 바로 그 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18.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레드는 브룩스의 안타까운 죽음과 앤디의 믿을 수 없는 탈주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트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가도 될까요?”라고 묻는 레드에게 지배인은 말한다. “일일이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가시라고요.” 레드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40년 동안은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허가 없인 한 방울도 쌀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죠. 일부러 죄를 지어 쇼생크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었죠. (……) 내가 원하는 건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두렵지는 않으니까요. 제 발목을 잡은 한 가지는 앤디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주거지를 이탈하여 앤디가 말했던 벅스톤으로 떠나는 레드. 프루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가지 않은 길’을 현실에서 만난 듯한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레드가 만난 것은 바로 30년 감옥 생활 끝에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앤디가 말했던 흑요석 밑에는 그가 정성 들여 쓴 편지와 ‘자유의 땅’으로 떠나기 위한 여비가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멀리 오셨을 테니 좀 더 멀리 오셔도 상관없겠죠? 그 도시 기억하시죠? 지후아타네오. 저와 함께 사업을 꾸려갈 친구가 필요하답니다. 보고 싶어요.”


레드는 생애 두 번째로 죄를 짓는다. 주거지 이탈. 앤디의 편지는 레드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한 번도 마음껏 꿈꾸지 못했던 자기 안의 희망이었음을 레드는 깨닫는다. “너무 흥분돼서 앉아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유를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이었죠. 결과가 불확실한 긴 여로에 오른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친구를 만나 악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꿈속에서처럼, 태평양이 파랗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희망합니다.” 한 번도 태평양을 직접 보지 못한 레드의 눈빛은 저 아름다운 지후아타네오를 목격하자마자 앤디의 꿈을 한순간에 이해한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독방에서도 늘 지후아타네오를 생각했던 앤디의 꿈을,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던 앤디의 꿈을. 앤디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기에 아무도 다다르지 못한 대답에 다다른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것.
너는 무엇을 믿는가? 모든 사물의 중량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의 양심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동정(同情)에.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의 희망을.
너는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가? 항상 모욕하려 하는 사람을.
네게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것.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50~251쪽.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던 한때 레드는 자기혐오에 빠졌고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긴 제약을 스스로의 무능력으로 오인한 것이다. 앤디는 가장 절망적인 인간들로부터도 자신의 희망을 읽어냈고, 최고의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고의 고통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앤디는 모두가 포기해버린 질문, 생각하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져서 질문하기조차 싫어하는 질문을 매일 던졌다. 19년 동안.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감옥의 철책을 스스로 무화시켰다. 그는 단지 제 한 몸 탈옥한 것이 아니라 쇼생크에 있는 사람들, 쇼생크처럼 스스로를 잿빛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주인이 되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강간과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낮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임무보다 항상 초과근무를 하며 쇼생크 감옥에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었고, 밤에는 마치 텅 빈 독방에 따스한 수프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만든 진정한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미녀 포스터 뒤에 동굴의 형태로 아로새겨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희망을 가꾸기 위한 제의를 20년 가까이 홀로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닳아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그 작은 망치로, 쇼생크를 탈출하려면 600년은 족히 걸릴 것만 같았던 작은 망치만으로도.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왠지 뒤통수가 가렵다. 앤디를 괴롭히던 감옥을 바라볼 때는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여겼던 관객들은 이제 앤디가 떠나버린 지후타네오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이 감옥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흔쾌한 의심이니 마음껏 던져도 좋다. 마음속에 앤디의 아름다운 탈주를 보듬은 사람들은, 우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 모든 중력의 악령과 싸우는 용기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 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탈주를 꿈꾸는 밝은 눈이, 죽음조차 죽여버리는 우리의 용기만이, 우리 안에 잠자는 저마다의 모차르트를 깨우고, 우리 안에 숨겨진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권태로운 침묵의 옷장에서 끄집어낼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네 문을 활짝 열어두어라!
낡은 것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너도 한때는 젊었지만, 이제-훨씬 더 젊다!
(……)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내 자신의 혈연이며 함께 변해간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
그들도 늙어버리고 쫓겨났다:
오직 변하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
(……) 이미 밤낮으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네,
새로운 친구들이여! 어서 오라! 때가 왔다! 때가 온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축하하며, 하나로 뭉친 승리를 확신하고,
축제 가운데 축제를 한다:
친구 짜라투스트라가 왔다, 손님들 가운데 손님이!
이제 세계는 웃고 끔찍한 커튼은 찢기고,
빛과 어둠을 위한 결혼식이 다가왔다…….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319~32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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