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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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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1.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행동은 오직 반항의 대가로만 존재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어린 시절 동화를 읽고 나면 종종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결말의 주인공의 되지 못한 존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그들은 어른들의 말처럼 죽거나 사라지거나 개과천선(改過遷善)했을까. 내 마음속 네버엔딩 스토리 공화국에서는 백설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준 마녀가 아직도 복수심을 삭이지 못하고 새로운 음모를 준비하고 있었고, 신데렐라처럼 왕자와 결혼하지 못한 심술쟁이 언니들이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채 결혼 시장을 헤매고 있었으며, 해님이 되고 달님이 된 오누이를 놓치고 썩은 동아줄을 붙잡아 추락사한 호랑이가 다시 살아나 어디선가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마녀들, 괴물들, 악당들이 때로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더 매혹적인 공상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그들은 정말 도저히 구제불능인 천하의 악역들이기만 했을까.

 

 

 

 

우리가 읽은 동화를 대부분이 어린이를 교화시키기 위해(?)’ 각색되고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꿈틀대던 악녀들과 괴물들이 더욱 마음 놓고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영원한 징벌의 대상으로 굳어져버린 악역들에 대한 호기심이 탄력을 제대로 받아 아예 동화의 내용 자체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진짜 잘못은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아니라 마녀를 파티에 초대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엄지 공주 이야기에서 엄지 공주의 간택을 받지 못한 두꺼비와 풍뎅이와 두더지 총각들은 정말 엄지 공주 같은 퀸카의 사랑을 영원히 받지 못할까. 헨젤과 그레텔에서 아이들을 삶아 먹으려던 노파는 정말 마녀였을까. 동화 속에서 악인으로 처벌받는 존재들은 마음속 네버엔딩 스토리 공화국에서는 아직도 죽거나 사라지지 않은 채, 좀처럼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무의식의 영토에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날조된 동화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에게 슈렉은 정말 반가운 작품이었다. 동화 날조의 달인들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월트 디즈니 공화국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에. 식인 괴물 오거(ogre)를 자칭하는 슈렉(shrek)은 별로 무섭지 않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동화 속에서 끝내 버려지고 짓밟히는 괴물의 기본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동화 나라에서 추방된 온갖 생물들이 슈렉의 서식지인 (swamp)’으로 도망 와서 난민촌을 형성하는 설정도 흥미진진했다. 그 모든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서 미처 완전히 정리되거나 삭제되지 않은, 좌절되고 망각된 우리 안의 욕망들의 총집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길들여지는 인간.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토록 방대한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야생의 갈증과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성이 공존한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했던 것들의 잃어버린 가능성을 탐구한다. 우리의 바람직한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버려진 역겹고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그녀는 아브젝트(abject)’라고 불렀다. 슈렉은 바로 그 버려진 존재, 아브젝트를 코믹하게 구현해낸 성공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슈렉은 지상의 모든 남녀를 백마 탄 기사를 기다리는 공주공주를 구출하는 멋진 왕자로 육성하려는 동화의 낭만적 환상을 첫 장면에서부터 와르르 무너뜨린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저주가 걸려 있었답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첫 키스만이 이 저주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에 갇혀 있었고 무서운 불을 뿜는 용이 그녀를 지켰습니다.

많은 용감한 기사들이 그녀를 구철하려고 시도했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용의 성에서 기다렸습니다.

가장 높은 탑의 맨 위에서 그의 사랑과 키스를 기다렸습니다.

-영화 슈렉중에서.

 

 

 

 

슈렉은 뒷간에서 큰일을 보던 중 이 동화를 읽다가 다음 페이지를 쭉 찢어 휴지로 사용한다. 슈렉에게 그런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란 얼간이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슈렉은 자신을 스스로 악당의 자리, 괴물의 자리에 고립시킨다. 어차피 정상인들의 세계에서 환영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할 존재이니 타인에게 사랑받는 통로를 아예 차단해버리고 세상에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다.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는 세상의 냉대를 참다못해 스스로를 유배시킨 슈렉의 숨은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알아봐 준 존재다. 동키 또한 주인의 말을 잘 듣고 묵묵히 일하는 바람직한 당나귀가 되지 못하고 주인에게 버려진 존재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슈렉의 상처에 공감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중 그 누구도 장애, 금지, 권위 또는 법률과 맞서지 않고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반항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행복의 개인적 경험을 동반하여 나타나는 반항은 쾌락의 원칙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 소외 계층이 반항의 문화를 갖지 않고, 쾌락의 요구를 결코 만족시켜주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쇼와 오락 등에 안주해야 할 때, 그들은 폭도가 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박선영 역, 정신병 모친 살해 그리고 창조성, 아난케, 2006, 14.

 

 

 

 

 

2. 괴담 주인공의 실체

 

 

아브젝트(abject)’는 우리가 혐오하고, 거부하고, 거의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큼한 배설물, 심지어는 어머니의 과격한 포옹도 여기에 속한다.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2.

 

 

사람들은 날 보면 하다 못해. 으악! 못생기고 냄새나는 괴물이다!” 슈렉은 한 번도 이름을 제대로 불려보지 못한 존재다. 이름 불린다는 것.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문턱이다. 이름 불리지 못하는 슈렉은 단지 괴물일 뿐이며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 괴물 주의! 괴물 수배 중! 현상금 있음! 그가 사는 주변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팻말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현상금이 걸린 괴물을 잡으려고만 하고 아무도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여기는 파쿼드(Farquaad) 영주가 지배하는 화려한 도시의 바깥, 괴물 슈렉이 혼자 사는 늪지대다.

 

 

 

 

엄청난 길이의 키 높이 부츠를 신고 말을 타고 다니는 전형적인 마초형 남성 파쿼드 영주. ‘조금 짧은 다리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와 타인을 향한 무한한 지배욕으로 똘똘 뭉친 파쿼드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 아직 왕이 되지 못한 파쿼드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여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슈렉은 이런 골치 아픈 세상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혼자만의 칩거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늪지대에 넘쳐나는 지저분한 진흙으로 샤워하고 동화책은 화장실 휴지로 써버리면서. 사람들은 슈렉을 잡아 현상금을 나눠 가지려다가 슈렉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혼비백산(魂飛魄散)한다.

 

 

그 괴물은 뼈를 갈아서 아침 식사로 먹는다고 하던데!”

그건 거인이에요. 괴물 오우거(ogre)는 더 잔혹하죠. 사람의 가죽을 벗겨서 수프를 만듭니다. 내장을 자르고 눈에서 젤리를 뽑아냅니다! 사실 눈에서 뽑아낸 젤리는 토스트에 발라 먹으면 맛있어요.”

 

 

 

 

슈렉은 자신을 잡으러 몰려온 사람들을 엄청난 입 냄새 폭탄으로 순식간에 몰아내고 평화로운 은거 생활을 즐기려 한다. 그는 괴물은 무섭다는 막연한 뜬소문을 역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슈렉에 대한 무지와 소문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 때문에 슈렉을 제대로 대면하기도 전에 도망쳐 버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각종 괴담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상상보다 훨씬 덜 무섭고, 덜 잔혹하며, 덜 해롭다. 진짜 공포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역겨운 것들을 몰아내려는 문명화된 인간의 관습이 아닐까.

 

 

 

 

 

3. 동화 속 생물들이 모여든 곳

 

 

바람직한 주체로 사회화되기 위해 현대인은 자기 안의 수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나다운 것의 경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다 깨끗하고, 보다 적절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야생적 본능을 버려야 한다. 부패한 우유, , 구토물, 시체들을 보고 구역질을 참지 못하듯이 우리는 한때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억압하거나 배설해버린 욕망을 자아의 경계 바깥으로 멀리 추방하고자 한다. 크레스테바는 이렇게 문명화한 현대인의 자아, 그 경계바깥에 추방된 존재들을 아브젝트라 불렀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다채로운 욕망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억압되어 숨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억압된 것의 귀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적어도 인간의 부끄러운 욕망은 무의식 속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기피하지만 실상 매일 접하는 것, 즉 더러운 오물이나 끔찍한 죽음처럼, ‘아브젝트는 항상 우리의 또렷한 의식 주변을 배회하며 서성인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미 버려졌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브젝트는 바람직한 주체의 경계를 위협하며 난 아직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파쿼드 영주가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추방한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세속적인 삶에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동화 속의 생물들이다. 동화 속의 환상 따윈 이제 필요 없어! 오직 노동하고 생산하고 발전하는 문명만이 있을 뿐. 파쿼드의 왕국은 이 모든 동화적 환상을 철저히 아브젝트로 버려둔 채 독재자 파쿼드의 시선으로 재단된 바람직한 문명의 경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들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물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피리 부는 아저씨, 피터팬, 피노키오, 일곱 난쟁이, 아기돼지 삼형제 등 수없이 많은 동화 속의 인물들과 동물들을 추방해버린다.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슈렉의 늪으로 잠입하여 거대한 난민촌을 형성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슈렉의 은둔 생활에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추방되는 것은 과격하게 쫓겨나지만, 결코 다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아의 경험 주변을 배회하며, 유아의 모호한 자아 경계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어떤 것이 단지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된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에서 전적으로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깨끗하고 적절한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시에 의식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아브젝트는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3.

 

 

 

 

 

4. 인권과 주거권을 탈환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다

 

 

그들은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해버려(They judge me before they even know me).

-영화 슈렉중에서.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배제하는 사람들. 슈렉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쳐버렸다. ‘판단은 바로 차별과 배제의 전초전이다. 아기들은 악취에 코를 찌푸리지 않는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분별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어른들은 악취, 특히 부패로 인한 악취에 매우 민감하다. 부패한 생물에 풍기는 악취, 그것은 바로 죽음의 냄새를 연상시키기에.

 

 

 

 

사람들은 슈렉에게 가까이 와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괴물은 냄새나고, 더럽고, 혐오스런 존재라는 편견의 울타리 밖으로 슈렉을 밀어낸다. 슈렉뿐 아니라 동화 속의 생물들을 모두 추방한 파쿼드 왕국 또한 쓸데없는 공상으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의 잣대로 현실 속에서 환상의 색채를 띤 모든 것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의 입김도 환상의 바이러스도 없는 세계는 과연 안전할까. 이렇게 완벽하게 살균된 세계는 과연 행복할까.

 

안정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낯설고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것을 주체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심리적 과정, 그것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 불렀다. ‘아브젝트가 배제된 대상들이라면 아브젝시옹은 배제하는 행위와 과정 자체를 말한다. 우리의 주체성이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속에 있다면, 그 과정 속의 주체는 나다운 것의 기준을 세워 자아를 조립하고, ‘우리다운 것의 경계를 그려 사회를 구성한다. 슈렉을 비롯한 각종 동화 속 생물들을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공동체,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균질적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배제된 타자들이다.

 

파쿼드의 동화 속 생물 추방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도망가는 당나귀 동키를 잡으려다가 슈렉을 만나자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쳐 버린다. 슈렉의 늠름한 덩치 뒤에 숨어 체포 위기를 면한 동키는 얼떨결에 자신을 구해준 슈렉에 대한 반가움에 들떠 호들갑을 떤다.

 

 

 

 

동키: 와우, 정말 대단해! 정말 멋져!

슈렉: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금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동키: (주변에 슈렉 말고는 아무도 없다) , 그럼! 진짜 대단했어! 병사들이 막 쫓아왔었는데, 네가 나타나니까 길 잃은 아이들처럼 허겁지겁 도망가던걸.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으하하.

슈렉: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시니컬하게) 그거 참 잘 됐군.

동키: , 이제 드디어 그들로부터 벗어났구나. 이 자유의 기쁨을 친구들과 함께 축하해야 하는데! (……) 하지만 난 친구가 없어. (계속 엄청난 속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슈렉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아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랑 함께 지내면 어때? 넌 싸움을 잘 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하면 엄청날 거야.

슈렉: (귀찮다는 듯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늪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동키: (슬프지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내 등에 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난 친구가 필요해.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계속 슈렉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슈렉은 본척만척한다.)

슈렉: (괴성을 질러대며 노래를 흥얼대는 동키의 목소리를 참다못해 소리를 버럭지른다) 노래 그만! 친구가 없을 만도 하네! 어이, 날 봐! 내가 뭐 같아?

동키: ? 키가 큰…… 사람?

슈렉: 아냐! 난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횃불하고 쇠고랑을 준비해야지! 날 피하지 않아? 정말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동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럼!

슈렉: 정말?

동키: 정말이야! 난 네가 완전 마음에 들어.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슈렉: ……, 슈렉.

동키: 슈렉? 슈렉!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알아? 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는 네 태도야. 정말 존경스러워!

 

 

한 번도 타인과 함께 지내본 적이 없는 슈렉은 당나귀 동키의 끈질긴 러브콜이 귀찮기만 하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를 처음 만난 슈렉은 너무 놀라 물어본다. 정말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슈렉은 자신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존재를 처음 만난 것이다. 당나귀 동키의 눈에 비친 슈렉은 그저 키 큰 사람이고 위험에 빠진 자신을 본의 아니게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동키는 처음으로 괴물 오우거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동키는 그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며 그와 친구가 되고자 한다.

 

 

 

 

당나귀 동키를 차마 내치지 못하는 슈렉의 여린 마음속에는 사실 숨길 수 없는 외로움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슈렉은 채식 위주의 웰빙 식단으로 꾸려진(파다하게 퍼진 괴소문처럼, 사람의 내장이나 눈동자를 후벼내어 만든 젤리 샌드위치가 아니라!) 소박한 식탁 위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은근히 문밖에서 굶고 있는 동키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외부의 침입자가 나타난 듯한 기척에 놀란 슈렉은 집 밖으로 나오고 파쿼드의 퇴거 명령으로 추방된 각양각색의 동화 속 생물들을 만난다. 유럽의 동화 속 주인공들은 총출동한 것 같다.

 

슈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오랜 은거지인 늪을 지키기 위해 파쿼드와 담판을 하러 떠난다. “요정 여러분, 너무 편하게 있진 마세요, 여기선 환영 못 받아요. 당장 파쿼드를 찾아가서 다시 여러분의 집을 되찾아주도록 하겠습니다. (동키를 가리키며) , 너는 나랑 같이 가는 거야!” 동키는 슈렉과의 여행(?)이 성사되자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따라나선다. 이제 버려진 존재 아브젝트의 인권과 주거권을 탈환하기 위한 모험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슈렉과 동키가 도착한 파쿼드 왕국은 어쩐지 생기도 활기도 없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균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각종 환상의 바이러스들을 모두 제거했는데, 이 세계는 조금도 안전하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5.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타자들

 

 

내가 그녀이고, 그녀가 나인데, 어떻게 그녀를 증오할 수 있을까? -줄리아 크리스테바

 

 

내 안의 더럽고 역겹고 불쾌한 모든 것들, 그건 내 것이 아니야. 그것들만 사라지면, 난 완벽해질 수 있어. 각종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마초형 남성 파쿼드 영주는 그가 통치하는 완벽한 세상을 망치는 주범으로 동화나라의 주인공들을 지목한다. 파쿼드는 과자인형을 잔인하게 고문하며 동화나라 캐릭터들의 행방을 묻는다. “너와 이상한 요정 생물들이 내 완벽한 세상을 망치고 있다. 다들 어디 갔지?” 의리로 똘똘 뭉친 과자인형은 동화나라 생물들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는다. 한편, 백설공주의 계모가 애용하던 말하는 거울을 공수해온 파쿼드는 자신의 미모가 아니라 왕국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어 한다.

 

 

 

 

벽에 걸린 거울아, 나의 왕국은 가장 완벽한 왕국이 아닌가?” 거짓말에 서툰 말하는 거울은 대충 얼버무린다. “그게…… 정확히 따지면 당신은 왕이 아닙니다. (손거울을 깨 보이며 협박하는 영주의 행동에 놀라 다급하게) 제 말은 아직왕이 아니라는 겁니다. 영주님도 왕이 될 수 있죠! 공주와 결혼하면 됩니다!” 거울은 공주의 옵션을 제시하며 파쿼드에게 가장 적절한 신붓감을 골라보라고 권한다.

 

 

거울: 공주 1은 먼 나라 왕국에서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죠. 그녀는 스시와 목욕을 좋아합니다. 취미는 사악한 언니들을 위해 요리와 청소를 하는 겁니다. , 신데렐라입니다! (신데렐라의 우아한 자태를 거울로 보여준다) 공주2는 망토를 입은 소녀입니다. 7명의 남자들과 함께 살지만 쉽게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죽은 듯이 차가운 입술에 키스해주면 됩니다. 보시죠! 백설 공주입니다!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공주3은 용암으로 둘러싸인 성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피냐 콜라다와 비 맞는 걸 좋아합니다. 구출만 하면 되는, 피오나 공주입니다! (드디어 피오나 공주의 매혹적인 표정과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영주는 피오나 공주의 참신한 매력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피오나가 갇혀 있는 성으로 찾아가 용을 무찌르고 그녀를 구해내는 엄청난 노동은 타인에게 전가하기로 한 채. 마침 슈렉은 파쿼드 영주의 도시 듀록에 도착하여 파쿼드와 담판을 지을 참이다. 슈렉의 눈에 비친 도시 듀록은 엄청나게 깨끗하지만 왠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동화나라의 생물들이 모두 추방당한 뒤라서 그럴까. 듀록은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처럼 음산하고 허전하기 그지없다. 슈렉과 동키를 맞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다. “듀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듀록은 완벽한 곳이랍니다. 마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답니다. 줄을 꼭 지키세요. 듀록은 완벽한 곳이랍니다. 잔디를 밟지 마세요. 신발을 닦으세요. 얼굴을 씻으세요.” 환영한다고 외치면서 잔뜩 금지사항만을 읊어대는 자동인형의 기계적 합창에 슈렉은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이 도시에는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것’, ‘금지된 것만 많은 것일까. 그런 도시는 과연 행복한 곳일까.

 

 

 

 

파쿼드: (원형 경기장에 모인 엄청난 군중을 향해) 용으로부터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를 구출하는 영광을 가질 자는 누군가? 우승자가 실패를 하게 된다면 2등이 도전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3, 4등이 도전한다. 죽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군중은 열광하지만 그 열광은 어딘지 가식적이다. 군중의 얼굴에서는 파쿼드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공포가 서려 있다. 이때 거대한 원형경기장에 갑자기 괴물슈렉이 나타나자 급히 계획을 변경한다. 도전자들끼리 서로 싸워 토너먼트를 할 것이 아니라 오우거를 죽이는 자가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몰아치는 적들을 향한 슈렉의 폭풍 액션! 괴물 슈렉의 재치와 파워를 따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파쿼드는 또 한 번 계획을 바꾼다. 슈렉을 챔피언으로 결정한 것이다. “듀록 시민들이여! 슈렉이 바로 우리들의 챔피언이다! 축하한다, 오우거! 너는 위대한 모험에 나설 영광을 얻었다. 오우거! 날 위해서 이 모험에 나서면 늪을 돌려주겠다.” 늪을 돌려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에 슈렉은 이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로 한다.

 

 

 

 

크리스테바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했던 것들의 잃어버린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 잃어버린 가능성의 총체를 그녀는 코라(cora)’라고 불렀고, 우리의 바람직한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역겹고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버리는 과정을 그녀는 아브젝시옹이라 불렀다. 우리가 괴물이나 도깨비, 사악한 마녀나 끔찍한 요괴에게 공포와 매혹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아브젝시옹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역겹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믿는 것들 또한 원래 우리 안에 존재하던 것들이었기에 우리도 모르게 그것들을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아브젝트는 원래 내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립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몰아낸 타자들이기에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원래 내 것이었기에 어딘가 매혹적이고 내가 추방한 것이기에 왠지 두려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아브젝트다.

 

 

아브젝트는 금지된 욕망의 대상이 일어나는 (……) 비객관성, 결여의 장소, 매혹과 증오의 장소이다. (……) 아브젝트는 문화, 신성한것이 정화시키고 분리시키고 추방하는 대상이므로 그 자체를 카타르시스라는 보편적인 논리 가운데 세울 수 있게 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정신분석과 폴리스, 페미니즘과 문학, 문예출판사, 1990, 257.

 

 

 

 

 

6. 미처 발현되지 못한 우리 안의 가능성

 

 

아브젝시옹은 자기 자신에게 다른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주체성의 경계를 한정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111.

 

 

아브젝시옹이 나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추방하는 과정이라면, 아무것도 몰아내지 않고 품어내려는 열정, 자기를 가득 채우는 것에서 힘을 얻는 것이 코라(chora)’. 코라는 단지 생성하는 모든 것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모든 생성의 유모 같은 존재다. 코라의 속성은 안정감이나 균형의 유지가 아니라 불안, 불균형, 불규칙, 동요 그 자체를 끌어안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서로 갈등하다가도 언젠가는 화해하고, 법률과 규칙 없이도 얼마든지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었던, 환상과 현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곳. 아기가 언어를 배우기 이전, ‘내 똥이 더럽다는 것을 배우기 이전, 이렇게 하면 부모님께 야단맞을 것이라는 판단을 배우기 이전의 세계. 파쿼드 영주가 동화 속 생물들을 추방하기 이전의 도시 듀록도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곳, 코라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들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동키: 그러니까 처음부터 네 늪이 아니었던 걸 되찾으려고 무서운 용과 싸우고 피오나 공주를 구한다는 거야? 그런 거야? 난 모르겠어, 슈렉! 왜 그냥 오우거답게 하지 않은 거야? 오우거들이 하는 거 있잖아?

슈렉: 그래, 모든 시민의 목을 베어서 막대기에 꽂아놓았을 수도 있었겠지. 내장을 잘라내서 피를 마실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았을까?

동키: , 아닌 것 같은데…….

슈렉: (깊은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조금은 수줍게) 너는 모르겠지만, 오우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동키: 예를 들면?

슈렉: 예를 들어서, , 그래, 오우거는 마치 양파 같은 존재야.

동키: 양파처럼 냄새가 나?

슈렉: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동키: 양파처럼 울게 만들어?

슈렉: (짜증난 표정) 아냐!

동키: 햇볕을 쬐게 밖에 놔두면 갈색이 되면서 줄기가 나는구나?

슈렉: (답답해서 버럭 화를 내며) 아냐! 층 말이야! 양파엔 층이 있어. 오우거도 층이 있어. 양파도 층이 있고. 알겠어? 둘 다 층이 있어.

 

 

 

 

슈렉은 전에 없이 차분하게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양파의 과 오우거의 을 비교해서 설명한다. 관객도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홑겹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슈렉의 다채로운 면모에 매혹된다.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비밀에 싸인 양파껍질처럼 신비롭고 난해한 무엇. 슈렉은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쉽게 파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창조적 다중성이 고립된 생활에서는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슈렉이 계속 늪지대에서 은둔형 외톨이로만 살아갔다면 아무도 슈렉이 그토록 엄청난 재능과 매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슈렉은 아주 쉬운 방법으로(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늪을 되찾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어렵고 힘든 모험을 택한다. 이 결정은 미지의 모험 속에 깃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포착한 슈렉의 혜안이 아니었을까. 우리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들, 코라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공간과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우리의 존재를 던질 때, 미처 발현되지 못한 우리 안의 가능성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코라는 아직 하나의 정돈된 우주의 통일되지 않은 것이지만, 양분을 공급하는 모성적인 그 무엇이다. (……) 코라는 항상 이미 모순적이고, 동화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며, 이러한 이중성으로 인해 코라는 항구적인 분열의 장을 만들어 간다. (……) 언어와 무관하고 수수께끼 같으며 여성적인, 쓰인 글의 심층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역, 사적 언어의 혁명, 동문선, 2000, 27~31.

 

 

 

 

 

7. 코라(chora): 내가 버린 나의 가능성들의 총집합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러한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이 괴물은 신비스럽잖아요?

-영화 미녀와 야수중에서, 야수를 죽이려는 주민들의 목소리

 

 

슈렉은 동키와 함께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떠난다. 이 모험의 첫 번째 난관은 거대한 용암 위에 펼쳐진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도진 듯 벌벌 떠는 동키를 보며 슈렉은 우리가 함께이니 괜찮다고 말해준다. “동키, 내가 바로 옆에 있잖아, 걱정 마. 천천히 건너가면 되는 거야. 밑을 보지 말구.” 아래를 쳐다보지 말라는 슈렉의 경고를 어긴 동키는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못가겠다고 버티고, 슈렉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동키가 오히려 다리를 먼저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키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일이, 슈렉과 함께라면 가능해진다.

 

 

 

 

마침내 성에 도착한 슈렉과 동키는 흩어져서 용과 공주를 찾는다. 공주가 있는 계단을 찾던 동키는 오히려 거대한 용을 만나고, 흉측한 용이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동키는 뜻밖에 용이 핑크빛얼굴을 가진 여성임을 알게 된다. 용이 거대한 이빨을 선보이며 동키를 금방이라도 꿀꺽 삼킬 태세를 취하자 동키는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동키: 오우, 이빨이 정말 크시네요. 이빨이 눈부시게 하얗고 반짝거리네요. 자주 들으시겠지만 이빨이 정말 하얗고, 미소도 정말 눈부시고요. 그리고 민트 냄새도 나는 것 같아요. …… 그리고…… 당신도 잘 알듯이…… 당신은 여자용이시군요. 오우, 정말 여성다운 아름다움이 가득해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동키는 살아남기 위해 과장된 연기력을 발휘한 것이지만 우리의 핑크 드래곤에게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이다. 핑크 드래곤은 동키를 잡아먹으려던 시늉을 그치고, 갑자기 기다린 속눈썹을 우아하게 깜빡이며 그녀의 여성적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칭찬은 그녀도 몰랐던 그녀 안의 여성성을 발굴해준 셈이다. 슈렉은 동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동키의 코라를 일깨우고, 동키는 핑크 드래곤의 여성성을 발굴함으로써 드래곤의 코라를 일깨운다. 이제 피오나가 슈렉의 코라를, 슈렉이 피오나의 코라를 일깨울 차례다.

 

 

 

 

슈렉: (드디어 공주를 찾았다는 표정) 당신이 피오나 공주님인가요?

피오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구해줄 용감한 기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슈렉: (무뚝뚝하게) 그렇군요, 갑시다!

피오나: 잠깐만요, 기사님! 처음 만나는 건데 뭔가 아름답고 로맨틱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슈렉: (피오나의 손을 잡아채어 얼른 데려가려 한다) ,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피오나: (자신과 함께 계단을 뛰어 내려가려는 슈렉에게 놀란) 잠깐만요? 뭐하시는 거예요? 저를 안아든 다음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백마에 올라타야죠! 이 순간을 추억에 남겨야 해요! 시를 낭송해 주세요. 발라드! 소네트! 아무거나!

슈렉: (귀찮다는 듯이) 싫어요!

피오나: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구출해 준 기사의 이름이라도 알려주실 수 없어요?

슈렉: 슈렉입니다.

피오나: (아직 살아 날뛰는 용을 바라보며) 아직도 용을 안 죽였어요?

슈렉: 그럴 예정이에요, 갑시다!

피오나: 이게 아니에요! 당신이 직접 뛰어들어서 용과 싸우는 거예요! 다른 기사들은 다 그랬어요!

 

 

피오나의 머릿속에는 동화적 환상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자신을 구하러 오는 기사는 완벽한 외모와 용감한 심성을 지닌 왕자님이어야 하고, 왕자님은 자신을 구하기 전에 미리 용을 무찔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기사님은 투구를 벗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며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게다가 백마 탄 왕자님은커녕 우리의 귀하신 공주님을 몸소 두발로 뛰어다니게 만드는 얼굴 없는 기사님이라니. 왜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나의 멋진 라이프스토리가 펼쳐지지 않는 걸까, 피오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슈렉은 디즈니 월드가 추방한 아브젝트의 부분적 귀환이라 할 수 있다. 슈렉은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처럼 다시 왕자로 돌아갈 희망이 전혀 없다. 슈렉은 괴물인 채로, 흉측한 채로, 여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슈렉은 백인이 아니며 귀족이 아니며 왕자도 아니고 꽃미남도 아닌, 그야말로 디즈니의 주인공스러운 구석이 조금도 없는 사상 초유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미키 마우스의 세계는 가끔 무섭기는 하지만 안전하며, 비폭력적이며, 비이데올로기적인 어린이의 세계이며 여기서 모든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어떤 디즈니 영화도 어린이에게 악몽을 꾸게 하거나 어른들이 심각하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미키의 모든 존재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랑과 안전에 그 준거를 두고 있다. 그의 모험에는 어떤 철학적인 함축이 담겨 있지 않고 영화에서 언급한 것 이상의 것은 없다. 미키의 매력은 모든 것이 잘 되며, 온유한 자가 상속받을 것이며 순진한 자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안심시켜주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로널드 오트먼(Ronald Oatman), Journal of Popular Film and Television242, 1996, 86.

 

 

 

 

 

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소모되어버린, 추방되어 사실상 굶고 있는 나를 보라.

-디즈니 에니메이션 인어공주중에서, 마녀 어슐라의 대사

 

 

디즈니가 각색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막판에 주로 악당이 살해되거나 마녀가 추방된다. 소름끼치고 역겨운 것들을 반드시 배제해버려야만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긋, 디즈니형 애니메이션은 동화에서 선악의 경계, 미추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한다. 그러나 실제 세계도 그럴까. 디즈니의 우월한 유전자를 향한 지독한 선망은 나와 다른사람들의 주체성을 희생시켜서라도 안전한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질병 아닐까.

 

슈렉은 피오나를 구하지만 피오나는 자신의 이상형에 슈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며 실망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우아한 백마에 태워주기는커녕 계속 걷고 뛰게 만드는 슈렉을 보며 피오나는 달라져서 한마디 던진다. “무슨 기사가 이래요!” 슈렉은 자신이 좀 구식이고 특이종이라며 변명을 해보지만 피오나는 공주답게새침을 떤다.

 

 

 

 

그녀는 핑크 드래곤이 유혹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동키를 백마로 오인하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보다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지만, 어림없다. 게다가 성에 갇힌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은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안 한다. “전투에 승리했습니다, 기사님. 이제 헬맷을 벗으셔도 됩니다.” 슈렉은 헬멧 때문에 머리가 헝클어졌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피오나는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이 헬멧을 벗는 순간 키스를 퍼부으며 곧바로 사랑에 빠질 태세다.

 

 

피오나: 어서 헬멧을 벗어요. 저를 구해 주신 분의 얼굴을 보고싶어요.

슈렉: 아뇨,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피오나: 하지만, 저하고 어떻게 키스하실 건가요?

슈렉: (당황하며) 뭐라고요? 이 일을 맡았을 때 그런 얘긴 없었는데?

피오나: 아니, 운명이에요. 동화 속 스토리를 모르세요? 탑에 갇힌 공주가, 용감한 기사로부터 구출된다. 그 다음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를 나눈다!

동키: 슈렉하고요? 잠깐만요. 슈렉이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피오나: , 그럼요.

동키: 우헤헤헤! 슈렉이 진정한 사랑이래.

피오나: (엎치락뒤치락 실랑이 끝에 드디어 슈렉이 헬멧을 벗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당신은, 오우거군요…….

슈렉: , 멋진 왕자를 기대하셨나 보군요.

피오나: , 실은……. , 안 돼! 모든 게 틀렸어! 당신이 오우거면 안 되는데!

슈렉: 공주님, 파쿼드 군주가 당신을 구하려 절 보냈습니다. 아셨죠? 당신하고 결혼하려는 사람은 그 분이에요.

피오나: 그럼 왜 저를 구출하러 직접 오지 않은 거죠?

슈렉: 좋은 질문이네요. 도착하면 직접 물어 보세요.

피오나: 저는 진정한 사랑에 의해 구출 받아야 해요. 오우거와 애완동물에게 구출 받는 게 아니라고요! (……) 파쿼드 군주에게 절 제대로 구출하고 싶다면 여기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문제는 이 세계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묘사하는 세계처럼 깔끔하게 재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자를 끝내 배제하는 세계에서는 타자가 촉발하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도 닫힌다. 불쾌하고 모호하고 이질적인 무엇, 아브젝트를 배제하는 것은 곧 세계를 왜곡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타자 없는 세계, 살균된 세계의 폭력성은 그것이 비폭력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기만적이다. 디즈니의 전형적인 세계관은 비정상을 삭제해야 정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은 정상적인 것 내부의 차이가 아니라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경계 위의 수많은 이절성과 모호성 위에서 꽃피는 것 아닐까.

 

 

아브젝트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그것 자체가 지정된 한계나 장소나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어중간하고 모호한 혼합물인 까닭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와 권력, 동문선, 2001, 25.

 

 

 

 

 

9. 미워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슈렉: 당신은 제가 상상했던 공주하고는 좀 다르네요.

피오나: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판단을 내리면 안 되겠죠.

 

 

나는 가끔 사람 미워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군가를 싫어할 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알 수 있지만 그 이유를 따지기도, 말하기도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려면 결국 우리 자신의 치부(恥部)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버린 존재, 그 한계를 똑바로 노려보기엔 우리의 자의식이 너무 견고한 것은 아닐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블랙리스트는 곧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숨기고 싶은 마음의 카탈로그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는 싫어하는 것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아브젝시옹을 숨기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증오하고 은폐하고 배제하는지 모두 다 말하고 산다면 하루도 멀쩡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브젝시옹의 목록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목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혹시 증오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 없이 뜬소문이나 가벼운 인상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증오하는 대상들은 정말로 내 증오를 받을 만큼 대단히 혐오스러운 것일까.

 

슈렉은 언뜻 보면 인간혐오증에 걸린 괴물 같다. 하지만 슈렉이 진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싫어해서이다. 피오나 공주를 파쿼드 영주에게도 데려오는 길에서 슈렉은 그 오랜 인간혐오증의 비밀을 동키에게 털어놓는다.

 

 

동키: 슈렉, 우리 늪을 다시 돌려받으면 뭘 하지?

슈렉: 우리 늪?

동키: 우리가 공주를 구하고 이번 모험이 다 끝나면 말이야.

슈렉: 우리? 당나귀야! ‘우리라는 건 없어. ‘밖에 없어. 거긴 우리 늪이 아니라 내 늪이야. 어쨌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늪 주위에 높은 울타리를 짓는 거야.

동키: 나 상처받았어, 슈렉. 상처받았어. 내 생각을 말해줄까? 내 생각에 네가 울타리를 짓고 싶다는 건 딴 사람이 못 오게 하려는 거 같아.

슈렉: 그래?

동키: 뭘 숨기고 있냐?

슈렉: 아냐.

동키: 오호! 네가 말한 그 양파같은 거구나?

슈렉: 그만해. (……) 당나귀, 경고한다! 그만 해!

동키: 누굴 못 들어오게 하려는 거야? 그것만 말해줘.

슈렉: 모두! 이 세상 누구도 내 늪으로 오지 말라고! 이제 됐어?

동키: 와우, 이제 말문이 트였군. 문제가 뭐야? 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슈렉: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냐. 딴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게 문제야. 사람들은 날 보면 ! 도와줘! 도망쳐! 멍청하고 못생긴 오우거다!”라고 한다고. 사람들은 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판단부터 해. 그래서 혼자 사는 게 더 좋아.

동키: 있잖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네가 멍청하고 못생긴 오우거라고 생각 안 했어…….

슈렉: 알아…….

 

 

슈렉은 우리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 동키가 우리의 모험이 끝나면 우리함께 늪에서 살자고 말하자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번도 우리라는 틀 안에 자신을 넣어본 적이 없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슈렉은 안다. 동키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첫 번째 친구임을. 동키가 겉보기 등급과는 달리 따스한 마음씨와 깊은 이해심을 지니고 있듯이, 슈렉 또한 사람들 사이에 퍼진 루머와는 달리 너무도 지적이고 용감하며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우리는 피오나 공주 또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가 가졌던 편견과는 다르다. 우아하고 세련되며 얌전한 공주일 것이라는 따분한 편견을 날려버리는 피오나의 거침없는 성격과 장쾌한 액션! 하지만 아직 피오나의 진짜 장점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동화의 환상적 내러티브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피오나는 스스로 동화의 전형적 스토리에 몸이 꽁꽁 묶인 채, 눈앞의 슈렉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파쿼드 영주를 동화 속 왕자로 착각하고 있다.

 

 

 

 

피오나는 환상 속 왕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탈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바깥에 나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밤마다 모습이 바뀌는 마법보다 끔찍한 것은 그녀를 아브젝트 수용소로 추방해 버리고도 마법의 왕자만 기다리게 방치해 둔 부모의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파티에 데려가 사교계로 진출시키기에는 사랑스런 딸의 외모가 너무 끔찍했으니까. 더 끔찍한 것은 스스로 탈출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피오나 스스로가 자신을 아브젝시옹의 대상으로 인정해버린 것이었다.

 

 

아브젝시옹은 도덕을 알면서도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훨씬 더 음흉하고 우회적이며 석연찮은 어떤 것이다. 즉 자신을 숨긴 테러 행위, 미소 짓는 증오, 껴안는 대신에 품는 육체에 대한 욕망, 당신을 팔아치우는 채무자, 비수로 나를 찌르는 친구. 이런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25.

 

 

 

 

 

10. 동화의 철책에 갇힌 주인공들

 

 

동키: 두 사람 서로 좋아하잖아. 이봐. 슈렉, 감정을 무시하면 안 돼. 그녀에게 네 감정을 말해 줘.

슈렉: 안 돼. 그녀는 공주야. 나는, 나는……

동키: 괴물이라고?

 

 

오랫동안 성 안에 갇혀 있던 공주답지 않게 우울증의 기미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명랑소녀 피오나. 특히 동화 속 캐릭터 중 하나인 로빈 후드가 나타나 그녀를 슈렉에게서 빼앗아 가려하는 대목에서 명랑소녀 피오나의 진면목이 발휘된다. “전 당신의 구원자입니다! 당신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저 녹색 괴물로부터!” 잘난 척, 잘생긴 척, 멋진 척은 혼자 다 하는 로빈 후드에게 슈렉이 괴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피오나는 미녀삼총사의 유쾌한 패러디 액션으로 로빈 후드 일당을 일거에 퇴치해버린다. 슈렉의 엉덩이에 꽂힌 화살을 빼주며 두 사람 사이에는 로맨틱한 감정이 싹트는데.

 

 

 

 

이렇게 유쾌·상쾌·통쾌한 성격을 지닌 피오나는 황혼녘만 되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 슈렉, 동키 일행과 함께 듀록으로 가던 중 피오나는 어둠이 밀려오자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은신처를 찾는다. 그녀는 저녁마다 괴물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 황혼녘만 되면 숨을 곳부터 찾는 것이다. 로빈 후드뿐만 아니라 성을 지키고 있던 거대한 핑크 드래곤도 한방에 기절시킬 것 같은 괴력을 지닌 피오나는 왜 그동안 얌전히 누워 백마 탄 기사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피오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핑크 드래곤이나 거대한 성벽이 아니라 왕자가 자신을 구해주면 마법이 풀릴 것이라는 동화 속 환상의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피오나 공주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동화의 교과서적 네러티브였다. 영화 슈렉은 동화의 낭만적 환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오나는 내 신랑이 될 파쿼드 군주는 어때요?”라고 물어보면서도 사실 자신을 구해준 진짜영웅 슈렉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오나: (슈렉이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뜯어 먹으며) 이게 뭐죠?

슈렉: 들쥐에요, 들쥐 바비큐.

피오나: 그래요? 맛있어요.

슈렉: 들쥐국을 해 먹어도 맛있어요.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제가 끓인 들쥐국은 정말 맛있어요.

피오나: (슈렉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내일 밤에는 조금 다르게 식사를 하고 있겠군요.

슈렉: 언제 절 보러 늪으로 놀러 오세요. 맛있는 요리해 드릴게요. 개구리 수프, 생선눈 타르트, 말만 하세요. (……) 저 석양을 보세요. 정말 아름답죠?

피오나: 석양? 이런, 이런! 늦었어요. 정말 늦었어요.

슈렉: 왜 그래요? 잠깐만요, 이제 알 거 같아요. 어둠을 두려워하시는 거죠?

피오나: , 맞아요! 정말 무서워요.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슈렉은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을 한다. 사랑스런 피오나는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은 슈렉의 늪으로 초대받은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슈렉은 아직 두렵다. 파쿼드 군주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피오나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를, 이 괴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를 딛고, 아무도 우리를 축복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딛고, 슈렉과 피오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피오나의 상상이 틀렸듯이 우아하고 얌전하게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공주에 대한 상상도 틀렸다. 우리가 그러리라고 믿었던 공주와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지배적 담론에 맞게 변형된 공주와 왕자의 전형이 존재할 뿐.

 

 

우리가 씹어 먹는 아동 동화는 아직 우리 위장 속에 들어 있다. 아동 동화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백설공주와 그녀를 구해준 영웅 왕자는 우리의 두 가지 거창한 픽션이다. 이 두 픽션 사이에서 우리에겐 정말이지 별다른 승산이 없었다. (……) 소년들은 백마에 올라타고 난쟁이를 찾아가서 백설공주를 사오는 꿈을 꾸고, 소녀들은 시간증(屍姦症) 환자의 욕망의 대상(순결한 희생양인 잠자는 공주, 최고로 어여쁜 살덩이, 잠자는 상품)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때로는 알지만,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배웠던 역할을 연기한다.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 여성혐오(Woman hating), Plume, 1974.

 

 

 

 

 

11. 사랑은 불안과 슬픔과 혼돈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키: 당신은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어요. , 거짓말이었고요, 사실 못 생겼어요. 하지만 밤에만 그렇잖아요. 슈렉은 하루 종일, 24시간 못생겼어요.

피오나: 동키, 나는 공주야, 공주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 동화 속에 나오는 각종 도깨비, 다양한 괴담 속에 존재하는 귀신들이 매혹과 공포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야말로 크리스테바가 말한 아브젝시옹의 대표적 대상들이다. 그 더러움과 끔찍함이 우리의 정체성을 더럽힐까 봐 추방하고 배제했던 아브젝트들. 우리는 의식의 차원에서는 아브젝트를 밀어내지만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아브젝트에 대한 미련과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슈렉에서 각종 동화 속 생물을 배제해버린 살균된 세계듀록은 예전처럼 활기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 그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치부’, 아브젝트를 버림으로써 점점 우리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야만으로 치부된 것들을 금지할수록 문명의 다양한 가능성이 사라져버리듯이, 우리 안의 아브젝트를 지나치게 배제할수록 우리 안의 코라는 질식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다운 것을 찾기 위해 나답지 않은 것을 오려내다 보면 언젠가는 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동키에게 먼저 밤의 모습을 들켜버린 피오나는 공주답지 않게못생겼지만, 금발의 바비인형이나 디즈니형 백설공주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아는 슈렉은 분명 그녀만의 매력을 발견해낼 것이며 반드시 그녀의 마법이 풀려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동화 속 스토리의 압박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는 아직 한 번도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혼자서 용을 때려눕히고 얼마든지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랑을 찾을 수 있으면서도 그녀가 스스로를 거대한 성 안에 가둔 것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키: (‘못생긴피오나로 변해버린 공주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당신은 누구세요? 우리 공주님을 도대체 어떻게 했어요?

피오나: 동키, 조용히 해! 내가 공주야.

동키: 맙소사! 당신이 우리 공주님을 먹어버렸군요!

피오나: 아니, 이게 바로 나야. (……) 그래, 난 못생겼어. (……) 해가 지고 나면 이렇게 변해. 낮에는 예쁘고 밤에는 못생겼어. 이렇게 지내왔어.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를 받을 때까지. 그러면 사랑으로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될 거야. (……) 밤마다 이렇게 변신해. 이 끔찍한 못생긴 괴물로 변신해! 탑에 갇혀서, 진정한 사랑이 구해 주는 날이 오길 기다리게 되었어.

그래서 해가 지고 내 변신한 모습을 보기 전에 파쿼드 군주랑 결혼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만 해,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만이 주문을 풀 수 있어.

 

 

그녀는 영원히 성 안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동화 속 마법의 환상에 가둠으로서 오히려 스스로를 아브젝트로 전락시킨 것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깨닫지 못한다. 그녀는 동화 속 스토리의 실현만을 믿으며 자기 안의 무한한 코라도 미처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위기상황이야말로 그녀가 마법이 아닌 사랑으로 스스로 변신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아닐까.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불안이야말로 우리 안의 무한한 가능성의 에너지, 즉 코라의 활동을 촉발하는 가장 위력적인 촉매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오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슈렉의 불안이야말로 한 번도 타인을 자신의 늪으로 초대하지 않았던 그의 후천적 자폐증을 치유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불완전한대상을 완벽하게만들고 싶은 욕망, 자신의 사랑이 궁지에 몰렸을 때 대상을 좋은 대상나쁜 대상으로 분열시키려는 욕망이 공존한다. 크리스테바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던 정신분석의 대가 멜라니 클라인은 애정의 대상을 상실할 것만 같은 불안과 공포야말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정서의 핵심적 요소임을 간파했다. 사랑은 완벽한 대상에 대한 매혹이 아니라 불완전한 대상에 대한 불안과 슬픔과 혼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대상을 어떻게 추리고 나쁜 대상을 어떻게 없애는가. (......) 애정 대상을 구하고 그것을 보상하고 회복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 우울증 상태에서 절망과 연결되어 있는 시도들은, 자아가 이러한 회복을 성취하는 자신의 역량에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승화와 전체적 자아발달을 위한 결정 요소들이다. (......) 나는 애정대상이 파괴되어 형성된 조각들의 승화와 그리고 그 조각들을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의 구체적인 중요성을 언급할 것이다. 그것은 조각나버린 완벽한 대상이다. 이와 같인 완벽한 대상이 약화되는 붕괴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그 애정의 대상을 아름답고 완벽하게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게다가 완벽의 개념은 대상의 붕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제적이다.

증오하는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해왔던, 혹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종 메카니즘을 사용했던 환자들. 그들의 마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상picture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실제 대상은 아름답지 않은 것, 정말로 상처받고 치료할 수 없으며 따라서 두려운 사람으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상은 실제 대상과 분리되어 왔지만 절대 포기되지는 않았으며 그 환자들의 구체적인 승화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완벽함에 대한 욕망은 붕괴의 우울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 결과 모든 승화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멜라니 클라인, 조울증의 심리적 기원, 1935

 

 

 

 

 

12.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편협함

 

 

동키: 슈렉, 난 너랑 같이 살고 싶어.

슈렉: 이봐,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나는 너랑 같이 살지 않아. 난 혼자 살아! 내 늪! ! 딴 사람은 아냐! 알겠어? 다른 사람은 싫어! 특히 쓸모없고 짜증나는 말하는 당나귀는 필요 없어!

 

 

마침내 파쿼드 영주는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의 실물을 보게 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즉석에서 청혼한다. 전리품을 챙기듯 피오나 공주를 차지하려는 파쿼드의 부담스런 프러포즈.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님, 완벽한 신랑의 완벽한 신부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완벽한 신랑과 완벽한 신부의 조합. 파쿼드가 꿈꾸는 결혼은 신랑 신부의 계약을 통해 재산과 권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피오나 공주의 섹시함은 이 결혼으로 인해 쟁취할 경제적 ·정치적 가치인 셈이다.

 

 

 

 

피오나 공주의 밤의 얼굴을 목격한 동키는 이미 서로 사랑에 빠지고서도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는 두 남녀의 양파껍질을 벗겨내고자 한다. 동키가 보기에 피오나와 슈렉은 더할 수 없는 찰떡궁합이다. 미녀가 야수를 구해내 야수를 기어이 왕자로 탈바꿈시킬 필요도 없고, 아름다운 미녀와 백마 탄 기사가 되기 위해 각종 재테크와 최첨단 성형수술에 목맬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동키의 눈에 비친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최상의 커플이다. 파쿼드가 피오나 공주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간 후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슈렉을 보며 동키는 드디어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슈렉이 늪 주변에 쌓고 있는 거대한 마음의 울타리, 자폐증의 성벽부터 부숴버려야 한다. 파쿼드로부터 돌려받은 늪이 몽땅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슈렉을 향해 동키는 이 늪에서 함께 살면 되지 않느냐고, ‘내 것네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동키: , 그래, 내 늪! 나도 같이 공주를 구했으니까, 절반의 대가는 내 거야.

슈렉: (……) 여긴 내 늪이야!

동키: 우리 늪이야!

슈렉: 포기해!

동키: 네가 포기해!

슈렉: , 그럴 순 없지!

동키: 너는 항상 나, , 나만 챙겨. 이제 내 차례야! 넌 항상 날 못살게 굴고, 내가 하는 일을 전혀 고마워 안 해! 항상 막 대하거나 밀쳐내!

슈렉: 그래?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데 왜 다시 온 거야?

동키: 친구란 그런 거기 때문이지. 서로 이해해 주고 용서하는 거야! 넌 너무 껍질이 많아, 양파 놈아!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도 몰라! (……) 공주님은 널 좋아했었고 어쩌면 사랑했었을 뿐인데.

슈렉: 사랑한다고? 내가 못생겼다고 했어! 괴물이랬어! 둘이 말하는 걸 들었어.

동키: 네 얘기한 게 아니었어. 그 얘긴, 다른 사람에 대한 거였어.

 

 

 

 

끔찍한 괴물의 오명을 견뎌온 슈렉과 피오나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 슈렉은 피오나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동키는 자신이 말해줄 수도 있지만 슈렉이 그 비밀을 피오나에게서 직접 듣기를 바란다. 슈렉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동키의 우정을 깨닫고 비로소 내 늪네 늪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모두가 날 싫어해라는 핑계를 대며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의 편협함을 깨닫는다.

 

동키, 슈렉, 피오나는 서로의 결핍을 통해 배운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앓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아브젝트의 가냘픈 흔적을 더듬는다. ‘인간의 영지괴물의 늪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우리 안의 코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길은 없을까.

 

 

여성의 희열을 억압된 것으로 보는 라깡과 달리, 크리스테바는 희열과 모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의 몸은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코라(chora)이며 희열의 장소, 즉 상징계에서 경험할 주체성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곳으로 강조된다. 이 모성적 육체는 상징계에서 경험할 자아와 타자의 분열, 언어적인 체험을 모두 내포하고 포괄하는 장이 된다. (……) 어머니의 몸은 주체와 분리된 후에도 주체의 무의식에 흔적으로 남아 상징계 질서의 분리의 경계선에 들어가 그 경계선을 와해하는 적극적인 힘이 된다.

-김진옥, 크리스테바와 델러웨이 부인, 근대영미소설 제12, 102.

 

 

 

 

 

13. ‘우울한 결핍에서 유쾌한 차이

 

 

슬픔은, 그 사람이 좌절감을 느끼기 때문에 적대적으로 생각되는 타인에 대한 숨겨진 공격이 아니라, 상처 입고 불완전하며 텅 빈 원초적 자아의 증거이다. 그러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격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근본적인 결함, 선천적인 결여로 인해 고통 받는다고 생각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스스로를 향한 타인들(1989) 중에서

 

 

슈렉은 슬픔을 방패로 삼아 타인의 접근을 불허하고, 마침내 거대한 슬픔의 커튼 뒤에 숨어버린다. 오랫동안 슈렉은 슬픔의 벽돌로 지은 마음의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슈렉은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이웃도 없이 오랫동안 자기만의 늪에 갇혀 지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절망은 처음에는 슬픔의 원인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선택한 고립과 후천적 대인기피증의 핑계로 작용한다. 그에게 슬픔은 자신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선천적인 결핍, ‘괴물로 태어난 저주받은 운명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고 결론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슬픔이었다.

 

 

 

 

그런 슈렉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아니 친구가 생겼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꺼리는 슈렉의 늪에 처음 찾아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는 동키가 있었기에 슈렉은 모험을 떠날 수 있었고 피오나를 만날 수 있었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온갖 갈등과 혼란, 서로 다른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한 자폐적 우울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슈렉은 자신을 둘러싼 슬픔의 장막을 스스로 거두고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 파쿼드와의 결혼을 앞두고 조바심과 두려움에 떠는 피오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으로 마법이 풀리게 될 것이라는 동화적 스토리에 대한 불안한 확신뿐이었다.

 

 

 

 

피오나와 파쿼드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듀록의 모든 시민이 모였다. 파쿼드 군주의 명령에 따라 웃으라면 웃고 박수 치라면 박수 쳐야 하는 듀록의 사람들. 드디어 만인 앞에서 결혼이 성사되었음을 선언하는 순간. 슈렉과 동키는 피오나를 구출하고 슈렉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결혼식장으로 잠입한다. 이 결혼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앞으로 나오라는 의례적인 코멘트를 향하여 불만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슈렉.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 게다가 모두가 두려워하는 괴물 오우거가 나타나자 술렁거리고, 피오나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슈렉을 바라본다.

 

 

슈렉: 피오나 공주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늦지 않았나요? (……) 이 결혼은 안 됩니다.

피오나: (두려움 반 설렘 반이 뒤섞인 표정으로) 왜죠?

슈렉: 왜냐하면, 왜냐하면……. 파쿼드는 왕이 되기 위해서 당신과 결혼하려는 거예요. 그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피오나: (새치름한 표정으로)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당신이 뭘 아나요?

슈렉: ……. 저는요.

파쿼드: (슈렉이 더듬거리는 틈을 타 슈렉을 조롱하며) 이거 정말 재미있군! 오우거 주제에 공주님을 사랑하다니! (좌중의 폭소를 억지로 유도하며 슈렉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괴물과 공주의 사랑이라니! 으하하!

피오나: (파쿼드의 폭로를 통해 드디어 슈렉의 진심을 알게 된 후) 저 사람의 말이 정말인가요? (저물어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자신의 비밀을 밝힐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윽고 해가 지고 석양과 함께 점점 변해가는 피오나의 밤의 얼굴이 드러난다) 저는 이렇게 낮에는 예쁘고 밤에는 못생긴 사람이에요. 이 비밀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슈렉은 피오나의 못생긴얼굴에 전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표정이다. “이제야 모든 오해가 풀렸네요.” 공주가 슈렉을 밀어내는 것이 슈렉이 오우거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슈렉. 파쿼드는 피오나의 밤의 얼굴에 대경실색하지만 어쨌든 피오나를 아내로 맞아야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슈렉을 추방하고 공주를 다시 성 안에 가두려 한다. “저놈들을 끌어내라! 당장 끌어내라! 이 결혼식은 끝났다. 이제 나는 왕이다! 너를 죽여버리겠다! 슈렉! 내 와이프는 피오나! 그 탑에 다시 갇혀서 여생을 보내도록 하겠다!”

 

 

 

 

파쿼드는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혀 슈렉을 처치하고 피오나를 감금하려 하지만, 피오나와 슈렉 사이에는 이미 진정한 사랑을 확인한 커플 사이에서만 오가는 은밀한 환희의 눈짓이 오간다. 그들은 드디어 서로의 우울한 결핍유쾌한 차이로 탈바꿈시킨 유쾌한 사랑의 기적을 실현한 것이다. 이제 피오나의 평생의 굴레였던 마법의 저주는 드디어 풀릴 것인가.

 

 

크리스테바의 진술에 따르자면, 모든 문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이고, 작가가 이질적이고 불결한 것을 배출하는 시도이다. 모든 정화 의식을 가진 성경이 일찍이 이것을 예증했다. 그러나 20세기 문학은 서사적 조직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파열의 위협을 받는 얇은 필름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 모든 서사물은 허구적 통일성, 즉 단일한 의미와 동일성을 창조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일성이 아브젝시옹의 효과인 한, 그것은 박약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것은 고통의 이야기가 된다.

-노엘 맥아피 지음, 이부순 역,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앨피, 2007, 106.

 

 

 

 

 

14. 우리 안에 숨죽이고 웅크린 숨은 욕망

 

 

여성적 윤리는 죽지 않는 것, 사랑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우리는 아브젝트가 추방되고 사형되고 사라지는 수많은 영화들을 감상한 경험이 있다. 조스에서 끔찍한 식인 상어들은 인간의 단결된 힘으로 처치되었으며, 프랑켄슈타인에서 인간의 시체에서 나온 잔해들로 만든 괴물은 인간의 지혜로 살해되었으며, 괴물에서는 힘없는 소시민 가족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통해 어쨌든괴물을 소탕했다. 혐오와 공포의 대상인 괴물은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반드시 퇴치되는, 주인공에게 가장 적대적인 조연급 배우였다. ‘괴물이 주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등장하거나 누구나 분노할 만한 엄청난 죄를 지은 존재로 묘사되는 것은 괴물의 제거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곤 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올 때마다 우리는 매번 뒤통수가 따갑거나 먹은 것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듯한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끼곤 하지 않았던가. 괴물을 소탕하고 살해하고 처치하는 인간들의 현란한 스펙타클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는 막상 괴물의 입장을 듣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 괴물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죽이고 웅크린 숨은 욕망어딘가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았던가.

 

 

 

 

영화 슈렉의 급진성은 바로 언제나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조연급 배우 괴물을 관객들의 폭발적인 사랑의 대상인 주인공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괴물의 관점에서, 괴물의 마음으로, 괴물의 시공간을 체험하는 기회를 맛보게 된 것이다. 아브젝트의 시점에서, 아브젝트의 삶과 사랑과 꿈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크리스테바의 철학적 기획과 슈렉의 급진성이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만약 슈렉의 결말이 못생긴 피오나 공주가 슈렉의 키스를 받아 어여쁜 피오나 공주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미녀와 야수에서 남녀의 위치만을 바꾼 결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슈렉은 상대방의 야수성과 야생성을 반드시 교정해야만 획득되는 문명인의 사랑이 아니라, 그가 야수인 채로, 그가 늪의 괴물인 채로 사랑하는 법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슈렉의 또 다른 미덕은 버려진 존재들, 짓밟히고 배제된 아브젝트의 이야기를 굳이 오싹한 공포물이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물로 만들지 않고 유쾌하고 산뜻한 애니메이션의 그릇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슈렉에서 슈렉과 피오나 못지않은 드라마틱한 로맨스의 주인공은 바로 동키와 핑크 드래곤이다. 처음에는 거대한 핑크 드래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그녀의 여성성을 이용했던 동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핑크 드래곤의 구애를 피하다가, 마침내 그녀의 도움을 받아 슈렉과 피오나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그녀의 진정한 여성성을 발견해내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여자 생쥐와 남자 사자 사이의 슬픈 로맨스처럼, ‘생물학적 차이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에피소드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슈렉은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믿었던 생물학적 차이마저 유쾌하게 넘어버린다. 슈렉 3에서 핑크 드래곤과 동키 사이에서 태어난 귀여운 하이브리드들은 우울한 결핍 혹은 넘어설 수 없는 차이를 핑계로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통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너와 나의 차이가 인종의 차이든, 계급의 차이든, 더 나아가 생물학적 종()의 차이일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그 차이를 끌어안을 만큼 크고 따스한 것이라면, 그 사랑의 결과물은 저토록 귀여운 하이브리드후손들일 것이라고 말이다.

 

 

 

 

 

15. 사랑은 결핍이 도드라질수록, 결점이 눈에 띌수록, 더욱 완전해지는 신비다

 

 

동화들은 흔히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난다. 하지만 슈렉2슈렉3는 간신히 서로의 사랑으로 맺어진 슈렉과 피오나 커플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장애물들이 남아 있음을 증언한다. 아무리 위대한 커플이라도 결혼만 했다 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함께했다는 수많은 추억의 퍼즐들이 모여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행복이라는 커다란 모자이크로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행복은 단지 주어진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자체가 아닐까. 그러므로 행복은 불행의 요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위험과 불안과 공포까지 마침내 끌어안을 수 있는 감성의 스케일이 아닐까.

 

 

 

 

모든 장애물은 잠시활동을 멈추었고, 드디어 아름다운 두 연인의 키스 타임이 시작된다. 마법이 풀리는 방식은 단지 괴물이 미남미녀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모습이 되는 것 또한 마법이 풀리는 또 하나의 길이니까. 두 사람의 키스가 끝나고 피오나가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 속에 공중부양까지 당한 이후에도 피오나는 낮의 미모를 회복하지 못한다. 뭔가 내 안의 응어리가 한바탕 시원하게 씻겨나간 것 같은 느낌은 분명한데, ‘못생긴 외모는 그대로다. 이럴 수가. 슈렉의 간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끈질긴 마법이 풀리지 않은 것일까.

 

 

슈렉: 사랑해요, 피오나.

피오나: 슈렉, 나도 사랑해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네요. 공주는 아름다워야 하는데, 난 왜 이렇죠?

슈렉: 당신은 이미 아름다워요.

 

 

우리가 버린 아브젝트를 우리 안의 창조적 혼돈으로 바꾸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여성적 힘, 바로 사랑의 기술일 것이다. 영원히 너의 사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은 네가 나를 사랑하지만 내 얼굴이 주름살로 뒤덮이거나 나보다 더 매혹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네가 나를 떠날 것이 분명하다는 불안감, 나의 선천적인 결핍이 너의 밝은 미래에 어둠을 드리울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것들은 사랑의 아브젝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브젝트를 끌어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고수들이 지향하는 커플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서로의 결핍을 통해 타자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앓게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동키처럼, 슈렉처럼, 피오나처럼, 그 어떤 결핍이나 단점도 끝내 사랑의 구실로 변신시키는 연애의 기술을 배운다. 사랑이 원초적으로 품은 불안과 우울, 그 자체가 삶을 아름답게 요리하는 상상력의 에너지원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나의 결핍이 도드라질수록, 너의 결점이 유난히 눈에 띌수록, 이상하게도 더욱 완전해지는 즐거운 신비다.

 

 

나는 여성을 회복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보는 관점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원하는 미국의 어떤 여성주의자들은 그러한 관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의 동력인 이 영원한 주변성으로 시작하여 긍정적인 개념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성성이란, 달이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태양의 반대라는 점에서 바로 이 달의 형태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여성이 남성보다 주변성을 더 많이 소유할지는 몰라도, 남성 역시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화해시킬 수 없는 이 부분을 보존하려는 노력으로 우리는 아마도 항상 헤겔이 말한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일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로서의 여성은공동체가 폐쇄적이지 않도록 하고, 동질적이고 그래서 억압적이지 않도록 하는 불침번일 수 있다. , 나는 여성의 역할을 일종의 불침번, 이질성, 그래서 항상 감시하고 경쟁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줄리아 크레스테바 인터뷰(199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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